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또 예산안 합의 못하자 쓴소리
야당 “대통령의 가이드라인 때문”
김진표 국회의장(사진)이 제시한 중재안을 여당인 국민의힘이 사실상 거부하면서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12월 말로 미뤄지고 있다. 여야 원내대표는 16일에도 김 의장 주재로 만났지만 입장차만 확인하고 빈손으로 헤어졌다. 법인세를 1%포인트 내리는 안이라도 수용할 듯했던 국민의힘이 같은 내용의 김 의장 중재안엔 반대했다. 야당에선 “대통령의 독불장군식 가이드라인”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경제 상황에 비춰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을 좋은 게 좋다고 합의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며 “해외 직접투자 전쟁이 붙은 상황에서 법인세 1%포인트 내리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5%에서 24%로 1%포인트 낮추자는 김 의장의 중재안에 대해 재차 ‘수용 불가’ 의사를 밝힌 것이다. 김 의장 중재안 중 행정안전부 경찰국과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예산을 더불어민주당 요구대로 삭감하되 예비비에서 쓸 수 있게 하자는 내용도 “국가기관을 국회 예산이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며 “(해당 조직에 대한) 위법 낙인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대했다.
주 원내대표는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지난 9일 협상 결렬 후 기자들과 만나 “법인세 최고세율을 22%로 못 낮추면 23%나 24%는 안 되느냐고 했는데 민주당이 전부 받을 수 없다고 했다”고 민주당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러나 정작 24%로 인하 의견을 반영해 김 의장이 만든 중재안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김 의장이 이날 회동에서 “서운하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양심이 있어야지”라고 언성을 높인 데에는 이러한 속사정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에선 대통령실이 김 의장의 중재안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히면서 여당도 강경한 입장을 내놓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두 차례나 공개적으로 법인세 인하를 해야 한다고 밝혔고, 경찰국과 인사정보관리단은 정부 출범 후 새롭게 만든 핵심 조직이라 예산 삭감을 용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법인세 부담을 안고 글로벌 기업과 경쟁할 수 없다”며 인하 필요성을 거듭 피력했다.
이런 기류 속에서 주 원내대표와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가 이날 오후 김 의장 주재로 예산안 협상에 나섰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50분 만에 끝났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개입을 비판했다. 박 원내대표는 회동에서 “윤 대통령이 더 이상 독불장군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말고 국회와 여야의 판단을 온전히 존중해주면 좋겠다”며 “마지막 한 발자국을 내딛는 것은 여당인 국민의힘의 몫”이라고 여당의 중재안 수용을 압박했다.
김미애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서로 반반씩 양보해 2%에서 좁혀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박 원내대표는 “의장이 제시한 최종 중재안보다 더 이상 양보할 것이 없는 민주당에 만약 추가로 조건을 내건다면 예산안 합의 처리를 의도적으로 막겠다는 뜻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