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후곤 대구지검장 “수사·기소 분리 땐 부패범죄 대응 약화”

정희완 기자
김후곤 대구지검장이 4월 19일 대구지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정희완 기자

김후곤 대구지검장이 4월 19일 대구지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정희완 기자

“수사의 궁극적 목적은 검경이 힘을 합쳐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이다. 그러나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이 실행되면 걷잡을 수 없는 ‘악의 연대기’가 벌어질 거다. 최대 피해자는 나와 내 가족, 국민이다.”

김후곤 대구지검장(57)은 지난 4월 19일 대구지검장실에서 가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며 더불어민주당의 수사·기소 분리 법안을 반대했다. 김 지검장은 그간 검찰권 남용 등의 과오를 두고선 여러차례 “죄송하다”, “반성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런 입법 시도 자체가 전례가 없던 일이라 검찰 내부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분위기”라며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면 스스로 옷을 벗겠다”고 말했다. 김 지검장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대검찰청 대변인, 대검 반부패부 선임연구관, 법무부 기획조정실장 등을 지냈다.

-민주당의 법안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나.

“당황스럽고 참담한 마음이다.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호소할 기관 하나를 공중분해해 국민 불편을 가중하는 법’이라 생각한다. 그간 검찰이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린 점은 죄송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법률안은 합리적인 범위를 완전히 벗어났다.”

-법안 내용 중 특별히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지나치게 성급하게 만든 법이다 보니 체계상 문제, 다른 법률과의 충돌 문제가 너무 많다. 검사의 영장 신청(청구)권은 헌법에 명시돼 있다. 법안에는 사법경찰관이 법관에게 직접 영장을 청구하도록 해놓은 규정도 있다. 특히 검사의 수사를 완전히 막는 건 말이 안 된다.”

-검찰에 수사권이 필요한 이유는.

“기소권을 갖고 있다면, 수사권도 당연히 갖는 게 맞다. 법원의 재판권을 심리 권한과 판결 권한으로 나눠야 한다고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검사가 직접 증거도 수집하지 못하게 만들어놓고 무조건 재판에 이기라고 말할 수 있나. 판사도 서류만 보고 판결문을 써야 하나. 동전의 앞뒤를 분리하면 효용가치가 사라지듯,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면 범죄 처벌의 효용가치가 없다. ‘국정농단’ 사건, 기업범죄, 공정거래범죄 등 검찰이 쌓아온 노하우와 시스템은 당분간 사장될 게 뻔하다. 그사이 부패범죄 대응 능력도 크게 약화할 것으로 본다. ‘계곡 살인 사건’은 검찰의 보완수사를 통해 두건의 살인을 더 인지해 구속했다. 검경 합동수사의 개가인데, 이런 모습을 더는 볼 수 없게 된다.”

-수사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영장 청구도 불가능한가.

“그렇다. 수사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증거를 찾아 법령을 적용하는 일련의 절차이고 이건 영장 사건에서도 똑같다. 경찰이 구속영장을 검사에게 가지고 왔는데, 검사가 그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으면 어떻게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영화 <1987>이 요즘 다시 회자하고 있다. 최환 부장검사 방에 찾아온 경찰이 이렇게 말한다. ‘대공 사건입니다. 그냥 찍으십시오.’ 이게 2022년 대한민국에서 현실이 되게 생겼다.”

-검찰의 수사권은 사라지고 경찰로 이관된다. 예상되는 상황은.

“경찰을 상대로 한 검찰의 사법통제 기능이 사라질 거다. 예를 들어 경찰은 20일 동안 유치장에 피의자를 가두고 수사할 수 있게 된다. 경찰이 그곳에서 어떤 가혹행위나 강압수사를 해도 검사가 그 사람을 석방하라고 강제할 수 없다. ‘요구’만 할 수 있을 뿐인데, 강제성이 없어 경찰이 거부하면 그만이다.”

-경찰에 사건이 몰릴 것 같다.

“경찰의 업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사건 처리에 걸리는 시간은 지금보다 훨씬 길어질 것이다. 경찰이 넘긴 사건을 검찰이 직접 보완수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경찰로 내려보내야 하는 등 이른바 ‘사건 핑퐁’도 심해질 것이다. 가장 큰 피해자는 역시 국민이다. 당장 사건이 없으면 ‘내 일이 아니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모두가 잠재적 피해자다. 최대 수혜자는 범죄자다. 범죄자들 사건 처리가 지연되는 동안 증거를 빼돌리고 피해자에게 합의금을 주는 방식으로 범죄를 은폐하려 들 것이다.”

-민주당은 중대범죄수사청 등 새로운 수사기관을 만들려고 한다.

“조직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수천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모두 세금이다. 검찰이 물론 그간 잘못 처리한 사건도 있었지만, 70년을 이어오면서 쌓아온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수사의 노하우는 사회의 큰 자산이다. 무엇을 위해 이런 소중한 자산을 버리려고 하는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또 신생 기관이나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독립성, 수사의 공정성은 어떻게 담보하겠다는 건가. 결국 민주당이 제기하는 검찰의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6대 범죄로 한정한 현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보나.

