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독립 영웅’ 홍범도·김좌진·이범석·이회영 흉상 철거·이전한다

국방장관 “독립기념관으로”

홍범도 소련공산당 이력 겨냥

관련 단체 “대한민국 맞나”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세워진 항일 독립전쟁 영웅 5명의 흉상. 왼쪽부터 홍범도 장군, 지청천 장군, 이회영 선생, 이범석 장군, 김좌진 장군. 경향신문 자료사진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세워진 항일 독립전쟁 영웅 5명의 흉상. 왼쪽부터 홍범도 장군, 지청천 장군, 이회영 선생, 이범석 장군, 김좌진 장군. 경향신문 자료사진

육군사관학교가 교내에 설치된 독립군 영웅 김좌진·홍범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 흉상의 철거·이전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25일 “독립운동은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에 독립기념관에 모시는 것”이라고 해 독립기념관으로 흉상을 옮길 계획임을 밝혔다. 이 장관은 “육사에 공산주의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의 흉상)이 있어야 되느냐에서 시작됐다”고 말해 일제 독립 전 소련공산당 활동을 한 홍범도 장군을 겨냥했다.

육사는 흉상을 철거한 자리에 한·미 동맹 공원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한 교내에 백선엽 장군의 흉상 설치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단체들은 “국군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반헌법적 처사”라고 반발했다. 윤석열 정부가 독립운동을 했어도 좌파 활동 경력이 있으면 배제하고, 친일 행적이 있어도 반공이면 치켜세우는 ‘반공 이데올로기 역사전쟁’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이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흉상 있는 자리에) 한·미동맹 공원을 만들어서 백선엽·맥아더 장군 동상을 세우는 운동을 하고 있다는데, 독립운동가를 대체할 수 있나”라는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문에 “그분들도 독립운동에 대한 것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래서 그런 장소가 독립기념관이기 때문에 독립기념관에 그런 분들도 모시고 한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 장관은 “이분들 중 소련공산당에 가입했던 사람도 있다”면서 “공산 세력과 맞서 싸울 간부를 양성하는 육사에 공산주의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느냐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홍범도 장군은 공산당에 가입했지만 1943년에 서거했고, 박정희 대통령이 1962년 당시 건국훈장을 줬다”며 “해군에 2016년 만든 홍범도함이 있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다른 네 사람은 공산당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장관은 “그분들은 아닌데, 육사에 독립운동보다 창군 이후 군사적 분야에 대해서만 하는 게 좋겠다는 개념 설정을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25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25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김 의원은 “지금 독립운동한 영웅들을 기려야 하는데 철거·이동해서 되겠나”라며 국방부가 육사를 지도할 것을 당부했다. 김 의원은 이어 “한·일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서 철거하는 거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며 “군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해야지 정치적 소용돌이에 들어오고 부화뇌동하려 하나”라고 비판했다. 이 장관은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면서 “굳이 육사 교정에 그러한 조형물이 있어야 되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육사도 이날 이 장관과 비슷한 입장을 내놨다. 육사는 입장문에서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은 위치의 적절성, 국난극복의 역사가 특정 시기에 국한되는 문제 등에 대한 논란이 이어져 왔다”며 “이에 육사는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을 다수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곳으로 이전하기 위해 최적의 장소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어디로 옮길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육사는 “육사 교내에는 학교의 정체성과 설립 취지를 구현하고 자유민주주의 수호 및 한·미동맹의 가치와 의의를 체감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데 중점을 둔다”고 했다. 생도들이 생활하는 충무관 건물에 고대부터 독립군, 광복군, 6·25 전쟁, 베트남 파병, 국지도발대응작전, 해외파병 등 모든 역사를 포함한 학습 공간 조성을 검토한다고도 했다. 지금은 일제 독립운동 시기 독립군·광복군이 과하게 강조됐다고 진단하면서 흉상의 학교 밖 이전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풀이된다.

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우당이회영기념사업회·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등 관련 단체들은 반발했다. 이들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군의 기원인 독립전쟁의 역사를 뒤집으려는 매우 심각하고 엄중한 문제”라며 “국군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반헌법적 처사”라고 비판했다.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인 이준식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공동대표는 “친일군인 동상은 버젓이 세우고 독립전쟁 영웅 흉상은 철거하고 도대체 대한민국이 맞나”라며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바쳐가면서 되찾으려고 했던 주권국가 대한민국의 모습이 과연 이런 것일까. 후손으로서 심한 자괴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좌진 장군의 손녀이자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 의원을 지낸 김을동 전 의원은 “임시정부 휘하 군대인 북로군정서와 김좌진 장군은 대한민국 국군의 효시가 돼야 한다”며 “육사의 흉상 철거 시도를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단체들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독립기념관은 육사의 요청을 받고 흉상 전시는 어렵지만 수장고에 보관하는 조건으로 이전을 허락했다고 한다. 이들은 “육사에서 우리가 기자회견 한다는 얘길 듣고 일단 철거 계획을 유보했다”고 주장했다.

야당에서 국가보훈부가 육사에 철거를 지시했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보훈부는 이날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앞서 보훈부가 추진한 독립운동가·전쟁영웅 재평가 작업과 연장선상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친일이냐 독립운동을 했느냐보다는 반공을 했느냐에 초점을 맞춰 공적을 평가하는 흐름이다. 보훈부는 지난달 일제강점기 만주군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백선엽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 기록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표현을 삭제했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반면 의열단을 만들어 독립운동을 했던 김원봉에 대해선 북한 정권과 6·25 남침에 기여한 점을 들어 비판했다. 박 장관은 지난달 1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역사는 김원봉이 북한정권의 수립과 6·25남침에 크게 기여했음을 분명히 말해준다”며 “이에 반해 백선엽은 6·25 최대격전지였던 다부동 등 여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역이다. 22살에 간도특설대에 복무했다는 것뿐, 독립군과 싸운 기록도 없다”고 적었다.

박 장관은 홍범도 장군과 일제 독립 후 조선인민당을 창당한 여운형 선생에 대해 이전 정부의 이중 서훈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최근 광주 출신 중국 혁명음악가 정율성에 대한 광주시의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박 장관과 여당이 거세게 비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란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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