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9일 국민의힘 지도부 공백 사태 해법을 두고 “당이 내린 결론을 존중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법원의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제동 결정 이후 사흘 만에 직접 입장을 표명했다. 원칙적 입장을 밝히며 당 내홍과 선을 긋는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여권의 총체적 혼란상 앞에서 당무 불개입이란 원칙과 국정동력 타격이라는 현실 사이 윤 대통령의 리더십이 다시 시험대에 섰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만나 여당 혼란상에 대한 대통령실의 역할론과 관련한 질문에 “우리 당의 의원과 우리 당원들이 중지를 모아 내린 결론이면 그 결론을 존중하는 게 맞다”면서 “(당이) 충분히 합리적인, 당과 국가의 장래를 위해 합당한 결론을 치열한 토론을 통해 낼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당의 비대위 전환 결정 이후 윤 대통령이 직접 당 상황에 의견을 표명한 건 처음이다. 다만 발언 취지는 당무와 거리를 둔다는 원칙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 발언이 지난 27일 국민의힘 의원총회 결과에 힘을 싣는 것이냐는 해석에 “그간 대통령실은 당무에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았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드리는 것 외 달리 답변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국민의힘은 의총을 열고 새 비대위를 꾸리되 그 전까지 권성동 원내대표를 신임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의 당·정 관계 설정은 선택적 거리두기로 요약된다. 당 내홍 등 당무는 당·정 분리, 국정운영은 당·정 일체를 강조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 25일 여당 연찬회에 직접 참석하는 등 ‘당·정 원팀’을 강조하며 스킨십 늘리기에 나섰지만, 당 내홍 상황에 대해선 무대응 원칙을 고수해 왔다.
이 같은 발언에는 당무에 공개적으로 발언하면 민주적 당 운영에 차질이 생긴다는 인식이 담겼다고 대통령실은 설명했다. “당이 윤 대통령의 입을 바라보고 ‘윤심’(윤 대통령의 의중)에 집중하면 ‘여의도 출장소’로 전락할 수 있다”(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8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당 윤리위에서 중징계를 받자 “당을 수습하고 국민 기대에 부응하는 당으로 거듭나는 데 대통령이 언급하는 것이 도움이 안된다”고 말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다만 이번 사태는 통상의 당무와 구분되는 지점이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의 ‘내부총질’ 문자 노출이 여당 비대위 전환을 직접 촉발해 윤 대통령의 ‘당무 불개입’ 원칙이 의구심을 산 상태에서 사안이 진행됐다. 이후 한 달간 혼란이 일파만파로 번져 여권 전체의 위기로 확산하며 국정운영 동력이 훼손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권 내부에서도 산발적으로 윤 대통령의 공식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여권 혼란이 장기화하면서 대통령실 부담은 커지는 중이다. 민생·정책으로 국정난맥상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던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하다. 불개입 원칙을 깨고 공개적인 정리에 나서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당장 (여당 혼란상이) 대통령 리더십에 타격이 될 수 있지만 지금 개입하게 되면 그로 인해 불거질 논란과 ‘대통령 당’의 폐해가 반복될 수 있다”면서 “당 결정을 존중한다는 것 외에 현재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 혼란상에 더해 제1 야당의 ‘이재명 체제’가 시작되면서 윤 대통령과 여의도 정치권의 관계설정은 복잡한 함수로 들어가게 됐다. 윤 대통령은 이날 출근길에 기자들에게 “야당을 포함해 국회와 함께 일해야 한다”며 “여야가 경쟁도 하지만 국익과 민생을 통해 하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가 대통령과 야당 수장이 만나는 일명 ‘영수회담’을 제안한 것을 두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야당과의 대화의 문은 언제든지 열려있다”면서도 “(대통령실은) 그동안 여야 지도부 면담과 관련해선 언제든지 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씀드린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와의 단독 회담에는 선을 그은 것으로도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