“수사는 소추의 일부이고 두가지는 유기적으로 연결된 행위다. 기계적으로 분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담론은 검사의 직접 수사가 너무 많아지지 않도록 절제가 요구된다고 이해하는 게 합리적이다. 수사권을 가지려면 수사를 자제하는 게 옳다는 얘기다. 6대 범죄 수사권은 갖되 국민적 관심사 등 꼭 필요할 때만 더욱 제한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경찰도 이 부분의 수사 역량을 더 키워야 하고, 필요하면 먼저 경찰이 수사하되 검찰과 초동단계부터 협력하면 된다.”

전국 검사장들이 4월 1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회의를 열고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검수완박’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전국 검사장들이 4월 1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회의를 열고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검수완박’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경찰 내부망에 ‘경찰을 모욕하지 말라’는 글이 올라오는 등 검찰을 향해 반발하는 모습도 있다.

“누구도 경찰을 모욕하지 않는다. 결코 경찰관들의 노력을 폄훼하거나 실력을 낮게 평가하지도 않는다. 법률안이 시행되면 국민 다음으로 피해를 보는 게 경찰 공무원이라고 생각한다. 경찰도 수사 역량이 뛰어나고 일선에서 고생하는 거 잘 안다. 그러나 지금보다 4~5배 사건이 몰려도 수사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까. ‘검찰에서 현재 수사하는 6대 범죄의 사건이 수천건밖에 안 되니, 이를 경찰에 이관한다고 해도 경찰 한명당 10건 정도만 늘어나는 셈이라 문제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6대 범죄는 사건의 질과 사회·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에 비춰 일반 사기사건 한건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증거를 수집하고 참고인들을 조사해야 한다.”

-민주당이 법안을 추진하는 이유는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나 검찰권 오남용 등이다.

“과거 검찰이 잘못한 경우도 있었고, 그러한 일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부터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몇개의 사건을 전체 시스템의 문제로 취급하는 오류를 범하면 안 된다. 우리도 끊임없이 제도를 개선하고, 노력해야 한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정치 구호로서의 개혁’이 아니라 검찰이 지속적으로, 스스로 개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도는 많이 마련됐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검찰이 스스로 제도개혁을 이룬 내용 중에 중요한 것만 추려도 특별수사 부서 대폭 축소 등 43개가 넘는다. 이런 제도들이 제대로 운용되는지 감시하고 견제할 일이지, 수사권을 박탈할 일은 아니다.”

-검찰권 통제와 견제 대책은 무엇인가.

“검찰권의 통제와 견제는 현 정부의 수사권 조정으로 어느 정도 실현됐다고 생각한다. 검사는 더 이상 경찰을 지휘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권의 견제와 통제를 위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도입됐다. 검찰 스스로도 각종 자문위원회, 시민위원회 등 시민의 참여를 늘리는 방법을 통해 스스로 자정하고 통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추가적인 개선안도 연구 중이다.”

-검찰의 집단 반발이 민주당의 법안 추진에 기름을 부었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검찰이 보인 모습이 ‘집단 반발처럼 비친다’는 지적은 우리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그런 점에서 검사들의 고민도 없지 않다. 이 문제는 검찰 제도의 본질과 관련된 문제이고, 국민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제도이기 때문에 의견을 말씀드리는 거다. 일반 국민도 다 청원을 할 수 있고, 국가기관도 관련 법에 대한 의견을 당연히 낼 수 있다. 그런 취지로 이해해달라. 검사에게 수사를 못 하게 하는 건 직업적 정체성이나 보람 등을 완전히 부정하는 행위다. 그래서 더 절박감을 느끼고 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검찰의 반발이 결국 퇴직 후 ‘전관예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답변할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국민에게 불편한 형사사법 제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검찰을 향한 미운 감정이 있다는 건 알겠으나 의원들도 국민을 먼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검찰의 중립, 독립성을 둘러싼 논란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국민의 기대만큼 제대로 해내지 못한 일차적 책임은 검찰에 있다. 겸허히 반성하고 또 노력하겠다. 다만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문제도 심각하다. 국회에서 해결할 일, 정부 내에서 해결할 일, 시민사회에서 우선 해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 등을 일단 검찰에 고발하고 보자는 문화와 관행도 타파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의 문제를 정치의 영역에서 해결한다면 검찰은 본연의 임무에 더 충실할 수 있지 않을까.”

-문재인 대통령과 김오수 검찰총장이 면담했다.

“일단 면담이 성사돼 다행이라 생각한다. 한줄기 희망의 빛이 생긴 것일 수도 있다. 다만 민주당이 법안 추진을 중단할지는 불투명하다.”

-앞으로 검찰 고위급들의 사표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나.

“그렇다. 나도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면 옷을 벗겠다. 내가 라디오나 방송 등에 출연하고 언론 인터뷰에 응하는 건 과거 대검 대변인을 지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초에도 수사·기소 분리를 추진하려 했다. 당시에는 검찰의 공개적인 움직임이 없었는데.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은 ‘검수완박은 부패완판(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한다)’이라는 말을 남기고 사직했다. 내부적으로 준비하고 검토했지만 총장 사퇴로 일단락이 되고 그 이상 논의가 되지 않았던 거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정치권에서 실제로 검수완박을 추진한다기보다는 검찰총장 압박이 목적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지금은 압박 차원이 아니라 실현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