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다 남성·대졸·50대 이상…과연 이들이 당신의 입장에 서줄까

김지원 기자

당신은 ‘대의’되고 있습니까

[흑백 민주주의⑤]죄다 남성·대졸·50대 이상…과연 이들이 당신의 입장에 서줄까
데이비드 J 스미스의 책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은 세계 인구를 100명으로 축소했을 때 어떤 지형 속에서, 어떤 이들이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한국 의회가 사회 구성을 얼마나 비례적으로 반영하는지 살펴보는 방법으로 활용하면, 한국엔 남자 90명, 여자 10명이 살고 있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은 5명뿐이며, 50대가 절반이다. 이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치러진 13대 총선 이래 국회의원 당선자 구성비를 따른 것이다.

국회 내 대표자의 당사자성은 중요한 화두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주의 3.0>에서 “국회의원의 구성이 인구 구성 중에서 특정 집단에 편중되어서는 안 된다”며 “공정한 정치적 대표성을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가 과소 대표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국민의 대표자가 특정 계층에 몰려 있을 경우 대의되지 않는 소수자들에게 절박한 정책들이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의회 다양성을 위해선 지역적 기반 없이도 계급, 정체성을 대표하면서 국회에 입성하는 비례대표가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현재 전체 의석수 300석 가운데 비례대표 의석은 약 15% 수준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소선거구제하에 지역구 의석을 독식하고 있는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 의석의 상당수까지 차지하면서 제3정당이 설 기반조차 흔들리고 있다.


■국회의원 중 남성 90%·대졸 이상 95%

특정 세대와 성별 과잉 대표
21대 여성의원 수 19% 불과

1987년 민주화 후에도 국회 구성은 특정 세대와 성별에 몰려 있었다. 경향신문은 13~21대 국회의원 당선자의 특성을 분석, 국회의원이 얼마나 인구비례적으로 국민을 대표하고 있는지 조사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당선인 통계 자료를 활용했고, 13~16대까지는 지역구 당선인만을 분석 대상에 포함시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통계시스템에 따르면 13~21대 국회 총 당선자 2439명 가운데 여성은 242명으로 9.9%에 불과하다. 국회의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해방 이후 최초로 10%를 넘어선 것은 2004년 치러진 17대 총선이었다.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치러진 13~14대 국회엔 여성 당선인이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15~16대에도 여성 당선인은 각각 2명(0.8%), 5명(2.2%)으로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17대부터 비례대표 후보 여성할당제 의무화 등의 영향으로 여성 비율이 늘긴 했으나 21대 국회 기준으로도 여전히 여성 의원은 전체의 19.0%(57명)에 불과하다.

연령대로 보면 13~21대 국회 총 당선자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연령대는 50대(1226명·50.3%)였다. 지난해 통계청 인구 조사에 따르면 50대는 전체 인구의 16.6%다. 전체 당선자 가운데 50대 이상의 비율은 13대 132명(58.9%)에서 18대 204명(68.2%)을 거쳐 21대 249명(83.0%)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반면 청년은 과소 대표되고 있다. 20대 국회에는 국민의당 김수민 의원이 유일한 20대였다. 21대에도 나이가 20대인 의원은 류호정·전용기 의원 2명에 불과하다.

학력을 기준으로 봐도 대졸 이상 쏠림 현상이 13대 이후 꾸준히 강화되는 추세를 보인다. 13대 국회도 전체의 96.0%(215명)가 대졸 이상이었지만, 21대 국회에는 전문대 출신 비례대표 1명 이외엔 지역구·비례대표 모두 100% 대졸 이상으로 구성됐다. 대졸 이상 가운데서도 대학원 출신(재학, 수료, 졸업 등)의 비중은 13대(99명·44.2%) 이후 꾸준히 늘어 21대엔 전체의 61.0%(183명)를 차지하면서 학력 상향 현상이 강화됐다. 문제는 ‘대졸, 50대 이상, 남성’이 과잉 대표되는 가운데, 국회에서 과소 대표되거나 아예 존재 자체가 드러나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계층은 과잉 대표자들의 반대항인 저학력자, 청년 혹은 노인, 여성이다. 이주민, 성소수자, 플랫폼노동자 문제 등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의제이지만 이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소수자 대표들에게 역시 국회의 문턱은 높다.

