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의 한국 정치

‘입 정치’로 차별·혐오 조장…정치가 책임질 일은 “나중에”

김윤나영 기자

② 실종된 인권

[극단의 한국 정치] ‘입 정치’로 차별·혐오 조장…정치가 책임질 일은 “나중에”

노란봉투법·장애인권리보장법 등
인권 보호할 법 제정 시급한데
국민의힘은 시민 갈라치기 급급
민주당은 ‘사회적 합의’ 핑계대며
약자 보호법 처리에 미온적 태도

“여당, 민주주의 기반 무너뜨리고
민주당은 그런 혐오 정치에 편승”

윤석열 정부 출범 첫해인 2022년 정치권에서 혐오정치가 본격화했다. 여성, 장애인단체, 노동조합을 겨냥한 공격이 늘어났다. 국민의힘은 시위하는 시민과 그러지 않는 시민을 갈라쳤다. 일부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 유가족의 절규를 정쟁의 대상으로 삼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의제 해결을 회피하는 ‘나중에 정치’로 시민들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혐오정치를 막고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입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여야가 극한 대립을 계속하는 사이, 인권 정책은 실종됐다. 국회 앞에서는 개혁 입법을 요구하는 단식 농성이 이어졌다. 시민단체는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요구하며 지난해 5월까지 국회 정문 앞에서 46일간 단식 농성을 벌였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파업에 대한 손배가압류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입법을 촉구하며 지난해 12월까지 28일간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올해 수도권 지하철역에서 이동권 보장·장애인 지원예산 증액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정치권은 이들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못했다. 차별금지법, 노란봉투법,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여전히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시민사회는 여야의 대립 정치 속에 인권 후퇴를 걱정하고 있다.

[극단의 한국 정치] ‘입 정치’로 차별·혐오 조장…정치가 책임질 일은 “나중에”

집권 여당 국민의힘의 혐오정치

보수 정치인들은 페미니즘을 공격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기간 내내 안티 페미니즘 논란의 중심에 섰다.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1월 아무 설명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겼다. 같은 해 2월엔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고 주장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4일 “옛날에는 차별이 있었기 때문에 여가부 필요성에 충분히 공감했지만, 지금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여성이 차별받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심각한 한국의 엄연한 구조적 성차별이란 현실은 은폐됐다.

장애인단체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원내대표 시절이던 지난해 9월 지하철 시위를 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를 옹호하는 야권 인사들을 “전장연을 비판하면 일부 야권 인사들은 혐오와 차별이라고 낙인찍는다”며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을 자신의 이윤 창출 수단으로 삼는 전형적인 갈등산업 종사자의 모습”이라고 비난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해 4월 JTBC ‘일대일 토론’에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혐오표현으로 겪은 피해 사례를 언급하자 “지하철 막은 다음에 악플을 안 받길 기대하셨나”라고 말했다.

노동조합 때리기도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신년사에서 “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며 노동·교육·연금 개혁 추진 의사를 밝혔다. 민주노총 등 노조를 ‘기득권’으로 규정한 것으로 풀이됐다. 국민의힘은 파업 참여 노동자들에 대한 손배가압류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을 “불법파업 조장법”이라고 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지난해 월 200여만원을 받는 하청노조 간부 5명에게 파업 종료 후 47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를 요구하던 화물연대 파업을 “특수이익집단의 담합행위”라고 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1월 “민노총을 해체해 세상을 살리자”라고 적었다.

대통령실과 정부 인사들도 혐오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김성회 전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은 2019년 6월 SNS에 “나는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신병의 일종으로 생각한다”고 썼다. 109년 9월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는 “그럼 정부가 나서서 밀린 화대라도 받아내란 말이냐”라고 했다. 차별과 혐오를 조장한 인사를 다양성을 옹호해야 할 자리에 앉혔다는 비판이 나왔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김일성주의자” “총살감”이라고 했던 과거 발언이 논란이 됐다.

