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빼고 ‘디리스킹’으로 가는 G7···한국만 ‘호구’인 국제질서?

김찬호 기자

미국도 첨단기술 제외한 대중국 ‘위험 완화’ 동의

한국, 주력상품 경쟁·일방 외교 탓 진퇴양난 빠져

참관국(옵서버) 자격으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20일 일본 히로시마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각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참관국(옵서버) 자격으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20일 일본 히로시마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각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주간경향]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의 모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지난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렸다. 일본이 의장국이 된 올해 G7에도 한국은 참관국(옵서버) 자격으로 초대됐다. 2021년,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을 포함해 벌써 네 번째 참석이다. 특히 집권 이후 미국, 일본과 밀착 행보를 보인 정부와 여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참석에 높은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이 심리적 G8 국가 반열에 올랐다”는 국민의힘 논평이나 “우리 윤석열 대통령의 국제적인 인기가 상당히 좋구나 하는 걸 느꼈다”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설명이 대표적이다.

한국이 ‘사실상’ G8이라는 주장에 미국이 ‘선긋기’를 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G7 회원국을 둘러싼 논의는 국제정치의 동학(動學)을 잘 보여준다. G7은 중국, 러시아 등을 포함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등장과 함께 중요성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G7이 국제사회 내 민주진영의 모임을 대표하는 이념·가치적 성격이라면 글로벌 금융위기 타개 등을 이유로 출범한 G20은 상대적으로 탈이념화·경제적 성격을 보였다. G20을 중심으로 뭉쳤던 국제사회는 어느새 중국, 러시아 등이 배제된 G7 중심으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이는 국제사회가 ‘민주 대 반민주’라는 대결 구도로 명확해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다만 G7이든, G20이든 국내에 알려진 것처럼 국력순의 모임은 아니다. 가입 역시 명확한 기준이 있지는 않다. 설사 한국이 ‘정신적’ G8이 맞다고 해도 국력이 세계 8위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집권 이후 잇따라 미국, 일본과 정상회담을 하며 밀착 행보를 과시했다. 똑같은 G7 참석이지만 윤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참석에 차이가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윤 대통령이 외치는 ‘자유’가 화답받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 스스로 “이번 G7 정상회의를 통해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각이 사뭇 달라졌음을 실감했다”며 ‘자유’ 일변도의 외교정책에 힘을 실었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바라보는 대로 국제사회가 정말 민주 대 반민주, 자유 대 비자유의 대결 구도로만 흐르는가 하는 점이다.

가치와 정책 측면에서 마음 공유(Like-Mindedness)를 내세운 G7은 고질적으로 보여온 문제가 있다. 바로 ‘단결력’이다. G7 내부에 ‘주요국’(미국·영국·프랑스·독일)과 ‘여타국’(일본·캐나다·이탈리아)이 구분된다는 지적이다. 최근에는 역량 결집을 위한 리더십에 공백이 생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되며 각국 국익에 미묘한 차이가 생겼다. 가치를 기준으로 한 ‘편 가르기’가 ‘먹고사는 문제’보다 앞설 수 있는가의 근원적 문제와 맞닥뜨리게 됐다. 특히 올해 G7에서는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한 다자외교에서 기계적으로 언급되는 ‘대중국 견제’ 외에 특이할 만한 변화가 발견된다. 용어부터 생경한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완화)의 등장이다.

