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타고라스·뉴턴·잡스처럼…‘의미 있는 연결’을 찾는 사람이 융합인재

박주용 교수

작은 부품들이 모여 시계가 되듯

사물을 이으면 새로운 사물 탄생

100개 부품을 이을 방법은 ‘무한’

굳이 새로운 사물을 만들지 않고

‘연결’만으로도 가능성 무궁무진

(41)창의적 인재를 기르려면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구성하는 대학 중 하나인 트리니티 칼리지 전경. 아이작 뉴턴은 트리니티 칼리지가 배출한 세계적인 학자 가운데 한명이다. 박주용 교수 제공 사진 크게보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구성하는 대학 중 하나인 트리니티 칼리지 전경. 아이작 뉴턴은 트리니티 칼리지가 배출한 세계적인 학자 가운데 한명이다. 박주용 교수 제공

이번 회에는 충남지역 교장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융합 인재 교육에 관한 강연을 지난번에 이어 계속하겠다.

‘창의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1955~2011)는 이렇게 말합니다.

“창의란 그저 사물들을 이어내는 일이다. 창의적인 일을 해낸 사람들은 누군가 그 비결을 물어보면 살짝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왜냐면 그들은 그걸 정말 해낸 게 아니라 무언가를 보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지나면 너무나 당연한 것을.”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처럼 잡스도 창의성을 ‘남들과 다른 것을 보는 능력’이라고 한 것입니다.

왜 굳이 새로운 사물을 만들지 않고 사물 사이의 연결만 볼 수 있어도 창의적일 수 있다고 한 것인지, 잠깐 간단한 사고 실험을 해보겠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의 개수를 n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n의 값은 무엇일까요? 일일이 세어보진 않았지만, 분명히 100개는 넘을 테니 쉽게 n=100이라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러면 100개의 사물끼리 연결될 수 있는 모양의 경우의 수는 얼마일까요? 일단, 직접 연결될 수 있는 사물의 쌍의 개수는 100개에서 2개를 고르는 것과 같으니 100×99, 그리고 두 개를 고르는 순서는 상관없으니 그의 절반인 100×99÷2=4950입니다. 그리고 이 4950개의 쌍은 각각 연결되거나 연결되지 않거나 두 가지의 경우가 있으니, 이 n=100개의 사물이 연결된 모양은 2의 4950제곱인 24950이 됩니다. 이 숫자가 얼마나 큰지 감이 오나요? 이 숫자에 밑이 10인 로그를 취하면 log10(24950)=4950×log10(2)=4950×0.3010=1489.95, 어림잡아 1490이라고 하면 24950은 1 다음에 0이 1490개나 붙어 있는 숫자가 됩니다. 1000…000 이렇게요.

누군가 우리 우주가 탄생한 100억년(1 다음에 0이 10개입니다) 전 빅뱅의 순간부터 1, 2, 3 이렇게 숫자를 1초에 하나씩 세어왔다고 하더라도 아직 전체 숫자의 반은커녕 반의 반의 반의 반의 반…도 세지 못해왔을 엄청난 숫자입니다. 개수가 100에 지나지 않는 사물끼리도 연결하는 방법이 이렇게 무한에 가깝게 많으니, 창의적인 사람이 누구보다도 앞서 찾아낼 수 있는 것 또한 무한하겠지요.

몇개 되지 않은 사물도 연결되는 모양의 갯수는 아주 많다. 사물 다섯개를 연결하는 방법은 1024개가 있으며, 100개의 사물들을 연결하는 방법은 무려 10의 1490승개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 큰 가능성의 공간에서 의미있는 연결을 찾는 능력을 창의성이라고 하였다. 사진 크게보기

몇개 되지 않은 사물도 연결되는 모양의 갯수는 아주 많다. 사물 다섯개를 연결하는 방법은 1024개가 있으며, 100개의 사물들을 연결하는 방법은 무려 10의 1490승개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 큰 가능성의 공간에서 의미있는 연결을 찾는 능력을 창의성이라고 하였다.

다만, 사물을 연결하는 방법이 거의 무한하다고 해서 아무 연결이나 다 의미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손목시계 하나에 들어가는 부품도 100개 정도 된다고 하는데 그것을 아무렇게 이어 붙인다고 시계가 되는 게 아니니까요. 창의적인 사람이 보는 사물 사이의 연결은 이렇게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창의적인 사람들은 과연 의미 있는 연결을 어떻게 찾아내는 걸까요? 달리 말해, 그들로 하여금 엄청나게 큰 ‘연결의 가능성의 우주’ 속에서 길을 찾게 하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논리력’일 수도, ‘통찰력’일 수도, ‘감’일 수도 있습니다. 아, 누군가는 ‘절대자의 이끎’이라고도 하겠네요.

