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 강조하며 ‘새 비대위’로 법원 결정 우회하는 보수 여당

조미덥 기자    문광호 기자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의원들이 지난 2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의원들이 지난 2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이 지난 27일 5시간에 걸친 마라톤 의원총회를 통해 새로운 비상대책위원회 구성과 이준석 전 대표 추가 징계 촉구를 결의했다. 비대위로 갈 비상상황이 아니라는 법원의 결정에 사실상 불복한 것이다. 친윤석열계의 비대위 전환을 통한 이준석 축출 구상은 법원 결정에도 수정되지 않고 도리어 강화됐다.

당내에선 하루 뒤인 28일까지 의총 결정에 대한 공개 반발이 이어졌다. 보수 정당이 법원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행태, 집권 100일이 넘도록 여당 대표 찍어내기에만 혈안이 된 모습에 민심 이반과 국정 동력 상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내부총질’ 문자로 이번 사태를 촉발한 윤석열 대통령이 결자해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새 비대위’를 선택한 이유

국민의힘은 의총을 통해 비상상황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당헌·당규 개정을 하고 새 비대위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현재의 상황을 비상상황으로 해석할 근거를 마련하고 다시 추진해 법원이 지적한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당헌·당규 개정안을 마련해 이달 안에 의총을 열어 다시 논의할 계획이다. 국민의힘은 당초 권 원내대표를 ‘비대위원장 직무대행’으로 현 비대위를 존속하는 안을 추진했지만 이 전 대표가 추가 가처분을 예고하고, 의총에서 반대가 많자 새 비대위라는 우회로를 선택했다.

의총의 새 비대위 구성 결의를 두고 법원 결정 취지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당내에서부터 나온다. 서울남부지법 민사 51부(재판장 황정수 수석부장판사)는 지난 26일 주호영 비대위원장 인선 의결을 무효로 판단하면서, 지난달 말 최고위원 릴레이 사퇴가 비대위로 갈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의총에서도 김웅·윤상현·하태경 의원 등이 법원 결정에 따라 비대위를 해산하고 최고위로 돌아가자는 취지의 주장을 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돌아가면 이 전 대표가 징계가 풀리는 내년 1월에 대표로 복귀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 전 대표를 몰아내려 했던 친윤계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지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무슨 보수 정당이 법원 결정을 무시하나

- 김웅 의원

이를 두고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보수 여당에서 법원 결정도 따르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웅 의원은 통화에서 “무슨 보수 정당이 법원 결정을 무시하나”라며 “특히 재판장 성향이 진보라고 좌표 찍어 공격하는 것은 예전 더불어민주당이 해서 우리가 비판하던 행태”라고 말했다. 그는 “법원 결정을 정치적인 판단으로 몰아 자기들(친윤계) 책임을 면피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김병욱 의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준법 절차 이행보다 이준석 제명에 더 열을 낸다면 우리는 위헌 정당에 더해 ‘치졸한 꼼수 정당’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병욱 의원은 최고위로 돌아가 현 비대위원을 최고위원으로 임명하자는 타협안을 제안했다.

국민의힘은 이 전 대표가 최근 윤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비난한 ‘신군부’ ‘양두구육’ 등 발언을 문제삼으며 윤리위의 추가 징계를 촉구했다. 윤리위 규정 상 추가 징계 수위는 첫 징계(당원권 정지 6개월)보다 높기 때문에 추가 징계가 내려지면 이 전 대표의 대표 복귀 및 차기 전당대회 출마가 차단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를 두고 중립적이어야 할 윤리위에 원내 최고의결기구인 의총에서 징계 지침을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대위 전환 촉발한 윤 대통령 책임론도

당내에선 무리한 ‘이준석 찍어내기’로 민심 이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윤상현 의원은 의총 후 기자들에게 “법원 결정이 민심인데 민심이 우리 당을 떠나고 있다”며 “진흙탕 싸움이 이어지면 대통령 어젠다도 실종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태경 의원은 “우리당 망했다. 당이 정말 걱정”이라며 “법원과 싸우려 하고 이제 국민과 싸우려 한다”고 했다.

대통령 본인 문자로 난리가 났는데 모르쇠로 일관하며 배후에서 당 컨트롤하는 것은 정직하지도 당당하지도 못한 처신

- 유승민 전 의원

윤 대통령 책임론도 제기됐다. 지난달 26일 윤 대통령이 권 원내대표에게 보낸 ‘내부총질’ 문자가 노출된 후 사실상 대통령 승인 하에 비대위 전환이 이뤄졌는데 이번 사태에 정치적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유승민 전 의원은 이날 SNS에 “본인의 문자로 이 난리가 났는데 모르쇠로 일관하며 배후에서 당을 컨트롤하는 것은 정직하지도 당당하지도 못한 처신”이라며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당정이 새 출발을 하도록 역할을 해달라”고 윤 대통령에게 조언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국민의힘 의총 결과에 대해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의원들이 중지를 모아 내린 결론에 대해 일이 잘 해결되길 바란다 이상으로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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