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왜 획정위 원안 찬성으로 입장이 바뀌었을까?

박순봉 기자    조미덥 기자

“정치부 기자들이 전하는 당최 모를 이상한 국회와 정치권 이야기입니다.”

“오는 29일 본회의에서 선거구 획정위원회(획정위) 원안을 가지고 통과될 수 있도록 국민의힘에 협조를 다시 한 번 요청드립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6일 국회에서 열린 동물학대없는 대한민국·건강한 반려동물 문화 확산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6일 국회에서 열린 동물학대없는 대한민국·건강한 반려동물 문화 확산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6일 인천 남동구 인천시당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이야기입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위가 지난해 12월5일 국회로 보낸 ‘획정위 원안’을 통과시키자는 말입니다.

홍 원내대표는 ‘획정위 원안’이 민주당에 불리하다는 표현도 붙였습니다. 그는 “최초에 선관위 주도의 선거구 획정위 안은 4개의 신설구와 4개의 합구가 이뤄진다. 4개 줄어드는 것(지역)이 일방적으로 민주당에게 불리한 안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요약하면 ‘선거구 획정위 원안은 민주당에 불리하다. 하지만 원안대로 처리하자’는 것입니다. 홍 원내대표는 지난 23일에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같은 취지의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거듭해서 원안 처리를 촉구하는 것은 국민의힘이 반대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세 달 만에 180도 달라진 여야 입장

시계를 지난해 말, 약 세 달 전으로 되돌리면 이 상황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듭니다. 당시에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입장이 180도 달랐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5일 획정안 초안이 국회로 넘어왔을 때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조정식 민주당 사무총장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야당 간사인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획정위가 행정구역 내 인구수 대비 선거구 수와 지역 균형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 정당에 편향된 획정안을 제시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일방적으로 불리해 받을 수 없다’는 얘깁니다. 민주당 내부에선 “선관위가 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에 여권에 발목이 잡혀서 민주당에 불리한 안을 내놨다(한 민주당 의원)”는 주장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국민의힘은 획정안 초안을 환영했습니다. 정개특위 여당 간사인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2023년 1월31일자 기준 인구와 상·하한 기준으로 분구, 통합을 정한 거라 당리당략적 요인이 개입될 여지가 없었다”며 “민주당 주장은 논리에 맞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인구 기준대로 짜온 안이니 특정 정당에 유리할 게 없다는 얘깁니다. 획정안 초안대로 처리하자는 입장이기도 합니다.

어째서 3개월도 지나지 않아 거대 양당 입장이 정반대로 바뀌었을까요. 이 기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짚어보면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홍 원내대표가 오는 29일, 획정위 원안을 처리하자고 주장하는 근거는 시간 부족입니다. 이 논리는 타당해 보입니다. 26일 현재 총선은 44일 남았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선거구 획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선거구 획정은 총선 전 경기장을 정하는 과정입니다. 지역구를 어떻게 나눌 지를 여야 합의로 정합니다. 공직선거법은 선거 1년 전 이 작업을 마치도록 합니다. 지역구마다 인구가 계속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반영하는 작업입니다. 국회의 늑장 대응으로 경기장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양당은 공천 작업을 했습니다. 분명 빨리 처리해야 하는 시점은 맞습니다.

민주당, 공천 논란 다음 단계로 가자

그럼에도 ‘시간 부족’만으로는 다 설명이 되지는 않습니다. 민주당에게는 빨리 처리해야 할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바로 시끄러운 공천 과정이 이유입니다. 이날 만난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선거구 획정이 빨리 마무리돼야 이번 주까지 최대한 공천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서 “그러면 본선 대진표가 나오고 본격적으로 정권 심판론이 작동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당은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공천을 두고 계파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입니다. 친문재인(친문)계 의원들의 반발도 거셉니다. 공천 과정이 길어질수록 당 지도부에 부담이 됩니다. 일부 지역은 획정이 마무리되지 않아 공천을 못하고 있습니다. 일부 손해를 보더라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다는 게 민주당 내에서 나오는 속마음입니다.

민주당의 압박카드일까

압박용 카드일 수도 있습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이날 기준으로 각각 132개, 130개 지역구 후보를 확정했습니다. 당초 국민의힘 속도가 빨랐지만 민주당이 속도를 올리며 본선 진출자 숫자가 비슷해졌습니다. 문제는 획정위 원안으로 갈 경우 국민의힘이 조정해야 할 지역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존 기준대로 이미 후보를 확정했는데, 선관위 획정안을 적용하면 바꿔야 하는 후보들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국민의힘의 정개특위 소속 한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민주당이 유리한 획정안을 끌어내기 위해서 지렛대로 활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국민의힘이 곤란한 지역구는 강원입니다. 국민의힘은 기존 안에서 ‘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 갑(허영 민주당 의원)과 을(한기호 국민의힘 의원), 강원 속초·인제·고성·양양(이양수 국민의힘 의원), 강원 강릉(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등 4개 지역구에서 3곳에 현역 의원을 두고 있습니다.

획정안대로 바꾸면 이양수 의원과 한기호 의원의 지역구가 혼재됩니다. 획정안은 춘천갑과 을, 강릉·양양, 속초·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 등 4개 지역으로 기존 지역구를 재배치하도록 합니다. 이 경우 춘천·철원·화천·양구의 갑·을에 인제와 고성이 더해져 공룡 선거구가 탄생합니다. 국민의힘 입장에선 한 의원과 이 의원 지역구가 겹치게 되는 게 문제입니다. 현역 공천 배제를 최소화해 갈등을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예상하지 못한 전개가 될 수 있습니다. 한 의원은 이미 이민찬·허인구 예비후보와 예비 경선을 치르는 중이기도 합니다.

논란의 중·성동 갑은 어떻게?

서울 종로, 중·성동 갑과 을 지역구도 국민의힘으로선 부담이 되는 지역구입니다. 국민의힘은 서울 종로에는 최재형 현 의원을, 중·성동 갑에는 윤희숙 전 의원을 단수 공천했습니다. 중·성동 을에는 이영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혜훈 전 의원, 하태경 의원(이상 가나다 순)이 3자 경선을 준비 중입니다. 반면 민주당은 중·성동 갑과 을, 서울 종로 모두 공천을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획정위 안대로라면 종로·중 지역구, 성동갑·을 지역구로 조정됩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성동갑 지역은 국민의힘이 우세하게 지역구가 바뀌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반대로 성동을 지역구는 민주당에 유리해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더하기, 빼기를 하면 유불리는 비슷할 수 있습니다. 다만 민주당 입장에선 어디에도 후보를 확정하지 않아 맞춤형 공천이 가능해집니다. 획정안 초안이 유리하지 않았지만, 공천 진행 속도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 셈입니다.

민주당 주류 입장에선 당내 친문계와 친명(친이재명)계 갈등의 중심이 된 중·성동갑 지역구의 가치도 달라지게 됩니다. 임종석 전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은 서울 중·성동갑 지역구에서 뛰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 지도부는 임 전 실장 공천에 부정적입니다. 임 전 실장이 친문계의 상징적 인물이라 공천 여부에 따라 당내 갈등은 ‘2라운드’를 맞을 수 있습니다.

이는 중·성동갑이 현재로선 민주당에 유리하다고 평가받기 때문에 나오는 갈등이기도 합니다. 친명계 한 의원은 기자에게 “좋은 지역구를 선점해서 달라고 하고, 주지 않으면 비명 학살이라고 말하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획정안 초안대로 성동갑이 돼 국민의힘 우세지역으로 바뀔 경우 민주당 내 쟁탈전 양상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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