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한인 강제징용’ 외면

일 “식민지배 합법” 고집… 65년 ‘한일조약’이 배상 거부 빌미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1965년 기본조약에
‘강제병합 이미 무효 확인’
무효 시점 놓고 해석 차이

▲ 일 “합방이 합법이었으니
강제징용 아닌 자국민 동원”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 머티리얼이 2차 세계대전 중 이 회사 공장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피해자들에 대해 사과·보상 조치를 잇달아 취하면서 한국인 피해자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것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잉태된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에 대한 과거사 청산작업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안보·경제적 필요성과 미국의 아시아정책에 밀려 기본조약을 체결한 후유증이 50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러 수면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미쓰비시는 지난 24일 중국인 강제노동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1인당 10만위안(약 187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미쓰비시는 앞서 역시 강제노동 피해자인 미국인 전쟁포로에 대해 공식 사과했고 앞으로 영국·네덜란드·호주 등의 전쟁포로들에게도 사과할 계획임을 밝혔다. 하지만 똑같이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노동을 당한 한국인 피해자에 대해서는 ‘법적 상황’이 다르다는 이유로 강제노동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b>이렇게 끌고 가놓고…</b> 일제강점기인 1944년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名古屋) 항공기 제작소에서 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돼 중노동을 했던 조선 소녀들이 기숙사에서 출근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렇게 끌고 가놓고… 일제강점기인 1944년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名古屋) 항공기 제작소에서 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돼 중노동을 했던 조선 소녀들이 기숙사에서 출근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b>어떻게 모른 척하나…</b>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이 2010년 1월26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앞에서 일본 정부가 피해 할머니들에게 후생연금 탈퇴 수당 99엔을 지급한 문제에 대해 미온적인 외교부를 규탄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어떻게 모른 척하나…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이 2010년 1월26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앞에서 일본 정부가 피해 할머니들에게 후생연금 탈퇴 수당 99엔을 지급한 문제에 대해 미온적인 외교부를 규탄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는 합법’이라는 인식에 근거한다. 1965년 일본과 체결한 기본조약 2조에는 1910년 강제병합조약 등 과거 한일조약의 효력에 대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표현으로 합의돼 있어 무효 시점이 애매하다. 한국은 이를 ‘처음부터 식민지배가 무효이며 불법’이라고 해석하고 있고, 일본은 ‘당시에는 합법이었으나 1965년 시점에서 무효가 됐다’고 해석한다. 일본은 이를 근거로 당시 조선은 합법적 조약에 의해 ‘합방’된 상태였고, 전시에 국민동원령을 내린 것은 합법적인 자국민 동원이라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기본조약에서 이처럼 식민지배의 불법성 문제를 애매하게 미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1952년 미국의 대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한국의 전승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전쟁배상과 식민지배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했고, 대신 샌프란시스코 조약 후속조치 성격인 청구권협정을 통해 ‘재정적 채권·채무 관계’를 정리하는 것으로 과거사 문제를 봉합해야 했다. 패망국 일본을 부흥시켜 냉전체제에 대비하려던 미국이 전후처리를 서두르는 과정에서 간과했던 문제들이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에서 한국의 결정적인 협상력 약화를 초래하고, 이것이 곧 ‘부실한 과거사 청산’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이처럼 불완전한 ‘1965년 체제’가 성립되고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한·일 양국의 안보·경제적 상호 필요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국이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냉전이 끝남으로써 이 같은 1965년 체제의 유효성은 소진됐고, 그동안 잠복했던 근본적 문제점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한·일이 더욱 자주, 그리고 더욱 강하게 부딪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일관계에 정통한 정부 관계자는 “지금의 관계 악화는 1965년 체제가 한계에 봉착해 나타난 역사의 필연”이라며 “상호의존적 요인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협력 모델을 찾는 동시에 과거사 문제에 대한 양국의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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