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정부 때 발의 출생통보제, 국회 외면에 1년 3개월간 국회서 잠잤다

조미덥 기자    이두리 기자

문재인 정부, 의사 반대로 대선 직전 발의

정권교체 후 동력 상실, 국회도 외면

정기국회에 법안 추진할 법무실장 공석

이상갑 전 법무부 법무실장. 문재인 정부에서 외부 공모로 들어온 이 전 실장이 지난해 9월 물러난 후 법무부에는 올해 1월까지 ‘출생통보제’를 담당하는 법무실장이 공석이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상갑 전 법무부 법무실장. 문재인 정부에서 외부 공모로 들어온 이 전 실장이 지난해 9월 물러난 후 법무부에는 올해 1월까지 ‘출생통보제’를 담당하는 법무실장이 공석이었다. /국회사진기자단

출생신고 없이 방치되는 영·유아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자 여야는 의료기관이 출생 정보를 직접 등록하는 출생통보제(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를 신속 입법하겠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데 이 법안은 문재인 정부 법무부가 지난해 3월 발의했지만 1년 3개월 동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도 한 번 되지 않은 채 잠들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정권교체기의 혼란과 새 정부의 무관심, 국회의 외면, 의료계의 반대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빠른 법안 통과를 막아온 것으로 분석된다.

23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법무부는 2021년 인천에서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키운 8세 딸을 살해한 엄마가 붙잡히는 등 미출생신고 아동 학대가 이어지자 출생통보제를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를 통해 의사협회 등 의료계의 반발이 계속되면서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의사들 입장에선 반대 급부도 없이 의무와 부담만 늘어났기 때문이다. 정부는 법안의 시급성과 중대성을 고려해 추진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지난해 대선 직전에야 국무회의를 통과시켜 법안을 발의했다.

이후 대선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입법 추진 동력이 상실됐다. 이 법안을 담당하는 법무실은 윤석열 정부에서 리더십의 부침을 겪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상갑 당시 법무실장을 비롯해 전 정부에서 ‘법무부 탈검찰화’ 기조로 외부 공모했던 간부들을 사실상 업무에서 배제했다. 지난해 9월 이 실장이 사임한 후엔 법무실장이 올해 1월 검찰 출신 김석우 법무실장이 임명될 때까지 공석이었다. 법안 논의가 가장 활발한 정기국회에서 출생통보제를 의원들에게 설명할 법무실장이 없었던 것이다.

한 전직 법무부 간부는 통화에서 “이전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법안이면, 전 정부 정책이라고 생각해 바뀐 정부에서 거의 관심을 안 가진다”면서 “출생통보제를 통과시키려면 법무실장이 의원실 찾아다니며 이런 법안이 있는데 이래서 중요하다고 어필을 해야 하는데, 그런 작업을 할 여건이 안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전직 법무부 인사는 “지금 법무부는 에너지가 검찰·수사 쪽에 치우쳐 비검찰 분야에 대한 관심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국회도 대선과 지방선거, 각 당의 전당대회 등에 관심이 쏠리고, 이 이슈에 대한 여론이 사그라들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발의된 법안이지만 더불어민주당도 중점 법안으로 추진하지 않았다. 법사위에서는 기존에 적체된 법안들이 많기 때문에 여야 간사 간 합의 등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는 한 출생통보제만 먼저 심사할 수는 없었다고 설명한다. 의원들 입장에선 이 법안을 추진해서 자신이 얻을 표는 불확실한데, 의료계의 반발은 확실한 상황이라 나서기 껄끄러웠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회에선 의사들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의사가 생명을 살리는 직업윤리가 있는데 영·유아들의 목숨이 걸린 사안에 반대를 했다는 비판이다. 여야 원내 지도부에선 지금의 여론에서 의사들이 강하게 반대하진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의사협회가) 반대하는 이유를 찾아서 반대하는 입장에서 주장하는 것을 해소해주면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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