디리스킹은 견제인가, 협력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20일 일본 히로시마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친교 만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20일 일본 히로시마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친교 만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디리스킹은 지난 3월 30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대중국 정책과 관련한 연설에서 언급하며 알려졌다. 국제정치에서 적대적 관계의 성립은 ‘디커플링(관계단절)’이라고 부르는 ‘고립시키기’로 나타난다. 냉전 시대 패권을 유지하려던 미국과 이를 뛰어넘으려던 러시아의 대결 국면과 유사하다. 용어에 대한 정의, 선례가 있는 디커플링과 달리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디리스킹은 명확한 정의, 적용 선례가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 다만 “경제적 의존도를 낮춰,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이겠다. 우리의 관계는 흑백이 아니고, (따라서) 대응 역시 흑백일 수 없다”는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언급에서 개념을 유추해볼 수 있다. 또 “디리스킹은 근본적으로 탄력적이고 효율적인 공급망을 확보해 어느 국가의 강압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장한다는 의미”라는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해석까지 더하면 의미가 좀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새로운 전략에 대한 구체적 실행 방안이 불분명함에도 디리스킹은 공식석상에 등장한 지 석 달여 만에 G7 공동성명에까지 나왔다. 지난 5월 20일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중국과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할 준비가 돼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바이든 대통령은 G7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중국과 분리(디커플링)하려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제거(디리스킹)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다변화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국제질서를 선도하는 국가들의 전략 기조가 급변하면 이를 따라가야 하는 종속국가들은 손해를 본다. 이는 디리스킹에 대한 미국의 정의와 행동에 모순이 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대표적 사례가 ‘반도체’ 문제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첨단 반도체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는 것을 전면 금지했다. 그러면서 동맹국 및 우방국에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한 중국과의 거래자제를 요청했다. 특히 미국 반도체법에 따라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에서 첨단 반도체 생산을 5% 이내로만 늘릴 수 있게 제한했다. 한국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은 중국 내 생산라인 보강을 1년간 임시로 허가받은 상황이다. 정부의 안보전략이 미국 의존도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설정된 상황에서 주력 상품에 대한 수출 자제 요청이 발생했다. 모순이라는 비판에 미국은 ‘반도체 등 첨단산업 빼고 디리스킹’이라는 입장이다.

한국이 처한 진퇴양난의 상황은 구체적 사례로까지 번지고 있다. 중국은 G7이 끝난 직후인 지난 5월 21일 미국 최대 메모리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제품을 제재했다. 심각한 보안 문제가 발견돼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다. 그러자 미국 하원 소속 ‘미국과 중국공산당의 전략적 경쟁에 관한 특별위원회’(중국특위) 마이크 갤러거 위원장이 “중국에서 활동하는 메모리반도체 업체들에 대한 미국의 수출 허가가 마이크론의 공백을 메우는 데 이용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우리의 동맹 한국도 마찬가지로 (마이크론의) 공백을 메우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권고가 따라붙었다.

한국은 주력 상품인 반도체, 중국과 경쟁하는 배터리 등에서 디리스킹이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하다. 미·중 전략경쟁에서 빠른 편승을 주장한 전문가들의 기저에는 중국이 디커플링된 각종 시장을 한국이 석권할 수 있다는 기대 섞인 전제가 있었다. 디리스킹은 해당 전제를 부순다. 반면 미국은 첨단산업을 제외하면 디리스킹이 이득이거나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미국은 중국 소비재를 수입하지 않으면 국내 경제가 돌아가기 어려운 구조다. 2022년 기준, 미·중 교역액이 6906억달러(당시 환율기준 약 870조원)로 역대 최대 규모를 경신했다. 중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미국 물가 관리의 한 축이다. 결국 디리스킹은 원래 하던 것에 이름을 붙였을 뿐이라는 뜻이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20일 일본 히로시마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확대세션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20일 일본 히로시마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확대세션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제는 한국이다. 관세청이 최근 발표한 ‘5월 1~20일 수출입현황’에 따르면 수출액이 324억4300만달러로 1년 전보다 16.1% 줄었다. 무역적자만 43억400만달러다. 연간 누계로는 벌써 295억4800만달러 적자다. 지난해 총 무역적자가 477억8000억달러였던 만큼 하반기 반전이 없다면 적자폭 경신에 도전할 전망이다. 15개월 연속적자가 유력한 상황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에너지 원자재 가격 폭등, 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부변수를 총동원하면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적자의 주요 원인인 반도체 역시 재고소진 등의 사이클에 따라 호황과 불황을 오갈 수 있다. 외부변수, 경기 변동에 따른 일시적·자연적 적자는 안정될 수 있다. 문제는 어디까지나 시장이 남아 있을 때 이야기라는 점이다.

제재의 역설은 이른바 ‘따라잡기 혁신’을 만드는 경우다. 미국 내부 전문가들부터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세계 최고 반도체 회사인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 젠슨 황은 지난 5월 24일(현지시간) 공개된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엔비디아가 석권하고 있던 게임, 그래픽, AI 분야의 반도체를 만들기 시작했다”며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구입할 수 없다면 스스로 만들기 시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젠슨 황이 기업 관계자라는 측면을 감안해도 역사적으로 기술 혁신은 외부의 봉쇄로부터 시작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에서 흘려듣기 어렵다.

