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재정 쏟아붓는데…지방소멸 위기는 왜 커지나

안광호 기자

윤 정부의 지방소멸대응기금, 지자체 투자계획서 받아 평가단이 심사해 지원…실효성 논란에 “지자체 역량 믿고 권한 확대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2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무회의를 마친 뒤 청사 옥상에서 세종청사 일대를 바라보고 있다.<br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지방시대는 인구 절벽의 해법이기도 한 만큼 중장기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2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무회의를 마친 뒤 청사 옥상에서 세종청사 일대를 바라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지방시대는 인구 절벽의 해법이기도 한 만큼 중장기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 연합뉴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중앙정부의 재정지원은 어떤 방식이어야 할까. 역대 정부마다 ‘국가균형발전’이라는 큰 틀 아래 권한을 쥔 중앙정부가 예산을 지방자치단체에 내려주고 지자체 사업의 성과를 평가하는 식이었다. 문제는 막대한 재정지원에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청년들이 지방의 열악한 일자리와 주거, 문화를 벗어나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기존의 방식을 답습해서는 지방소멸을 막을 수 없다. 재정지원의 방향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윤석열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진정한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중앙정부가 주도하던 대응 재원과 권한을 민간에 대폭 넘기겠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주도권을 갖고 지역 실정에 맞는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재정과 세제를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지방에 재정 쏟아붓는데…지방소멸 위기는 왜 커지나

■지방소멸 대응, 주요 재정지원은

지방소멸 대응을 위한 중앙정부 재원은 다양하다. 지역상생발전기금,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 국고보조금, 지방교부세 등이다. 세부적으로 중첩되는 항목이 많고 집행 주체도 서로 다르다. 중앙정부의 행정·재정 지원이 다양한데도 지방소멸 위기가 고조되는 이유가 뭘까. 차미숙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방소멸 원인이 지역마다 각기 다른데 중앙정부는 각각의 지역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방식으로 지원했다. 지자체도 특정 사업이 지방소멸 대응에 효과적인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우선 예산을 따내는 데 급급했고, 이러한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관행이 이어지다 보니 효과를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최진섭 한국지방세연구원 박사는 “사람과 기업이 수도권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유인 동기에 비해 지방 인구, 특히 청년의 수도권으로의 유출을 막을 만한 재정지원 규모가 크지 않았거나 지원 방식이 효과적이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과거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국정목표로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천명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처음 열린 정례 국무회의에서 “중앙에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지방에서 스스로 발전 전략을 결정토록 하는 것이 진정한 지방시대”라며 “지역에서 실질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최대한 많은 권한을 이양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라고 했다. 9~10월 중엔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자치분권위원회를 통합한 ‘지방시대위원회’가 출범할 예정이다.

윤석열 정부의 지방소멸 대응을 위한 대표적인 재정지원 대책은 지방소멸대응기금이다. 인구가 줄어 소멸 위기에 처한 인구감소지역·관심지역 지자체에 중앙정부가 10년간 매년 1조원을 지원한다. 이 기금은 문재인 정부 때인 지난해 12월 개정된 지방자치단체 기금관리기본법에 의거해 올해 처음 도입됐다. 도입 첫해인 올해는 7500억원, 내년부터 1조원이 배분되며, 기초단체에 75%, 광역단체에 25%가 배정된다. 지방소멸 문제에 직접 대응하기 위한 중앙정부의 첫 예산이자, 중앙정부 예산이 광역자치단체를 거치지 않고 기초자치단체에 직접 교부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지난 5월 지자체들의 투자계획서를 접수·심사·평가해 8월 16일 지원대상 지자체를 선정했다. 행안부의 2022·2023년도 지방소멸대응기금 배분금액을 보면 인구감소지역 89곳은 등급에 따라 2년간 최소 112억원(올해 48억, 내년 64억원)에서 최대 210억원(올해 90억원, 내년 120억원)을, 인구감소 위험이 큰 관심지역 18곳은 최소 28억원(올해 12억원, 내년 16억원)에서 최대 53억원(올해 23억원, 내년 30억원)을 각각 받는다. 기금은 메타버스와 로컬푸드를 접목한 ‘청춘공작소’ 사업(경북 의성군)이나, 지역의 산림자원을 활용한 ‘힐링·치유형 워케이션·농촌유학 거점 조성’ 사업(충남 금산군) 등에 주로 쓰인다. 정부 관계자는 “중앙부처가 기존 국고보조금 지원처럼 개별 사업을 정한 후 해당 지자체에 재정을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자체 투자계획서를 받아 평가단이 심사해 지원하는 최초의 지방소멸 재정지원”이라고 설명했다.

