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열려면 ‘로봇의 바퀴’를 없애라

이정호 기자
로봇이 달을 탐사하는 상상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024년 달 착륙을 대비해 월면의 험한 지형을 돌아다닐 로봇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NASA 제공

로봇이 달을 탐사하는 상상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024년 달 착륙을 대비해 월면의 험한 지형을 돌아다닐 로봇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NASA 제공

험한 경사면·깊은 운석 충돌구 등 ‘자동차 형상’으론 달 탐사 한계
NASA, 사족보행 로봇 ‘라마’·개 닮은 ‘네불라 스폿’ 등 개발 잇따라
작은 중력·방사선·극한 온도 등 과제 수두룩…운용까지 ‘산 넘어 산’

회색 먼지가 폴폴 날리는 땅 위를 바퀴 네 개가 장착된 골프 카트만 한 차량이 달린다. 기우뚱거리며 갑작스러운 좌우 회전까지 해내는 모습은 박진감마저 느끼게 한다. 1971년 7월 달에 착륙한 아폴로 15호의 우주비행사들이 월면차의 첫 주행에 성공한 순간을 담은 동영상 속 모습이다.

월면차가 등장하기 전 달 탐사는 오로지 우주비행사들의 다리에 의지해 진행됐다. 하지만 월면차 덕택에 더 많은 관측 장비와 달의 암석을 싣고 수㎞를 이동하는 일도 어렵지 않게 됐다. 흥미로운 점은 월면차 첫 주행 이후 50년이 지났지만, 다른 천체의 표면을 탐사하기 위해 실용화된 로봇들이 여전히 바퀴를 장착한 자동차 형상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 바퀴만으로는 달 탐사 불가능

문제는 최근 몇 년 새 떠오른 미래 우주개발 목표를 달성하려면 바퀴만 굴려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미국 주도의 다국적 달 탐사 프로젝트인 ‘아르테미스 계획’의 목표에는 이런 환경 변화가 잘 반영돼 있다. 아르테미스 계획에는 올해 5월 한국도 정식 참여했다. 아르테미스 계획의 1차 과제는 2024년 인간을 달에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목표는 달을 자원 채굴을 위한 광산과 먼 우주로 나아가기 위한 터미널 등으로 변신시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달에 여러 사람이 오래 머물 상주 기지를 짓는 건 필수다. 우선 거주 공간 확보를 위해선 달의 지하 동굴을 살펴봐야 한다. 큰 토목공사 없이도 방사선과 운석을 피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굴 안은 일반적으로 지형이 험하다. 이런 곳에선 바퀴를 굴려 이동하긴 어렵다. 물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달의 일부 운석 충돌구도 바퀴로 다니기엔 험준하다. 주먹에 맞은 밀가루 반죽처럼 움푹 파여 가파른 경사가 있어서다. 바퀴에 의존하는 탐사로는 할 수 없는 일이 한꺼번에 닥친 것이다.

문 열려면 ‘로봇의 바퀴’를 없애라
NASA가 실물로 내놓은 ‘라마’(위)와 ‘네불라 스폿’.

NASA가 실물로 내놓은 ‘라마’(위)와 ‘네불라 스폿’.

■ “걷는 로봇 아이디어 모아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전방위적인 노력에 나섰다. 지난주 NASA는 교수 지도를 받는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의 아이디어를 모으는 연례 행사인 ‘빅 아이디어 챌린지’의 주제를 ‘바퀴 없는 로봇’으로 정했다고 발표했다. 매년 NASA가 직면한 과제가 외부에 공개된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행사다. 특히 NASA 내부 전문가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보물’ 같은 아이디어가 등장할 수도 있는 기회다.

NASA는 새 로봇이 가파르고 험한 경사면과 깊은 운석 충돌구 아래를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고, 동굴 같은 지하를 탐사할 능력을 갖출 것을 제시했다. 뛰거나 기는 등 모든 이동 방식이 허용되며, 바퀴만 달려 있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폴 윤 NASA 홍보대사(미국 엘카미노대 수학과 교수)는 “NASA는 탐사 성공을 위해 필요한 기술과 현재 기술의 차이를 메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동물형 로봇 등장했지만 갈 길 멀어

지난 몇 년 새 NASA 내부에서도 바퀴 없는 로봇을 만드는 게 뜨거운 화두가 됐다. 최근 개발이 완료된 사족보행 로봇인 ‘라마’가 그 결과물이다. 남미 안데스 산맥에서 짐을 옮기는 동물인 라마의 이름과 기능을 본떴다. 길이 1m에 중량 70㎏인 라마는 사람이 빨리 걷는 속도인 시속 6.5㎞로 이동한다. 전진과 후진은 물론 게처럼 옆으로도 이동한다. 진짜 라마처럼 등에 화물을 짊어질 수도 있다.

‘네불라 스폿’도 주목된다. 개를 닮았는데, NASA가 제공하는 자율주행 기능과 제조사인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만든 기계 시스템을 결합했다. NASA는 원격조종이 필요 없도록 ‘생각하는 능력’을 부여할 예정이며, 향후 달 동굴 탐사에 활용할 계획이다.

하지만 달에서 바퀴 없는 로봇을 운용하는 데까지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유범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실감교류인체감응솔루션 연구단장은 “달은 중력이 작기 때문에 로봇 관절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지나치게 긴 거리를 이동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우주의 방사선으로 인해 전자 부품이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극심한 온도 변화도 문제다. 달의 온도는 음지에선 영하 170도, 양지에선 영상 130도에 이른다. 유 단장은 “온도 변화에 대응할 제어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지구의 로봇과는 개발 환경이 크게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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