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성숙한 한·중관계” 시진핑 “진정한 다자관계”

유정인·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소통·협력 강화에 공감하면서도 서로 ‘미묘한 견제’ 주고받아

한국 발표문엔 시 주석 ‘안보화 반대’ 없고, 중국은 ‘북 언급’ 빼

미·중 경쟁에서 파생된 한·중 간 긴장 고조, 피하기 어려워져

<b>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b>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윤석열 정부 들어 첫 한·중 정상회담이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윤석열 정부 들어 첫 한·중 정상회담이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15일 정상회담은 미·중 패권 경쟁에서 한국 정부가 감당해야 할 ‘중국 리스크’를 가늠할 수 있는 기회였다. 윤 대통령이 동남아 순방에서 미국의 중국 견제에 동참을 명확히 선언한 뒤라 이에 대한 중국의 반응이 주목됐다. 두 정상은 한·중관계 발전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성숙한 한·중관계”(윤 대통령), “진정한 다자관계 구축”(시 주석)을 말하며 서로 견제구를 보냈다. 정상 간 대면 소통의 물꼬를 트긴 했지만 미·중 경쟁에서 파생된 한·중 간 긴장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과 시 주석은 이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방문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첫 한·중 정상회담을 열었다. 25분간의 회담에서 두 정상은 양국이 긴밀히 협력해 나가자는 데 원칙적으로 공감했다. 윤 대통령은 “양국이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해 나가자”고 말했고 시 주석도 이에 공감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시 주석은 “한·중은 이사갈 수 없는 가까운 이웃이고 뗄 수 없는 협력 파트너”라고 했다. 양국 간 고위급 대화 활성화, 1.5 트랙 대화체제 구축 등 소통 강화를 위한 제안과 공감도 오갔다.

물밑으로는 미국의 중국 압박에 동참한 한국과 한·미·일 밀착을 주시하는 중국 간에 미묘한 입장차가 확인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우리 정부의 외교 목표는 동아시아와 국제사회의 자유·평화·번영”이라며 “그 수단과 방식은 보편적 가치와 국제 규범에 기반한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법치주의와 같은 기본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를 구분하는 미국식 중국 견제 행보에 몸을 싣고 있다. 이번 순방에서 밝힌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미·일 정상의 ‘프놈펜 성명’에서도 미국의 중국 견제에 동참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날 ‘보편적 가치와 국제 규범’ ‘성숙한 한·중관계’를 언급한 것도 이 같은 흐름을 유지하면서 경제·안보상 협력이 필요한 중국과의 적정한 거리 두기에 들어간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 측 메시지에도 긴장도가 높아진 양국 관계가 반영됐다. 시 주석이 “진정한 다자관계 구축”을 언급한 것은 한·미·일 밀착 행보에 불편함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은 “경제 협력을 정치화하고 범안보화하는 데 반대해야 한다”며 “글로벌 산업망과 공급망의 안전과 안정, 원활한 흐름을 함께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중국 CCTV 등이 보도했다. 반도체 등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에 한국이 동조하는 것을 겨낭한 발언이다. 중국은 앞서 한국이 미국이 주도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참여를 공식화하자, “디커플링(탈동조화)의 부정적 경향에 반대한다”(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고 비판한 바 있다. 시 주석은 “양국 간 의사소통을 확대하고 정치적 신뢰를 쌓아 나가자”고도 말했다. 이는 역으로 최근 한·중 간 ‘정치적 신뢰’에 균열이 확산하고 있음을 확인한 발언으로도 풀이된다.

한·중 간 긴장 고조는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굳어지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 중국은 제1무역 대상국이자, 북한 핵·미사일 문제의 주요 이해대상국인 만큼 한국 정부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중 사이 전략적 모호성은 이미 폐기했다. ‘안미경미’(안보도 미국, 경제도 미국) 기조에 따라 미국을 택하는 흐름이 이번 순방을 통해 가속화했다. 이 방향성을 유지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해야 하는 ‘중국 리스크’를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명확히 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두 정상은 한반도 현안과 관련해 논의했지만 원칙적 수준에 그쳤다. 윤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인접국으로서 중국이 더욱 적극적·건설적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한다”고 했고, 시 주석은 “한국이 남북관계를 적극 개선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의 북한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을 두고 시 주석은 “북한의 의향이 관건”이라며 “북한이 호응해 온다면”이라는 전제를 달아 협력의사를 밝혔다. 북한을 압박하는 데 선제적으로 나서진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양국 관계의 방향을 바라보는 양측의 온도차는 결과 발표문에서도 드러났다. 한국 측 자료에는 경제협력의 정치화와 범안보화에 반대한다는 시 주석 발언이 담기지 않았다. 반면 중국 측 발표문에는 북한과 관련한 언급이 없었다.

윤 대통령과 시 주석의 첫 만남은 전격 발표됐다. 대통령실이 정상회담 개최 소식을 알린 건 오전 8시30분쯤이었다. 오후 5시 예정된 회담을 불과 8시간30분 앞두고서다. 한·중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두고 전날까지만 해도 대통령실이 “지켜봐달라”는 입장을 반복해왔다.

양국 정상은 이날 오전 G20 정상회의장에서도 사전환담을 한 바 있다. 시 주석은 “오늘 회담을 기대한다”고 말했고,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시 주석의 ‘대통령 당선 축하인사’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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