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펠로시 왜 안 만났나’ 설왕설래

심진용 기자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4일 국회에서 공동언론 발표를 통해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4일 국회에서 공동언론 발표를 통해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만남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 대통령실은 4일 윤 대통령의 휴가 일정이 펠로시 의장의 방한 일정과 겹쳤기 때문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미·중 갈등이 격화하면서 중국의 의중을 살핀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도 일축했다. 이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양론이 엇갈린다. “외교적 상례에 어긋나고, 미국 측의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주장과 “역내 정세를 감안한 신중한 결정”이라는 주장이 부딪히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과 40여분간 전화통화를 진행한 것에 대해서도 면담 불발에 따른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이어진다.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는 이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약 2주 전에 펠로시 의장의 동아시아 방문 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했고, 한국에도 대통령과의 면담이 가능한지를 물어왔다”면서 “그때 마침 대통령의 지방 휴가 계획이 확정되었기 때문에 그 기간 펠로시 의장이 서울에 온다면 만남은 힘들 것 같으니 양해를 구한다는 답을 전했다”고 밝혔다.

면담을 조율하던 당시만 해도 윤 대통령이 지방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기 때문에, 만나기 힘들 것 같다는 입장을 펠로시 의장 측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후 윤 대통령은 경제상황의 엄중함 등을 이유로 지방 휴가 계획을 취소하고, 서울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결정했지만 그런 사정 때문에 만나지 않기로 한 결정을 다시 뒤집기는 쉽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회담이 없다는 것을 상대(펠로시 의장)도 알고 순방에 나섰는데, 그 이후에 다시 ‘아쉬우니까 만나자’고 하는 건 외교 프로토콜상 쉽지 않다”면서 “반나절 남짓한 펠로시 의장의 빠듯한 스케줄을 감안하면, 그런 제안을 갑작스럽게 하는 것도 결례”라고 말했다. 펠로시 의장이 이미 김진표 국회의장과 회담 일정을 잡아놓은 데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방문 일정까지 예정된 상황에서, 대통령과의 면담 일정을 추가로 잡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대만 문제와 관련해 중국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똑같은 사안이라도 다른 각도에서 보겠다고 작정을 하면 원래 설명한 것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면서 “만나지 않겠다고 한 게 2주일 전이고, 대만 방문은 1주일 전”이라고 말했다. 대만이나 중국의 문제가 아니라 휴가 일정이 문제였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앞서 최영범 홍보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모든 것은 우리 국익을 총체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의 이 같은 설명과 달리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중국 등 외교문제를 의식해 펠로시 의장을 피한 것’이라는 전제로 비판과 옹호가 엇갈리고 있다. 여권이 비판하고, 야권이 옹호하는 이례적인 구도의 논쟁이 진행 중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이) 중국과 상당한 마찰을 빚고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라서 윤 대통령이 꼭 만나지 않아도 크게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김의겸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윤석열 대통령을 칭찬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펠로시를 만나는 건 미·중 갈등에 섶을 지고 불길에 뛰어드는 것”이라고 적었다. 박홍근 원내대표 등이 날을 세우긴 했지만, 만남 불발이 아니라 만남 여부를 두고 전날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대통령실 내부 혼선에 방점이 주로 찍혔다.

비판은 오히려 여권에서 나오고 있다. 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은 이날 SNS에 “대학로 연극을 보고 뒤풀이까지 하면서 미 의회의 대표를 만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라고 적었다. 전날 윤 대통령 부부의 연극 관람까지 언급하며 만남 불발을 비판한 것이다. 하태경 의원도 SNS에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직후라 외교적 부담을 느낄 수도 있지만 대만 방문과 한국 방문은 별개의 문제”라며 “대통령이 휴가 중이라도 국익을 위해 면담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적었다.

윤 대통령의 이번 결정이 미국 보수층 등에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방 휴가 일정을 취소하고, 서울에 머무르고 있으면서도 만나지 않은 것은 윤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을 의도적으로 피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과 나토 정상회담 등을 통해 ‘가치에 기반한 동맹’을 강조해온 윤 대통령이 막상 부담스런 상황이 닥치자 그간 입장과 다른 행동을 보인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지적은 외교당국을 중심으로 대통령실 내부에도 전달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30분부터 40여분간 펠로시 의장과 통화했다. 펠로시 의장과의 통화는 이날 오전 확정이 됐다.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는 “면담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전화로라도 따뜻한 인사를 하고 싶다는 대통령의 의향을 오늘 아침에 일찍 타진했고, 펠로시 의장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여권 내부의 비판과 외교당국의 우려 등을 감안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펠로시 의장이 전날 입국할 때 국내에서 의전 인력이 아무도 나가지 않아 ‘의전홀대’ 논란이 일고 있는 데 대해 최영범 홍보수석은 “미국 측이 영접을 사양해 국회 의전팀이 공항 영접까진 하진 않는 것으로 조율이 된 상황으로 안다”고 밝혔다. 주한미국대사관 측도 “주한미국대사관은 미국 정부 고위급 방한 시 한국 외교부와 긴밀히 협조해 의전, 기획 관련 사항을 조율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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