전두환 빈소의 유튜버들

조문희 기자
24일 전 대통령 전두환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유튜버들이 촬영을 하고 있다. 이들은 빈소를 방문한 한 시민이 “전두환은 역사 앞에 사죄하라”고 하자, 우르르 몰려가 욕설을 내뱉었다. 이홍근 기자

24일 전 대통령 전두환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유튜버들이 촬영을 하고 있다. 이들은 빈소를 방문한 한 시민이 “전두환은 역사 앞에 사죄하라”고 하자, 우르르 몰려가 욕설을 내뱉었다. 이홍근 기자

“어떤 놈이야!” “전두환이랑 5·18이 무슨 상관이야!”

2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실 1호 앞. 전두환씨의 빈소가 마련된 이곳에서 오후 9시15분쯤 소란이 일었다. 소동의 주인공은 전씨 빈소를 촬영하던 보수 유튜버들이었다. 전씨 부인 이순자씨가 잠시 빈소를 나선 순간이었다. 취재진이 이씨에게 “5·18 희생자들에게 할 말 없냐”고 묻자 유튜버 여럿이 소리를 질렀다. “돌아가신 데 와 가지고 저런 소리를!” “대한민국의 영웅이야!”

이들은 빈소가 운영되는 내내 기자들 질문을 고성과 욕설로 가로막았다. 조문을 마친 정진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빈소를 나서자 기자들은 빈소 안에서 유족과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물었다. 취재진이 “(5·18 희생자에게) 사과할 의향이 있다고 하던가”를 묻자 유튜버들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사과를 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 전 사령관이 5.18민주화운동을 두고 “(북한군이) 한국에 300여명이나 되는 남하해 가지고서는 일으킨 사건 아니겠냐”고 말했을 때도 비슷했다. 취재진이 “방금 말씀은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주장이냐”고 묻자 유튜버들은 “그건 사실이다. 주장이 아니라. 북한 교과서에도 나온다”면서 질의응답을 가로막았다

기자들의 질문이 막힌 자리엔 유튜버 자신의 시선이 담긴 질문이 채워졌다. 이들은 정 전 사령관을 향해 “많은 국민들이 전두환 대통령의 위대한 업적을 잘 알고 있다. 업적에 대해 한 말씀 부탁한다”고 했다. 또 “국가 경제를 12% 이상 성장시킨 훌륭한 분이고, 88올림픽도 성공적으로 마치게 해줬다는 것이지요?”라고 물었다. 기자들을 향해 “이 빨갱이 XX들아!”라는 욕설도 했다. 취재에 나섰던 기자 일부가 “유튜버들 고성 때문에 답변이 들리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 사이 유튜브 생방송으로 흘러나간 장면은 전씨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역사부정론 뿐이었다.

기자라는 직업의 핵심 역할은 사실관계를 취재해 시민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기자가 다뤄야하는 팩트엔 정치인을 비롯한 책임있는 이들이 특정 사안과 관련해 발언하는 내용도 포함된다. 유튜버들도 질문할 권리는 있다. 하지만 다른 취재 주체의 질문을 가로막을 권한은 없지 않은가. 정작 정 전 사령관이나 전씨가 2년 간 머물렀던 백담사의 주지 도후스님이 취재진과의 질의응답을 마치고 떠났을 때 유튜버들이 찾은 사람은 기자였다. “저 사람 누구예요?”

유튜버들은 지난해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숨진 채 발견된 날에도 취재 현장에서 물의를 일으켰다. 박 전 시장의 시신이 발견된 서울 종로구 와룡공원에서 이들은 “목을 매달았나? 떨어졌나?” “외모가 심하게 손상됐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한국기자협회가 만든 자살보도 권고기준과는 거리가 먼 물음이었다. 일부 유튜버는 “문재인 정권 차원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과 관련해 무언가 숨기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닌가”라는 황당한 음모론을 제기했다. 그때 문제는 부적절한 질문이었다. 지금은 남의 질문을 가로막는 행태까지 나아간 것 아닌가.

전씨 빈소가 문을 닫기 직전인 이날 밤 10시쯤 소동의 끝은 또다른 고성이었다. 다른 빈소의 일반 시민이 전씨 빈소 앞으로 와서 일그러진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나도 고인 모시고 싶어요!” 간헐적으로 이어진 유튜버들의 고성에 지쳤다는 그는 병원 관계자와 기자들을 향해 “저런 짓 좀 못하게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유튜버들을 향해 말했다. “조용히 좀 해주세요. 왜 내가 당신들의 정쟁에 휘말려 쓸데없는 얘기를 들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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