게다가 한국의 관건은 ‘중국이 미국의 첨단기술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대립기간 동안 중국이 한국이 장악했던 각종 시장을 대체해 버릴 수 있느냐가 문제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은 “미국이 반도체 등의 첨단기술을 규제해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며 “결국 미국은 반도체, AI 등의 첨단기술 분야에서 더욱 강한 규제를 하고 싶은데 이를 위해 동맹국들의 대중국 교역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이는 주력 상품이 반도체인 우리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의 규제로 중국 내수가 나빠졌다고 하는데 GDP 1% 성장률의 국가가 GDP 4~5% 성장률의 국가경제를 비웃는 격”이라며 “중국이 무너지길 기다리기보다 디리스킹 시대에 맞춘 대중국 전략을 내놓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국 정부의 외교는 미국, 일본에 맞춰져 있다. 정부는 ‘북한’ 문제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북핵 문제와 관련해 미·일과 다양한 논의를 했고, 일정한 성과도 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북핵을 완전히, 완벽히 통제하게 됐다”고 말하는 정부 관계자나 전문가는 없다. 핵보유국과의 전쟁, 군사적 충돌은 미국조차 ‘가보지 않은 길’이다. 한국 정부는 애초에 달성 불가능한 지점을 향해 전력질주를 할 태세다. 이 과정에서 웃지 못할 외교 촌극만 쌓이고 있다.

국익이 목적인가, 한쪽 편에 서는 것이 목적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 AP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 AP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윤석열 대통령이 방문할 것이라는 소문이 교민 사회에 퍼졌다. 실제로 10월에 케이(K) 박람회라고 큰 행사도 준비됐고, 이곳에 대통령이 방문할 것이라는 구체적 정보도 돌았다. 그런데 막상 열어보니 윤 대통령은 오지 않았고, 외교부 장관만 와서 교민 간담회 정도 하고 갔다. 이후 윤 대통령이 오지 않은 이유라고 알려진 것은 없었고, 그냥 윤 대통령이 약속을 펑크낸 것이라는 소문만 돌았다.”

베트남에 사는 교민 A씨는 한국·베트남 수교 30주년을 맞은 지난해 있었던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베트남은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할수록 한국에 주요한 국가가 되고 있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최대 무역수지 흑자국은 미국도 중국도 아닌 베트남이 차지했다. 수출은 609억8000만달러, 수입은 267억2000만달러로 무역 수지 흑자가 342억5000만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43조원)였다. 미국이 282억달러 흑자로 2위를 차지한 반면, 2018년 1위를 차지했던 중국은 22위로 급락했다.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외교를 탈피하겠다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공공연히 밝혀온 기조다. 실제로 지난해 6월 최상목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은 “지난 20년간 우리가 누려 왔던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중국의 대안이 되는 시장이 필요하고 다변화가 이뤄져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당시 섣부른 ‘탈중국’ 발언으로 해석되며 곤욕을 치렀지만, 정부가 대안 시장을 찾고 연착륙할 수 있다면 비판만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난해 베트남은 적어도 수치상으로 중국시장을 대체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중간재를 수입한 것이라고 해도 의미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중국을 대신할 한국의 역외 생산기지로 베트남이 유력한 것으로 치환된다. 안정적 생산기지를 찾든, 시장을 찾든 베트남은 정부가 협력할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미국, 일본을 제외한 외교가 성과로 부각된 사례는 사실상 없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전략, 원칙이 ‘미국’ 외에 없다는 지적을 받는 사례는 또 있다.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의 최대 이벤트는 윤 대통령의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 발표였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는 한덕수 총리가 참석했다. 아세안 국가들은 대부분 미국, 중국 모두와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세안 한복판에서 미국, 일본을 제외한 국가들이 불편할 만한 전략을 발표한 것은 확신에 차 있거나 무신경함을 뜻한다. A씨는 “문재인 정부 때 메콩강 유역 5개국(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태국·베트남) 정상이 참석하는 ‘한·메콩 정상회의’가 열리면서 아세안 국가들 내부에서 ‘한국이 우리를 존중해준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지금은 교민이 봐도 우리 정부가 아세안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세안이 이를 모를 것 같은가”라고 지적했다.

G7은 중국에 대한 견제, 우려를 분명히 하며 막을 내렸다.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표방하는 국가들이 중국과 협력하리라는 전망이다. 이번 G7은 국제사회가 회색지대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주요 국가들 사이에서 한국만 ‘나 홀로 색깔 자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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