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정치, 그것이 알고 싶다

⑦정권교체 10년 주기설

정제혁 기자

정치권을 떠도는 속설 중에 ‘정권교체 10년 주기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가 10년 주기로 번갈아가며 정권을 차지한다는 내용이지요.

대표적인 논자가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입니다. 그는 최근 한 언론사 대담에서도 “진보와 보수 간에 두 텀의 싸이클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이명박·박근혜 10년 했다. 이번에는 다시 진보 쪽으로 기우는 것 아닌가”라고 했습니다.

‘10년 주기설’의 근거는 민주화 이후의 경험입니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총 여섯 번의 대선이 치러졌어요. 1987년 대선에선 여당인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야권은 양김(김대중·김영삼) 분열로 정권을 헌납한 꼴이 되고 말았지요.

1992년 대선에선 역시 여당인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90년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굴로 들어간다’며 민정당과 합당해 민자당을 창당한 그는 저돌적인 승부수로 후보 자리를 ‘쟁취’한 뒤 대선에서 평생의 라이벌인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를 넉넉하게 이겼지요.

IMF 외환위기 속에 치러진 1997년 대선에선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여당(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에게 신승을 거뒀습니다. 김대중·김종필 연합(DJP 연합), 이인제 후보의 신한국당 탈당 및 대선 출마, 외환위기를 불러온 경제 실정에 대한 심판 등이 맞물려 이뤄진 첫 정권교체였지요.

1997년 12월18일 치러진 15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김대중 당선인이 이튿날 오전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자택에서 취재진과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발언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7년 12월18일 치러진 15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김대중 당선인이 이튿날 오전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자택에서 취재진과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발언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2년 대선에선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노풍’을 일으키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꺾고 당선됐습니다. 국민승리21 정몽준 후보와의 극적인 단일화, 투표 전날 밤 정 후보의 급작스런 단일화 파기 선언 등 우여곡절 끝에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게 정권재창출에 성공한 것이지요.

2007년 대선에선 ‘성공신화’를 앞세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압도적인 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습니다. 10년 만에 진보에서 보수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이지요. 2007년 대선은 뚜껑이 열리기 전부터 이 후보의 싱거운 승리가 예견됐어요.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심판 성격이 강한 선거였던데다 당시 여권은 당·청 갈등 등 자중지란으로 그나마 갖고 있던 역량도 하나로 모으지 못했거든요.

보수와 진보 간 총력전 양상을 보인 2012년 대선에선 여당인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약 100만표 차이로 꺾고 당선됐어요. 박 후보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정적에 가까운 관계였지만 어쨌건 정권재창출을 이뤄낸 것이지요.

1987년 이후 치러진 대선 결과를 종합하면 ‘노태우·김영삼 정권(보수정권)→김대중·노무현 정권(진보정권)→이명박·박근혜 정권(보수정권)’ 순서로 보수와 진보가 정확히 10년 주기로 정권을 주고받은 것을 알 수 있죠. 1992년 이후 치러진 미국의 대선 결과도 ‘클린턴(민주당) 정권 8년 → 아들 부시(공화당) 정권 8년 → 오바마(민주당) 정권 8년’으로 한국과 비슷한 싸이클을 보이고 있지요.

두 번 연속 집권을 경험하면 해당 진영 전체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가 이뤄진다는 점, 사회적 피로가 쌓인다는 점, 한국 사회의 변화 주기가 대략 10년이라는 점도 ‘10년 주기설’의 근거입니다. ‘10년 주기설’을 그저 ‘허무맹랑한 속설’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지요.

내년 대선은 새누리당이 정권을 잡은지 10년 만에 치러집니다. ‘10년 주기설’에 따르면 이번에는 야당으로 정권이 넘어갈 가능성이 크지요. 그래선지 야권에는 막연한 낙관적 분위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새누리당이 대패한 4·13 총선 결과를 내년 대선의 전조로 읽기도 하지요. 지난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의 선거 슬로건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경제실정 심판’이었어요. ‘10년 주기설’ 맥락에 놓인 선거전략인 셈이지요.

그러나 ‘경향’은 ‘경향’일 뿐 법칙이 아닙니다. 대선은 결국 시대정신과 인물, 비전의 싸움이지요. 게다가 한국 정치는 또 얼마나 다이나믹합니까. 대선 전까지 여러 차례 판이 요동칠 터이고 지금으로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새로운 구도가 짜일 수도 있어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10년 주기설’은 ‘참고사항’일 뿐 ‘금과옥조’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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