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싱 대사 ‘기피인물’ 지정·추방 요구…중국은 끄덕 안 해

박은경 기자

외교부 “한국 정부를 의도적 비판”…정부 차원 검토는 아직

기피인물 지정, 1998년 러시아와 외교관 ‘맞추방’ 한 번뿐

윤 대통령까지 나선 상황서 중국의 조치 없을 땐 새 ‘불씨’

<b>예비역 장성들, 중국대사관 앞 ‘릴레이 시위’</b> 김근태 예비역 육군 대장이 13일 서울 중구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싱하이밍 주중대사를 규탄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예비역단체 등에 따르면 예비역 장성의 릴레이 1인 시위는 오는 16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연합뉴스

예비역 장성들, 중국대사관 앞 ‘릴레이 시위’ 김근태 예비역 육군 대장이 13일 서울 중구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싱하이밍 주중대사를 규탄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예비역단체 등에 따르면 예비역 장성의 릴레이 1인 시위는 오는 16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연합뉴스

대통령실이 13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베팅’ 발언에 대응해 “중국 측의 적절한 조치”를 요구한 것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여권에선 싱 대사를 ‘외교적 기피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하고 추방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지만, 정부 차원의 검토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정부는 주한 (중국)대사가 정치인을 접촉한 것에 대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주한 대사가 언론에 공개될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의도적으로 우리 정부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싱 대사가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미·중 패권 경쟁을 두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이 반드시 후회한다는 점”이라고 말한 점을 지적한 것이다.

장호진 외교 1차관은 지난 9일 싱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초치했을 당시 “싱 대사의 언행에 대해 엄중 경고하고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고, 모든 결과는 대사 본인의 책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특정 조치를 염두에 두고 (싱 대사를) 초치하고 경고한 게 아니다”라며 “너무 정도가 지나쳤기 때문에 엄중하게 경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대응은 싱 대사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뒤따를 파장을 고려하면 추방 카드를 뽑기는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중국 측의 조치’라는 표현을 쓴 점으로 볼 때 중국 측에서 싱 대사에 대한 징계나 본국 소환 등 후속 조치를 간접적으로 요구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라틴어인 페르소나 논 그라타는 ‘기피인물’이라는 뜻으로 외교 용어로 쓰인다.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 제9조’에 따라 주재국은 비정상적 외교활동, 전력 등을 이유로 파견된 특정 외교관을 외교적 기피인물로 지정할 수 있다. 기피인물로 지정되면 파견국은 해당 외교관을 본국으로 소환하거나 외교관직을 박탈하는 것이 관례다.

한국 정부가 페르소나 논 그라타를 지정한 사례는 1998년 7월 한 차례 있다. 당시 러시아 정부는 주러 한국대사관의 모 참사관을 비우호적인 행위를 한 기피인물로 규정하고 72시간 내에 떠나 줄 것을 요청했고, 나흘 뒤 이에 대한 맞대응으로 한국 정부도 주한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했다.

문제는 중국이 싱 대사의 발언에 대해 “한국 각계 인사들과 접촉하고 교류하는 것은 그의 업무”라며 옹호해왔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기대하는 조치를 할 가능성은 적다는 점이다. 이날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즉답을 않은 채 싱 대사 관련 한국 언론 보도를 문제 삼았다. 사실상 거부 입장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주한 중국대사의 부적절한 처신에 국민들께서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고 언급했기 때문에 중국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싱 대사에 대한 중국 정부의 조치 여부가 양국 간 또 하나의 갈등 요소가 된 셈이다. 중국이 한국의 ‘적절한 조치’ 요구에 대한 불만으로 재차 ‘맞불’ 대응에 나선다면 한·중관계는 겉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할 수 있다.

앞서 루샤예 주프랑스 중국대사는 지난 3월 한 인터뷰에서 구소련 독립국의 주권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으로 국제적 논란을 샀다. 중국 외교부는 “옛 소련 국가들의 주권을 인정한다”며 루 대사 발언이 잘못됐음을 에둘러 인정했지만 루 대사의 징계성 본국 소환설은 부인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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