■적대적 공생하는 거대 양당

거대 정당에 유리한 선거제도
승자독식 소선거구제 방식에
21대 총선 사표 43.7% 달해

그간 국회에서 특정 계층 및 정당이 과대 대표된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의 ‘판’을 짜는 기본 원칙인 선거제도가 거대 양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지됐기 때문이다. 21대 총선을 앞둔 선거제도 개혁 과정에서도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2019년 12월 자유한국당(이듬해 2월 미래통합당으로 합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위시한 선거제도 개혁 움직임에 반발해 “이 법(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비례대표 정당을 결성할 것”이라며 위성정당 카드를 꺼내들었고, 실제로 이듬해 2월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출범시켰다.

“후안무치한 정치 행위”(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라고 비판했던 여권도 이에 똑같은 수로 응수하면서 문제는 더욱 커졌다. 정봉주 전 통합민주당 의원은 열린민주당 창당을 알리며 “많은 분들이 우려도 했지만 우리가 꼭 가야 할 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최배근 전 더불어시민당 공동대표는 창당 선언식에서 “(창당은) 보수 양당의 위성정당이 탈취하고자 하는 소수의 목소리, 시민의 권리를 지키려는 정당방위”라고 말했다.

요는 의석이다. 미래통합당만 비례위성 정당을 만들어 21대 총선을 치를 경우 민주당은 6~7석의 비례의석만 얻는 반면, 미래통합당은 약 25석을 얻을 것으로 점쳐졌다. 이 밖에도 구체적인 논의 과정에서 절반만 연동형 원리를 적용하고, 비례의석 확대 없이 30석 상한선(‘캡’ 조항)을 거는 등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요소들은 모두 거대 양당의 기득권 싸움 가운데 원안에서 어그러졌다.

선거제도 개혁은 ‘87년 체제’ 이후 30년이 흐른 ‘촛불 체제’의 시대적 목소리였다. 2019년 1월 본격적인 선거제도 개편 착수를 앞두고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는 “이제 민주화 30년을 보내면서 보다 나은 민주주의, 한단계 더 성숙된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며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투표가치가 보다 공정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우선 비례대표 비율이 지나치게 낮아 소수자 대표성이 떨어지는 게 문제다. 21대 국회 기준으로도 전체 의석 300석 가운데 지역구 의원은 253석(84.3%)으로 비례대표(47석·15.7%) 의석을 압도한다. 국제의원연맹(IPU)에 따르면 혼합형 선거제 국가들 중 비례대표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아르메니아(68.7%)다. 독일(50.0%), 일본(37.5%) 등의 비례대표 비율도 한국에 비해 훨씬 높다.

자금력이나 인적 네트워크, 당의 지원이 부족한 사회적 약자들은 기성 정당의 지역구 공천 과정을 통과하기 힘들뿐더러 지역을 기반으로 한 투표에서 당선되기도 힘들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 비례대표제다. 비례대표의 대표적인 효과 중 하나는 성별 보정이다. 21대 총선 기준으로도 지역구 당선 여성 의원은 29명에 그쳤지만, 비례대표를 통한 보정 효과로 19.0%(57명)의 의석을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또 비례대표 제도는 그간 청년, 이주민, 장애인 등 기존 정치권에 편입되기 힘들었던 소수자들을 국민의 대표로 세우는 효과를 낳았다.

