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북한인권 실태 첫 공개...아동도 공개 처형, 강제동원 일상화

박광연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건군절 75주년인 지난 2월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을 주석단에서 쌍안경으로 바라보고 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건군절 75주년인 지난 2월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을 주석단에서 쌍안경으로 바라보고 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북한에서 아동 공개 처형을 포함해 사형이 광범위하게 집행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주민들은 일상적으로 관제 집회나 노동에 강제동원되는 등 자유가 박탈된 삶을 살고 있다. 각종 처벌과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사회 각 분야에서 뇌물이 이용되고 있다. 여성은 성폭력과 인신매매에 노출돼 있고 장애인은 ‘난쟁이 마을’에 격리되는 등 취약 계층의 인권도 보장되지 않았다.

통일부는 30일 이러한 내용이 담긴 445쪽 분량의 ‘2023 북한인권보고서’를 발표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북한 인권실태를 진술한 북한이탈주민(탈북민) 508명 증언을 종합해 작성됐다. 2016년 시행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2018년부터 매년 북한인권보고서를 작성해온 정부가 이를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탈북민 증언집 성격의 이번 보고서는 탈북민이 직접 경험한 사례를 최우선으로 담았다. 다만 탈북민이 직접 목격한 것뿐 아니라 전해들은 내용도 포함됐다. 통일부는 또 보고서 내용을 북한 내 상황으로 일반화하기에는 일부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증언자 출신 지역이 양강도·함경북도에 편중돼 있고, 탈북민이 급감한 2020년 이후 사례는 매우 적으며, 탈북민 기억에 전적으로 의존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형 빈번’ 잔혹한 처벌

보고서는 “북한에서는 공권력에 의한 자의적 생명 박탈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국경지역에서의 즉결 처형과 공개 처형, 비밀 처형이 집행되고 있다. 보고서는 “대체로 공개 처형은 운동장과 같은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장소에서 총살의 방식으로 실시됐다”며 “아동을 포함한 주민들이 집단 동원됐다”고 밝혔다.

살인 등 강력 범죄뿐 아니라 마약 거래, 남한 영상물 시청·유포, 방역조치 위반 등 사형 집행 이유는 광범위했다. 18세 미만 아동이 공개 처형됐으며 당사자 동의 없는 생체 실험이 이뤄졌다는 증언도 수집됐다.

처벌과 단속은 일상화돼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나 노동당 중심 정치체제에 대한 비난은 ‘말 반동’으로 불리며 적발시 체포돼 행방불명되거나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됐다. 2017년 이후 내부에 확산된 남한 드라마·영화 등 외부 정보를 접촉·보관·유포할 경우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따라 더욱 강력히 처벌된다. ‘109연합지휘부’라는 특별 전담조직이 주민들의 외부 정보 접촉을 상시 단속하고 있다.

구금시설 내 처우도 열악하다. 고문 등 가혹 행위와 여성 구금자에 대한 나체 검사, 질 내부를 직접 확인하는 체강 검사, 성폭력 등이 빈번했다. 반국가·반민족 혐의를 받는 경우 법원 재판 없이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될 수 있다. 정치범수용소는 총 11곳이 있으며 현재 5곳이 운영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탈출하기 어려운 깊은 산악 지역에 주로 위치해있다고 한다. 변호인이 재판에서 피고인을 변호하기는 커녕 범죄자 취급하는 등 재판 받을 권리도 보장되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통일부·행정안전부·국가보훈처·인사혁신처 업무보고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통일부·행정안전부·국가보훈처·인사혁신처 업무보고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탈된 자유, 돌파구는 ‘뇌물’

보고서는 “북한 주민들은 학생, 노동자, 농민, 군인, 주부 등 신분과 관계없이 관제 집회나 군중 행사에 1년에 수차례 강제동원되고 있다”고 밝혔다. 대규모 건설을 위해 조직된 ‘돌격대’에 강제동원돼 임금을 못받고 고강도 노동에 투입되기도 했다. 학생들은 농사철인 봄·가을에 인근 농장의 농사일에 빈번히 동원되며, 교장·교사가 사적 이익을 취하는 부업지로 학생들을 동원하는 경우도 수집됐다.

시민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유는 보장되지 않고 있다. 거주지를 이전하려면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남한정보 접촉 등을 이유로 강제 이주되는 경우도 있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 의사와 무관하게 직장을 강제로 배치하며, 해외 파견노동자 일부는 소득의 80% 가량을 당국에 바쳐야 했다.

각종 불이익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뇌물이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처벌 무마, 강제동원과 단속 회피, 여행권 발급, 이직, 사회보장 대상 지정 등을 위해 북한 당국에 뇌물을 바쳤다는 상당수 증언이 나왔다. 보고서는 “최근에는 인맥이나 뇌물도 의료서비스 이용에 차별을 야기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어 돈만 있으면 평양의 전문 병원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고 밝혔다.

여성·장애인도 인권 침해

취약 계층 또한 당국의 보호를 받기는커녕 인권침해가 일상화된 환경에 살고 있다. 여성의 경우 강력한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성추행, 성폭력, 가정폭력에 노출돼있다. 보고서는 “대부분의 경우 (성추행·성폭력) 피해자는 피해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창피하고 불이익을 당할 것을 우려해 신고하지 않는다”며 “신고하더라도 성폭력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분위기로 인해 신고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다”고 밝혔다.

탈북을 시도하는 여성의 취약한 사정을 악용한 범죄도 자행되고 있다. 탈북 브로커들이 여성을 중국 남성과 매매혼시키거나 유흥업소에 매매하는 등 인신매매가 발생하고 있다. 중국에서 체포돼 북한으로 강제송환되는 과정에서 성폭력, 강제 낙태를 당한 경우도 있었다. 미성년자도 탈북 과정에서 인신매매를 경험했다.

북한 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존재 자체를 불명예로 인식하는 것처럼 부정적”이다. 보고서는 “북한 당국은 장애인의 결혼이나 출산을 제한하고 ‘난쟁이 마을’ 등을 만들어 다른 마을로부터 격리된 곳에서만 거주하도록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특히 평양에서는 장애인들이 거주하지 못하도록 강제 이주시켰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북한에 살고 있는 이산가족에 대한 차별이 이뤄지고 있다는 증언도 있었다. 보고서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통해 남한의 가족과 만나고 난 뒤 자녀들까지 감시와 차별이 생겼다는 사례들도 수집됐다”고 밝혔다. 납북자 다수는 광산 노동에 투입됐으며, 국군포로는 직장 배치, 군 입대 등 대부분 분야에서 차별을 받는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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