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정기국회 내 예산안 처리 불발···국회선진화법 도입 후 처음 ‘오명’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가 9일 국회 운영위 회의실에서 회동을 마치고 각자 국회의장실로 향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가 9일 국회 운영위 회의실에서 회동을 마치고 각자 국회의장실로 향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여야가 올해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9일에도 내년도 예산안에 합의하는데 실패했다. 2014년 정부편성 예산안 자동 부의제도가 포함된 국회선진화법(개정 국회법)이 시행된 이후 정기국회 내 예산안 처리를 못한 건 올해가 처음이다. 여야는 이번 주말에도 협상을 이어갈 예정이어서 오는 11일 안에 예산안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함께 통과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여야 원내지도부는 이날 수차례 내년도 예산안과 예산 부수법안에 대해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여야는 예산 감액 규모와 법인세 등 쟁점에서 접점을 찾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정부편성 예산안 639조원이 애초에 허리띠를 졸라맨 규모라 3조원 이상 줄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지난 5년 국회 심사를 통한 평균 감액 규모인 5조1000억원 정도는 깎아야 한다고 맞섰는데 중간 지점에서 타협을 보는데 실패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김진표 국회의장이 국민의힘 주장대로 현행 25%에서 22%로 낮추되 2년 시행 유예를 두자고 제안했지만 민주당은 대기업 감세라며 수용하지 않았다.

원내 과반 의석(169석)을 가진 민주당은 이날 김 의장에게 자체 감액안을 담은 예산안 수정안을 제출하고 본회의를 열어달라고 요구했다. 본회의를 열어 민주당의 수정안과 정부 원안을 두고 표결하자는 요구였다. 안되면 이 장관 해임건의안이라도 먼저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은 여야 합의로 예산안부터 처리해야 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의장은 이날 밤 늦게 입장문을 내고 “비록 정기국회 회기 내에 예산안을 합의 처리하지는 못했지만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본회의를 열 수 있도록 여야 합의를 서둘러 달라”고 밝혔다. 김 의장은 “국정운영을 책임져야 할 정부·여당이 다른 정치적 득실을 따지면서 예산안 처리에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의심을 받아서는 안 된다. 원내 과반이 훨씬 넘는 제1야당도 다수당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며 여야 모두를 지적했다.

2014년 국회선진화법 도입으로 법정처리시한(12월2일)을 넘기면 정부의 예산안 원안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는 제도가 생긴 후 8년 만에 정기국회 일정 안에 예산안 처리를 하지 못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안이 지난 8년간 국회가 지켜온 원칙을 깨는 오명을 안게 됐다.

여야 원내대표는 이날 앞다퉈 기자간담회를 열고 상대에게 책임을 넘겼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당의 주장 중 법인세율 고수, 지역화폐 예산 증액, 행정안전부 업무추진비 삭감 등을 무리한 것으로 지적하며 “새 정부가 국민 여망에 맞게 내년 예산을 바로잡고 경제를 살리려는데 첫해부터 인정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나”라고 민주당의 협조를 촉구했다.

박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그간 전체 예산의 1%(올해는 6조3900만원) 이하로 감액한 적이 없었다”며 민주당의 감액 요구가 무리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정기국회 처리라는 목표가 이뤄지긴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정부·여당이 이렇게 소극적, 미온적으로 시간을 끌면서 회피한 적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올해의 정기국회 내 예산안 처리 실패는 여당의 협치 노력 부족, 제1야당이 과반 의석을 가진 여소야대 상황, 캐스팅보트를 쥔 제3당의 부재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의힘에서는 주 원내대표가 친윤석열계의 공격으로 재량권이 없어 예산안 협상을 과감하게 이끌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에선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예산안 협상에 집중하지 못하고 주안점이 분산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치권에선 여야가 이번 주말에 합의점을 도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민주당이 이 장관 해임건의안을 처리하려면 지난 8일 본회의 보고 후 72시간(3일) 안에 본회의를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 원내대표는 “해임건의안이 11일 오후 2시 시한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 여야 협의를 타결해 예산안과 해임건의안을 처리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상식적 수순”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날 저녁 소속 의원들에게 공지를 보내 “오늘 본회의는 개의되지 않는다”면서 “다만 원내 협상 여하에 따라 긴급하게 본회의가 소집될 수 있으니 의원님께서는 주말과 휴일 비상대기 상황을 유지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소속 의원들에게 주말 지역구 일정을 취소하고 본회의 참석에 대비하라고 공지했다. 정치권에선 법인세율 조정에서 타협점이 마련되면 실타래가 풀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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