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사이에 지휘부 ‘일괄 사의’ ‘반려’…롤러코스터 해양경찰청

박준철 기자    유정인 기자
정봉훈 해양경찰청장을 포함한 치안감 이상 해경 간부 9명이 ‘서해 피격 공무원’ 사건 수사와 관련해 책임을 지고 일괄 사의를 표명한 24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해양경찰청 로비에서 직원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봉훈 해양경찰청장을 포함한 치안감 이상 해경 간부 9명이 ‘서해 피격 공무원’ 사건 수사와 관련해 책임을 지고 일괄 사의를 표명한 24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해양경찰청 로비에서 직원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봉훈 해양경찰청장 등 해경의 치안감 이상 지휘부 9명이 ‘서해 피격 공무원’ 수사 번복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한꺼번에 사의를 표명했지만 대통령실이 곧바로 반려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실은 24일 오후 입장문을 내고 “서해 피격 공무원 수사와 관련해 유가족과 국민께 오해를 드린 데 대해 해경 지휘부가 책임을 통감하고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 순수한 뜻을 존중하지만 현재 감사원 감사 등 진상 규명 작업이 진행 중인 만큼 일괄 사의는 반려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정봉훈 해양경찰청장은 이날 오전 전국지휘관들이 참석한 화상회의에서 “해양경찰청장의 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그는 사퇴 이유에 대해 “오랜 고심 끝에 해경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휘부를 구성하는 것만이 답이라는 결론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정 청장은 지난 22일에도 “피격 공무원 수사 결과 발표와 관련해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킨 점에 대해 국민과 유족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대국민 입장문을 발표했다.

정 청장 이외에도 치안정감 2명과 치안감 6명도 일괄 사의를 밝혔다. 사의를 표명한 치안감 이상 해경 간부는 정 해경청장(치안총감)을 포함해 서승진 해경청 차장(치안정감), 김병로 중부해경청장(치안정감), 김용진 해경청 기획조정관(치안감), 이명준 해경청 경비국장(치안감), 김성종 해경청 수사국장(치안감), 김종욱 서해해경청장(치안감), 윤성현 남해해경청장(치안감), 강성기 동해해경청장(치안감) 등 9명이다.

해경 안팎에서는 대통령실이 감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굳이 해경 지휘부 공백 사태를 초래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사표를 반려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현행 해양경찰법상 해양경찰청장 후보은 되려면 전·현직 치안감 이상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 때문에 치안감 이상 지휘부의 사표를 모두 수리할 경우 경무관을 치안감·치안정감·치안총감으로 3계급이나 승진시켜야 하는 파행이 벌어질 수 있다. 퇴직 간부 임명도 내부 반발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다.

해경은 세월호 침몰 사고로 해경이 해체된 때처럼 암울하고 심통한 분위기다. 감사원은 지난 22일부터 해양경찰청에 감사장을 설치하고 6명을 상대로 ‘서해 피격 공무원’ 수사 번복 경위에 대한 특별감사를 진행 중이다. 감사 결과에 따라서는 수사결과 번복에 책임이 있는 일부 간부에 대한 징계까지 이어질 수 있다. 조만간 검찰 수사도 받아야 한다.

해경에 근무하는 A씨는 “대통령실이 해경 지휘부의 공백을 없애기 위해 사의를 반려한 것 같다”며 “해경은 앞으로 감사원과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해 제대로 업무를 수행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해경 B씨는 “대통령실이 사의를 표명한 간부 중 당시 서해 피격 공무원 수사 지휘라인뿐만 아니라, 다른 간부에 대해서도 반려한 것은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해경 직원들이 가입해 있는 블라인드에는 이날 오전 지휘부 일괄 사의에 대해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세월호 사고 당시에는 아무도 안 나갔는데 이번에는 다르다. 멋진 지휘관들 응원한다”라는 응원의 글이 올라왔다. 또 “조직 발전을 위해 더 이상 정치에 희생 당하지 않기로 한 것 같다. 나가더라도 할말 다하고 나갔으면 좋겠다”는 글도 게시됐다.

반면 해경의 ‘월북 번복’ 발표와 관련한 감사원 감사가 시작됐고, 검찰 수사도 앞둔 상황에서 지휘부의 집단 사의 표명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수사 결과 번복에 대해 책임을 지는게 아니라 항의하는 것 같다” “‘쑈’다. 어차피 다 사의 안된다. 보여주기 끝판왕이다. 멋진 시위다”라는 글도 블라인드에 올라왔다.

정봉훈 해양경찰청장을 포함한 치안감 이상 해경 간부 9명이 일괄 사의를 표명한 24일 오후 인천 연수구 해양경찰청 로비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 연합뉴스

정봉훈 해양경찰청장을 포함한 치안감 이상 해경 간부 9명이 일괄 사의를 표명한 24일 오후 인천 연수구 해양경찰청 로비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 연합뉴스

이날 해경 지휘부가 집단 사의를 표명한 것은 2020년 9월 서해 최북단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북한군의 총격을 받고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사망당시 47)에 대한 수사 결과가 뒤집힌 데 따른 책임이 결정적이다. 해경은 당시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서는 “이 공무원이 도박과 채무 등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자진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월북 의도를 발견하지 못했다”라며 수사 결과를 뒤집었다.

박상춘 인천해경서장은 지난 16일 “국방부 발표 등을 근거로 해수부 공무원의 월북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고 조사를 진행했으나,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해경은 수사 결과를 번복하면서도 아무런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정봉훈 해양경찰청장이 지난 22일 인천 연수구 송도동 해경청에서 2020년 9월 발생한 ‘서해 피살 공무원’ 사건 수사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봉훈 해양경찰청장이 지난 22일 인천 연수구 송도동 해경청에서 2020년 9월 발생한 ‘서해 피살 공무원’ 사건 수사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반면 2년 전에는 국방부의 신뢰할 만한 자료와 북한에 피격된 공무원이 3억 원이 넘는 도박 빚 등으로 실족이나 극단적 선택이 아닌, 현실 도피의 목적으로 자진 월북한 것 같다고 발표했다.

해경은 당시 이 공무원의 월북 증거로 공무원이 부유물에 의지한 채 구명조끼를 입었던 것, 본인의 이름과 나이, 고향, 키 등 신상 정보를 북측에서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던 사실, 이 공무원이 월북 의사를 표현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해경은 국립해양조사원 등 국내 4개 기관이 실종 당시 소연평도의 조석, 조류 등 표류 예측 분석 결과, 이 공무원은 단순 표류가 아닌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그래픽 등 증거까지 제시했다.

한편 숨진 이대준씨 유족은 이날 해경 간부 9명의 사퇴 발표 후 낸 보도자료를 통해 당시 해경청 형사과장과 인천해경서 수사과장도 사의를 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족은 오는 28일 윤성현 남해해경청장과 사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 등 4명을 공무집행방해와 직권남용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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