1등만 살아남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선거 방식도 국회의 다양성을 해치는 요소다. 현행 선거에서 A후보가 48%를 얻고 차순위인 B후보가 47%를 얻는 경우 B후보가 얻은 표는 그대로 사표가 된다. 이런 구조에선 거대 양당 체제 밖의 제3정당이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가 지난해 5월 발표한 ‘21대 총선, 유권자 지지와 국회 의석 배분 현황’ 리포트에 따르면 21대 총선에서 의석에 반영되지 않은 사표는 43.7%로 총 1256만여표에 이른다.

기존 병립형 비례대표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뀌며 원취지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정당 득표에 따라 소수정당에 더 많은 의석이 돌아갈 수 있었다. 병립형은 정당 득표수에 따라 의석을 단순비례로 배분하지만, 연동형은 각 정당이 보유한 지역구 의석수를 고려해 ‘보정’ 과정을 거친다. 이는 지역구 의원이 많은 거대 양당보다 소수정당에 유리하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선거제도 개혁 요구는 산산이 부서졌다.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 의석 47석 가운데 36석을 차지하고, 여당은 민주화 이후 최대 의석인 약 180석을 얻어내면서 ‘쏠림’ 현상은 심화됐다.

■양당의 기득권을 포기시키려면

21대 총선 땐 ‘위성정당’ 꼼수
“양극단 정치 피해자는 시민들”
‘득표율=의석수’ 비례 확대 등
소수자 대표들에 문턱 낮춰야

결국 문제는 제도 개혁의 본취지를 어기고 위성정당을 내세워서라도 기득권을 지키려 한 거대 양당의 ‘꼼수’였다. 다시 본취지를 살린 선거제 개혁 논의가 힘을 받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당파를 초월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수다. 정치권에만 선거제도 개혁을 맡길 경우 또다시 거대 양당이 나눠먹는 21대 총선 결과가 반복할 수 있다. 양당은 스스로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1위 대표제에서 혼합형 비례대표제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뉴질랜드의 경우 국민적 공감대를 기본으로 한 수차례의 국민투표가 개혁의 관건이 됐다.

비례대표 비율 확대를 위해선 현실적으로 의원정수 확대 논의도 병행해야 한다. 이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높은 상황이라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정치권, 범시민사회단체 등의 노력도 필요하다.

강원택 교수는 “국민 모두가 현재의 양극적인 한국 정치 구도로 인한 피해자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의 이해관계를 벗어나 큰 틀에서 한국 정치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왜 (선거제도 개혁을) 해야 하고, 왜 그것이 우리 삶에 중요한지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민선영 간사는 “(선거)제도적 차원의 개혁안은 국회에서 만들지만, 선거제도 개혁에 따라 내 삶의 정치가 어떻게 바뀔지,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는지 등에 대해서도 시민들 사이에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 선거 때 거대 양당의 비례위성 정당 문제가 똑같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구체적으론 ‘꼼수’가 불가능한 제도를 다시 구상하는 것도 중요하다.

권역별 비례대표, 개방명부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개방명부 비례대표제’를 제안한 하승수 전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정치권은 선거 개혁 논의가 잠잠해질 때쯤 과거(병립형)로 회귀하려고 할 것”이라며 “복잡한 제도를 만들수록 꼼수가 등장하기 쉬워지기 때문에, 선거제 개혁의 본의를 살리되 (위성정당 등의) 꼼수를 최대한 없앨 수 있는 단순한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비례제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당의 비례대표 후보 구성 및 공천 방식을 어떻게 할지도 중요한 문제다. 현행 정당 내부의 ‘밀실’ 공천 방식으론 수뇌부의 권한만 키울 가능성이 있다. 실제 19대 총선 당시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천 비리, 통합진보당 경선 비리 등 비례대표 공천을 둘러싼 잡음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하 전 대표는 “한국에선 정당이 자체적으로 공천 개혁을 하긴 어렵다. 상향식 공천 기준 등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다 해봤다고 봐야 한다”며 “현재 차선 혹은 차악에 투표하는 유권자들이 많은 상황에서 (유권자의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개방명부 도입 등이 국회의원 선거뿐 아니라 지방선거에서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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