지방소멸에 직접 대응하는 재원이라고 할 수 없지만 유사한 성격의 기존 재원들을 보면, 대표적으로 지역 간 재정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지역상생발전기금과 균형발전특별회계 등이 있다. 2030년까지 한시 운영하는 지역상생발전기금은 2010년 신설된 지방소비세와 함께 도입된 기금으로, 수도권 광역단체(서울·인천·경기)가 재원을 출연해 비수도권 광역단체를 지원한다. 2004년 신설된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는 국가의 균형발전을 목적으로 중앙정부가 지자체의 사업을 지원하는 국고보조금 성격의 재원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8월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인구감소 지역에 대한 연 1조원의 지방소멸대응기금 투자 등 지방소멸 대응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8월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인구감소 지역에 대한 연 1조원의 지방소멸대응기금 투자 등 지방소멸 대응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출발부터 삐걱대는 지방소멸대응기금

행안부는 기금 지원대상 지자체를 선정하면서 투자계획서에 담긴 사업의 독창성과 효율성에 중점을 두고 선정했다고 강조했다. 행안부는 “인구감소와 균형발전 등 분야의 민간 전문가(24명)로 구성된 평가단이 사업의 우수성, 계획의 연계성, 추진체계의 적절성 등 기준에 따라 (지난 5월 지자체들이 제출한) 투자계획을 객관적으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고보조금 등 기존 재정지원 방식과 차별점이 없고 논란과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선정 기준 논란이 대표적이다.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된 부산 서구 등 대도시 지역이 태백 등과 같은 금액(140억원)을 받는 것은 ‘지방소멸에 대응한다’는 기금 도입 취지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전국 122개 지자체가 1691건에 이르는 투자계획서를 제출했는데 모두 대외비라는 점에서 ‘깜깜이’ 논란도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6월 30일 ‘지방소멸대응기금의 도입 및 향후 과제: 중장기적 정책과 거점 전략화’라는 제목의 보고서(류영아 입법조사관)에서 “10년 이상의 장기 사업을 발굴하기 어렵고 연례적인 소규모 반복사업을 실시하기에 용이한 구조”라고 했다. 특히 매년 기금의 운용 성과를 분석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인 정책보다는 단기 성과가 도출되는 근시안적인 보여주기식 사업에 집중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또 (기금의 기능과 역할, 규모 등을 감안했을 때) 인구감소지역·관심지역이 지방소멸 대응에 집중할 유인책이 부족한 실정이라고도 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기존 국고보조금 집행 방식처럼 중앙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주고 거기에 맞는 투자계획서를 받아 심사와 평가를 거쳐 선정하는 방식으로는 지자체가 지역 실정에 맞는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예컨대 이번에 투자계획서를 제출한 일부 지자체의 경우 부지 확보가 안 됐다는 이유로 탈락했는데, 사업 계획 단계에서 부지 확보가 안 됐다는 이유로 탈락시키는 것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결정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어 “특히 선정된 지자체의 경우도 20억~30억원 수준의 지원 규모에서 연간 성과를 내야 하다 보니 투자계획부터 실제 사업까지 지방소멸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사회간접자본(SOC) 추진 사업들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 지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자체의 역량을 믿지 못하는 중앙부처의 시각이 여전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번 지방소멸대응기금이 도입되기까지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한 중앙부처의 부정적 입장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지방소멸대응기금 도입 논의 과정에서 기획재정부 등 중앙부처는 기금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고, 결국 ‘양여금’ 형식으로 도입하는 것으로 최종 합의했다. ‘양여금’이란 국가에서 국세로 징수한 일부 세목의 수입금을 지자체에 양여해 지자체 특정사업에 충당할 수 있도록 한 지방재정지원제도의 일종이다. 보고서는 “기금을 지방자치단체가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이라고 보기 어렵고, 중앙정부가 용도를 지정해 교부하고 성과가 좋은 경우에만 익년도에 교부하는 양여금 방식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지자체 관계자는 “기재부가 기금 도입에 부정적이었던 것은 재원 부족이 표면적인 이유이지만, 속내는 지방자치단체의 역량에 대한 신뢰가 낮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재정지원,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방소멸 위기를 맞고 있는 일본의 대응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일본 정부는 2014년 ‘마을·사람·일자리 창생법’을 제정했다. 지방소멸 위기와 극복의 의미를 담은 창생(創生) 전략은 지자체 주도로 지역에 맞는 시책을 추진하면 중앙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일본 내각부 지방창생추진사업국(2020년 기준)은 총 3044개 사업에 지방창생추진교부금을 지원했는데, 사업을 집행한 지자체는 전체 교부금 사업 중에서 96%가 지방창생에 효과가 있었다고 답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지방기금법에 따라 기금관리조합이 회계연도마다 기금의 성과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는데, 일본 정부는 지방창생전략의 효과를 보기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는 점을 고려해 연간 사업의 성과는 신중하게 해석하고, 관련 데이터를 축적해 장기간의 자료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지방소멸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지방 자립을 위해 재정과 자치분권 강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최진섭 박사는 “지방의 권한과 재정자립 능력을 키워주는 게 중요하다”며 “(조례감면이나 탄력세율 제도 등) 자치단체가 지역발전을 위한 지방세 정책을 스스로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차미숙 선임연구위원은 “참여정부 때 자치분권을 강조하면서 ‘선분권 후보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지방소멸에 적극 대응한 바 있으나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지방소멸 대응은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며 “지방소멸 위기와 재정분권 확대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지자체의 역량 여부를 떠나 일단 권한을 주고, 부족한 것은 중앙정부가 보완하는 식으로 간다는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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