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시찰, 한·일 협의만 12시간…계속되는 실효성 논란

박광연 기자
윤현수 외교부 기후환경과학외교국장(오른쪽)과 일본 측 카이후 아츠시 군축불확산과장이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후쿠시마 오염수 현장 시찰 관련 실무협의에 앞서 자리에 앉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현수 외교부 기후환경과학외교국장(오른쪽)과 일본 측 카이후 아츠시 군축불확산과장이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후쿠시마 오염수 현장 시찰 관련 실무협의에 앞서 자리에 앉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현지시찰 문제를 논의한 한·일 국장급 회의가 자정을 넘어 12시간의 ‘마라톤 회의’로 진행됐다. 그만큼 한국 측 요구가 방대했고 양국의 세세한 조율을 거쳐야 하는 현안임을 보여줬다. 시료 채취 등 독자적 검증에 선을 긋고 향후 국제원자력기구(IAEA) 최종 검증 발표를 따르는 수순이라 시찰의 실효성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14일 외교부와 국무조정실 등에 따르면 한·일 정부의 관계부처들이 참여한 후쿠시마 오염수 현지 시찰 관련 국장급 협의는 지난 12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오후 2시15분쯤 시작해 다음날 새벽 2시쯤까지 장장 12시간 동안 진행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우리 측 시찰단이 세세하게 보고 싶은 활동 범위나 자료를 폭넓게 많이 요구했고 이에 대해 일본 측이 내부 협의하고 결과를 알려주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며 “일본 측도 상당히 호의적으로 우리 측 광범위한 제안을 검토했고 상당수 굵직한 것들은 진척이 있었다”고 밝혔다.

협의 결과 한국 정부 시찰단의 일본 방문 기간은 3박4일로 결정됐다. 오는 23~24일 이틀을 포함한 기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3박4일 일정에 대해 어떻게 조를 나눠 무슨 주제로 둘러볼지 개략적인 합의가 이뤄졌으나 조금 더 협의해 발표하겠다”며 “일본이 현재까지 대단히 협조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양국은 국장급 협의 과정에서 일부 입장 차를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이 요구한 일부 시찰 항목에 대해 일본 측이 난색을 표하거나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그날 처음 제안한 것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주 양국 정부의 실무급 전문가들 간 화상회의를 통해 시찰 프로그램 등 세부 내용을 조율하기로 했다.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과정 전반의 안전성을 검토한다는 기조 아래 각종 시찰 항목을 세세하게 요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박구연 국무조정실 1차장은 지난 12일 브리핑에서 “오염수 정화 및 방류시설 전반의 운영 상황과 방사성 물질 분석 역량 등을 직접 확인하고 우리의 과학적·기술적 분석에 필요한 정보를 파악할 계획”이라며 “어느 하나는 보고 어느 하나는 뺀다는 생각은 현재로서는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오염수를 정화하는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 등 시설이 주요 시찰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신재식 원자력안전위원회 방사선방재국장은 지난 12일 “현장에 가면 직접 (알프스) 설비와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로데이터(원자료)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오염수 저장)탱크에서 어떻게 시료를 채취하는지, 알프스를 통과한 후에 시료를 어떻게 분석하는지를 같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찰 목표가 기대만큼 달성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의 광범위하고 세세한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실제 검증에 가까운 활동”을 주장한 것과 달리 일본 정부는 오염수 안전성 평가·확인에 선을 긋는 등 시찰 성격을 둘러싼 입장 차가 드러난 상태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와의 국장급 협의를 ‘설명회’로 부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안전성에 대한 독자적 검증으로 나아가기에는 한계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스스로 오염수 시료 채취 등 검증 영역에 선을 긋고 있기 때문이다. 박 차장은 “사료 채취로 분석하는 작업은 공식 검증기관인 IAEA 주관하에 진행되고 있다”며 “우리가 처리수를 채취하면 국제기구의 신뢰를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의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시찰 결과가 오는 6월 말 발표될 IAEA 최종보고서 내용과 다를 가능성은 없다고도 밝힌 상태다.

이에 따라 시찰단 활동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 차장은 “(IAEA 발표 전에) 뭔가 우려스러운 점이 발견되면 바로바로 조치를 취해 바로잡을 일”이라고 시찰에 의미를 부여했지만 나흘에 불과한 시찰 기간에 “점검 내지 확인” 이상의 유의미한 결과를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20명 내외로 구성될 시찰단에 민간 전문가를 배제하려는 기류를 놓고도 시찰 결과의 신뢰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시찰단 활동이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정당화하는 들러리에 그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시료 채취와 방류 직전까지의 시뮬레이션 절차 등 대국민 안전 확보를 위한 사항은 무엇 하나 진전된 것이 없어 보인다”며 “제대로 된 검증도 못 하는 후쿠시마 시찰단 파견을 당장 멈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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