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효성 없는 MB 제안… 여당 강행론 힘 주고,야당 흔들기

박영환·박홍두 기자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대한 야당의 반대를 돌파하기 위해 ‘비준 후 투자자-국가소송제도 재협상 요구’라는 카드를 내놨다. 하지만 이는 기존 정부 입장의 반복이며, 재협상을 통해 투자자-국가소송제도의 폐기가 성사될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이 대통령이 내놓은 제안의 핵심은 국회가 한·미 FTA를 비준해 주고 투자자-국가소송제도를 재협상하라는 뜻을 모아 정부에 요청하면 미국에 이를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공동위원회 구성을 통해 ‘협정의 개정을 검토하고 협정상의 약속을 수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 협정문 22장 22조2항과 ‘비준안이 발효되면 90일 이내에 일방이 제기하는 그 어떤 문제도 협의한다’는 내용으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59)과 미국 무역대표부(USTR) 론 커크 대표(57)가 지난 10월30일 교환한 레터에 근거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제안은 협정문 내 근거조항을 직접 밝힌 것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새로울 게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부는 이미 협정문 22장을 근거로 투자자-국가소송제도는 재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반복해왔다. 민주당 협상파인 김진표 원내대표(64)가 이 조항을 근거로 절충안에 가합의했다가 의원총회에서 부결된 내용이기도 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요청하기 위해 15일 국회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의장실 접견실에서 민주당 손학규 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와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요청하기 위해 15일 국회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의장실 접견실에서 민주당 손학규 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와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53)은 “그동안 정부가 이야기했던 것과 다른 내용이 아니다. 투자자-국가소송제도가 국익에 보탬이 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의미가 있다면 대통령이 직접 본인의 말로 국회 지도부에 공식적으로 언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의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다하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재협상을 통해 야당의 우려가 해소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대통령이 재협상을 요구해달라고 밝힌 주체인 국회의 범위부터 모호하다. 최 수석은 야당만의 요구로 재협상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답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미국이 재협상에 호응하고 폐기를 합의할지도 미지수다. 최 수석은 미국 측에 이 제도의 폐기를 요구할 수 있는지 묻자 “국내에서 먼저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사전교감이 있었는지를 두고는 “미국 대통령이 아니라 한국 대통령을 믿어달라”며 확답을 피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의 제안에는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실상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제안을 내놓으면서 야당의 문제제기를 수용하는 듯한 효과를 노렸기 때문이다. 결국 “대통령으로서 할 일은 다했다”는 여론을 환기시키고 여당의 강행처리 명분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나라당 강경파들에게 행동에 나설 수 있는 명분을 주고, 민주당을 흔드는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 홍준표 대표는 3선 이상 중진들과 회동해 조속한 처리 방침을 조율했고, 친이계 조해진 의원은 “FTA 처리에 집권당 원내지도부가 자신이 없으면 빨리 물러나고 다른 주체에 넘겨야 한다”고 황우여 원내대표를 압박했다. 박근혜 전 대표도 “이번 회기 내 처리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강경파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황 원내대표는 “대타협을 통해 한·미 FTA의 결실을 조속히 맺도록 하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한나라당은 16일 의원총회를 열고 FTA 처리방향을 논의할 계획이다.

민주당도 16일 의총을 통해 최종 입장을 정리할 계획이지만 현재로선 부정적 평가가 다수다. 홍영표 원내대변인(54)은 “오늘 대통령의 제안이 기존 당론을 바꿀 새로운 제안도 아니다”라며 “보수·온건파 의원들의 생각이 다수가 아니기 때문에 기존 당론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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