네, 무엇이든 좋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그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단어를 하나 다시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봄이 말한 ‘아름다움’이며, 그 가운데서도 특히 우리에게 감명과 깊은 만족감을 주는 ‘우아함’, 즉 ‘elegance’입니다. 제가 창의성의 원천으로서 우아함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한 학자의 고백이었습니다. 일본의 물리학자 에사키 레오나 교수(1925~)는 이제는 소니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옛 ‘도쿄통신공업’의 연구원 시절, 아주 높은 벽의 면을 향해 살짝 던진 야구공도 그 벽의 반대편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양자물리학의 ‘터널링’ 효과를 실제로 구현시킨 ‘에사키 터널링 다이오드’를 발명한 공로로 1973년에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그가 노벨상을 받은 지 20년도 더 지난 시점이었지만 그분이 강연을 온다고 했을 때 대학 강당이 가득 메워질 정도로 유명했지요. 전 이후 다른 물리학 분야를 전공하게 되었기에 그의 근황을 오랫동안 모르고 지내다가 몇년 전, 한국에 다시 방문한 자리에서 한 젊은 학자에게 했다는 말을 전해들었습니다. 숱한 호사가들에게 ‘세계를 바꿔버릴 것이다’라는 찬사를 듣게 해준 연구 업적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그 과장(‘하이프’)이 사그라들고 나니 결국 제일 행복하고 의미 있는 것은 바로 ‘내가 우아하다고 생각하는 연구’를 했을 때였다고요. 과학이란 과학자라는 별난 사람들이 하는, 숫자로만 이루어진 차가운 논리의 체계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봄이나 에사키 박사의 예처럼 역사에 남은 많은 과학자들은 아름다움과 우아함에 이끌려 과학을 하였습니다.

화가 라파엘로(1483~1520)의 ‘아테네 학당’은 르네상스 운동이 되살리려 했던 고대 그리스 문화의 인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한가운데에는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지요. (참고로, 얼마 전 한 매거진 주최로 저와 ‘과학과 예술’ 대담을 하려고 온 미술사학자라는 사람이 제게 대뜸 ‘이것만 봐도 인류는 얼마나 문과를 더 위대하다고 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하더군요. 과학자들도 우아함을 추구하는 감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인류 역사가 증명해주는데, 전국에서 온 초대에 응하느라 바쁘다는 사람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이야기가 나올까봐 선수를 치는 모습은 처량해 보이기만 하더군요. 그런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이 오늘 강연의 목적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 왼쪽 아래를 보면 한 사람이 작은 칠판의 그림을 참고하며 책에 무언가를 써넣고 있습니다. 바로 피타고라스(기원전 570~495)입니다. 사모스섬 출신의 피타고라스는 여기 모이신 교장 선생님들께 별다른 소개를 할 필요가 없겠지요. ‘한 내각이 90도인 직각삼각형에서, 직각을 낀 변의 길이 a, b와 사변의 길이 c는 a2+b2=c2의 관계를 갖는다’라는 피타고라스 정리를 통해 전 국민에게 제일 잘 알려진 수학자이니까요.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속 피타고라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속 피타고라스

제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이 ‘피타고라스 정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부류의 학생이 존재합니다.

1. 순응파: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외워야 하는 것”

2. 실용파: “숫자 두 개를 넣으면 나머지 하나가 나오는 것”

3. 개척파: “과학 연구와 기술 개발을 위해 필요한 것”

2500년 전 ‘피타고라스 정리’는
자연이 가진 질서를 ‘찾아낸’ 것
조금 지나면 너무나 당연한 것도
처음엔 누군가가 발견해낸 것들
인류의 지평을 넓히는 창의성은
남들과 다른 것을 보는 능력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그 겉모습만을 보고 내린 판단일 뿐, 피타고라스 정리의 진정한 의의는 그 뒤에 숨은 피타고라스라는 사람을 보아야만 알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변수의 관계를 보고 피타고라스는 다음의 큰 고민에 빠졌다고 합니다. “a, b, c의 이러한 관계는 우연인가, 필연인가?” a, b, c라는 변수에 물어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왜 그러한 관계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고뇌는 이내 거대한 희열로 가득한 깨달음으로 바뀌고 맙니다. 바로, “세계에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질서가 존재한다”는 피타고라스 철학의 탄생입니다. 2500년 전에도 과학은 자연의 우아함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철학은 플라톤 사상의 기반이 되었고(제게 플라톤 같은 ‘문과’가 제일 위대하다고 했던 분께 꼭 알려드리고 싶네요)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지동설, 뉴턴의 만유인력 위에 “천체 역학”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됩니다. 이 천체 역학은 하늘의 수많은 천체가 따르는 피타고라스의 꿈, ‘무지카 우니베르살리스(Musica Universalis·우주의 음악)’의 실현입니다.

