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는 국회 문 앞에서 멈춘다

조해람 기자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관계자들이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의 연내 제정 등을 촉구하며 90여개의 깃발로 국회 담장을 에워싸는 깃발 포위 행동을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관계자들이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의 연내 제정 등을 촉구하며 90여개의 깃발로 국회 담장을 에워싸는 깃발 포위 행동을 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철제 폴리스라인이 넘어질 만큼 강한 비바람이 분 30일 오후에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민들은 국회 앞에 섰다. 땡볕이든 폭우가 오든 거의 매주 국회 앞에 모인다.

이들은 7개월째 같은 이야기를 한다. ‘각 정당은 입장을 밝히고 법 제정 절차에 들어가라’는 것이다. 명분은 충분하다. 법안 4개가 제출돼 있고 국민동의청원은 10만을 넘겼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 국민 88.5%가 법에 찬성한다고 했다. 부족한 건 국회의 의지뿐이다. 제출된 법안은 논의되지 않았고, 청원 심사기한은 2024년으로 밀렸다.

소관부서가 많고 법리가 복잡해 ‘정리’가 필요하다면 논의에 박차를 가하면 된다. 하지만 169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마지못해 마련한 첫 토론회는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만 하다 끝났다. 토론에 참석한 자캐오 성공회 신부는 30일 “오직 성적 지향과 성적 정체성만 문제삼아 부각시키려는 노골적 의도”라며 “민주당은 과잉대표되고 왜곡된 반대 목소리 앞에 기계적 형평성을 핑계로 숨지 마라”고 했다.

학력·지역·장애유무 등 ‘포괄적’ 차별을 다루는 차별금지법에서 성소수자 이슈만 떼어내 부각하는 것이 보수 개신교계의 전략이다. 최종원 밴쿠버 기독교세계관대학원 교수는 <혐오와 한국 교회>에서 “한국 보수 기독교에서 악으로 상정한 것이 과거 공산주의·사회주의, 북한, 친북세력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이슬람이나 페미니즘, 성소수자들”이라고 했다. 차별금지법 논의를 성소수자 이슈에 가둠으로써 보수 개신교는 교계 결속을 강화하고, 표 계산에 여념이 없는 정치권은 여기에 동조하는 공생구조다.

인권의식이 자란 오늘날 그 동조는 ‘적극 결탁’이 아닌 침묵으로 이뤄진다. 혐오 세력으로 낙인찍히기도 싫고 보수 개신교와 단절할 용기도 없다. 그래서 찬반 입장을 미루는 비겁이 국회를 감싼 침묵의 실체다. 국가인권위 조사에서 시민 29.5%가 최근 1년간 어떤 이유로든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시민이 당면한 차별 문제를 외면하고 표 계산에 골몰하거나 역으로 그 문제마저 득표에 이용하는 것. 멈춰선 무지개 앞에 선 시민에게는 두 모습 다 ‘내 삶과 먼 정치’로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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