혐오정치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 유가족도 겨냥했다. 정치인들은 유가족들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행동과 망언을 쏟아냈다. 권성동 의원은 지난해 12월 처음 꾸려진 유가족단체를 두고 SNS에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가 시민단체의 횡령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미나 창원시의회 국민의힘 의원은 같은 달 SNS에 유가족들에게 “자식 팔아 장사한다” “나라 구하다 죽었냐” “제2의 세월호냐”라고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해 12월 이태원광장에 마련된 희생자 분향소를 찾아가 극우 유튜버들과 악수해 논란이 됐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일부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대통령부터 국민의힘 주류가 노골적으로 혐오정치를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과거와는 양상이 다르다”며 “양극화한 정치 구도하에서는 고정 지지층이나 편견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응집력이 강하기 때문에 정치인들도 혐오정치에 편승한다”고 지적했다.

김상희 전 국회부의장은 “예전에는 극우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자기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기를 주저했는데 요즘은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확대하고 공격해서 박수받는다”며 “정치가 확증편향되니 국민 통합과 멀어진 것”이라고 짚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해 12월29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한테 잘 보이고 공천 포인트를 따려는 사람들이 막말 경연대회 하는 것 같다”며 “권력에 기승해서 민심, 국민의 신뢰를 상실하는 데 크게 기여한 사람들은 아웃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극단의 한국 정치] ‘입 정치’로 차별·혐오 조장…정치가 책임질 일은 “나중에”

다수 야당 민주당의 ‘나중에 정치’

169석의 다수 야당인 민주당은 ‘나중에 정치’를 이어갔다. 국민의힘 일각의 젠더 갈라치기와 혐오정치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혐오 극복을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21년 12월 서울대 강연에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소속 청년들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에 대해 사과하시라”라고 말하자 “다했죠?”라고 답하고 자리를 떠났다. 이 대표는 2021년 11월엔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주셔야 한다”는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SNS에 공유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차별금지법안을 상정조차 하지 못하고 정기국회 종료를 맞았다. 차별금지법은 누구나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나이, 출신 국가, 인종, 피부색, 출신 지역,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 고용 형태,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노무현 정부가 2007년 정부 입법 형태로 발의했고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했다. 16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OECD 회원국 중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다. 유엔 인권조약기구들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는 ‘나중에 정치’를 정당화하는 주요 근거가 됐다. 이 대표는 지난해 1월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다수 의석으로 강행 처리해선 안 된다”며 “사회적 합의라는 용어를 (실행을) 미루는 요소로 쓰기도 하지만 실제로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잉 생산된 쌀의 정부 매입을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지난해 9월 민주당 단독으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소위원회를 통과한 것을 환영했을 때와 대조적이다. 당시 이 대표는 “속도전으로 국민의 뜻에 따라 주어진 권한을 최대치로 행사하는 대표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민주당이 지난해 정기국회 민생입법 과제로 꼽은 노란봉투법도 사회적 합의를 기다리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파업에 대한 손배가압류를 제한할 뿐 아니라, 하청노동자의 원청사용자에 대한 파업권을 보장한다. 국민의힘은 ‘불법파업 조장법’이라고 반대한다. 이 대표는 법안 명칭을 ‘합법파업 보장법’으로 바꾸자면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겠다”고 밝혔다.

장애인권리보장법과 탈시설보호법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고 인간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명시하고 장애인의 자립을 보장하는 책임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있음을 규정한다. 탈시설보호법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도록 정부가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장애인 인권을 침해한 시설을 제재할 수 있도록 한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탈시설 가이드라인에서 “시설 수용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인 관행”이라고 규정한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국민의힘은 불평등이나 차별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국민에서 배제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기반을 무너뜨렸고, 민주당은 ‘나중에’를 외치면서 혐오정치에 편승했다”고 비판했다. 시민사회는 개혁입법은커녕 정책 후퇴를 걱정한다. 여야는 새해에 여성가족부 폐지를 뼈대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권 대표는 “민주당이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 등 성평등 정책마저 포기한다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이어져온 일말의 진보성을 포기하는 상징적인 장면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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