여기에서 혹시, “그렇다면 과학이란 몇몇 과학자들의 주관적인 우아함의 추구로서 끝나고 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싶진 않으신가요? 물론, 그렇진 않습니다. 우아한 우주의 질서의 꿈에 힘입어 전 세계는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거리가 되었고, 달 표면에 사람이 갈 수 있었으며(지구에서 60㎏이었던 몸무게가 10㎏이 되어버리는 달 표면 위에서 신나게 방방 뛰어다녔을 우주 비행사들이 저는 제일 부럽습니다), “안녕하세요”라는 우리 인사말을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외계의 생명체에게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저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우아함에 대한 꿈의 추구로 시작해 인류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위력을 지닌 ‘서로 상이해 보이는 것들끼리의 연결’을 찾아내는 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목표로 하는 ‘융합 인재’가 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인 우주선 아폴로 16호를 타고 1972년 4월 달에 착륙한 우주인 존 영이 지구보다 낮은 달 표면의 중력 덕에 방방 뛰고 있다. 나사 제공 사진 크게보기

미국의 유인 우주선 아폴로 16호를 타고 1972년 4월 달에 착륙한 우주인 존 영이 지구보다 낮은 달 표면의 중력 덕에 방방 뛰고 있다. 나사 제공

그렇다면, 오늘 이곳에 와주신 교장 선생님들과 저는 그러한 인재를 기르기 위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 걸까요? 그에 대한 속시원한 대답을 제가 알고 있다면 기꺼이 여기에서 풀어놓겠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혹시나 1년에 집을 몇채씩 살 수 있을 돈을 벌 정도로 수험생들에게 믿음을 받고 있다는 서울 유명한 동네 강사들은 알고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저도 다녀본 적이 없어 잘은 모르지만, 당장 다음날, 다음달에 있을 시험 점수에만 관심이 있는 지식 상품의 판매원들이 인류의 미래와 우주의 질서를 찾아내줄 수 있는 진정한 ‘융합 인재’의 교육에는 관심을 갖지 않으리라는 건 확실할 것입니다.

융합형 인재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뉴턴의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천체 역학을 완성한 뉴턴은 어느 날 위조화폐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던 영국 화폐국의 국장으로 취임합니다. 화학과 금속학에도 일가견이 있던 뉴턴은 후진적이던 은화 주조법을 개선하고 위폐를 감별해낼 수 없던 부정확한 저울을 개선해 새롭게 설계하면서 ‘과학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지금에 와서야 우리가 겨우 생각해낸 일들을 400년 전에 이미 실행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뉴턴은 이 일을 하는 동안 연구실에만 틀어박히지 않고, 위폐범을 잡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형사 역할을 맡는가 하면, 재판에서는 검사 역할까지 하면서 유죄를 받아내고 맙니다. 위폐와 같은 ‘거짓된 오염물’이 존재하지 않는 깨끗하고 ‘우아한’ 경제의 꿈을 이루기 위한 헌신이 아니었을까요.

뉴턴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나의 벗이다. 그러나 나의 최고의 벗은 진실이다.” 서양 철학의 위대한 인물들도, 스스로의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는 우아한 진실 추구에 우선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가 만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연결을 찾아내는 창의적인 융합 인재는, 자기만의 우아한 꿈을 향해 스스로 길을 찾는 사람들로부터 나옵니다. 이걸 꼭 잊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긴 강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주용 교수

[전문가의 세계 - 박주용의 퓨처라마]피타고라스·뉴턴·잡스처럼…‘의미 있는 연결’을 찾는 사람이 융합인재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학교(앤아버)에서 통계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네트워크와 복잡계 물리학에 기반한 융합 데이터 과학 전문가로서 노트르담대학교, 하버드 의과대학 데이너-파버 암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현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문화예술과 과학의 창의성을 연구하고 있으며, AI 이후 시대를 준비하는 카이스트 포스트AI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학창 시절 미식축구에 빠져 대학팀 랭킹 알고리즘을 고안한 뒤 지금도 빠져 있으며, 시간이 생긴다면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을 타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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