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대선 불출마 선언

반 “보수의 소모품 되라는 요청, 받아들일 수 없었다”

유정인·김지환 기자

“편협한 이기주의…인격살해 음해” 정치권·언론 비판

존재감 떨어지고 믿었던 ‘빅텐트’도 겉돌자 결국 ‘백기’

역대 제3후보 중 가장 빨리 낙마…‘제2 고건’ 현실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나와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나와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73)은 1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자신에 대한 음해와 정치권에 대한 실망을 이유로 들었다. ‘정치교체’를 하겠다는 뜻이 왜곡되고 의혹만 부각되는 데 회의를 느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추락하는 지지율, 소멸 위기에 놓인 ‘빅텐트’ 구상 등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 주된 요인인 것으로 풀이된다.

반 전 총장은 이날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서 자신에 대한 언론의 의혹 제기를 강하게 비판했다.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 가짜뉴스”가 정치 참여의 뜻을 실종시켰다고 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말 바꾸기’, 박연차 게이트 연루설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되는 것을 “저 개인과 가족, 유엔의 명예에 상처를 남기는 일”로 받아들인 것이다. 유엔 사무총장 당시 활동이 비판적으로 재조명되는 데도 부담을 느꼈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반 전 총장은 기성 정치권에도 “편협한 이기주의”를 거론하며 화살을 돌렸다. 그는 회견 직후 서울 마포 캠프 사무실에서 참모들과 만나 “표를 얻으려면 나는 보수 쪽’이라고 확실히 말하라는 요청을 많이 들었는데 보수의 소모품이 되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라며 “양심상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진보적 보수주의자’를 자처한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대한 심경을 토로한 것이다.

반 전 총장의 사퇴 결심에는 좀처럼 뜨지 않는 지지율이 결정적 원인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반풍’의 근원인 지지율이 무너지면서 결국 발목이 잡힌 셈이다.

반 전 총장은 한때 30%를 웃도는 지지율로 여권 유력주자로 떠올랐지만, 귀국 이후 줄곧 하락해 왔다. 설 연휴 이후엔 하락세가 더 뚜렷해지며 치명타를 입었다. 세계일보·리서치앤리서치의 지난달 30일 조사에선 13.1%로 선두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32.8%)와 2배 이상 격차가 벌어졌다.

반 전 총장은 이날 바른정당 정병국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 “지지율이 자꾸 떨어진다”고 고민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추락하는 지지율은 반 전 총장이 내세운 ‘빅텐트’ 소멸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의 위상이 유력주자에서 ‘범여권 주자 중 한 명’으로 떨어지면서, 정치세력 규합은 힘을 받지 못했다. 여야는 반 전 총장이 제안한 개헌추진협의체에도 회의적 시선을 보냈고,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들의 탈당 움직임도 주춤해졌다.

‘준비 안된 후보’라는 이미지가 고착화한 것도 한계로 작용했다. 직업 외교관으로 살아온 데다 최근 10년을 국외에서 보냈기 때문에 한국 사회 현안에 유엔 사무총장 경험과 ‘순수한 포부’만으로 대처하기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반 전 총장은 국가위기에 대한 구체적 대책과 비전을 제시하지 않은 채 모호한 입장을 반복해 ‘반반(半半) 후보’ 지적을 거듭 받아왔다.

반 전 총장이 역대 제3후보 중 최단 기간인 20일 만에 대선 행보를 멈추면서 결국 ‘고건 모델’은 현실화했다. 고건 전 총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유력주자로 떠오른 뒤 ‘통합과 화합’을 내세워 2007년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다가 중도 포기했다.

반 전 총장 측 인사는 “후보 자신의 싸움이라 ‘사생결단’이 필요하다. 탄핵 정국에 출마해서 그 결심을 했다고 봤는데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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