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좀비 인간’ 만드는 미생물은 없다, ‘광란의 춤’ 유발 세균은 있다

김응빈 교수

좀비와 미생물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좀비, 주술사가 조종하는 시체
서인도 제도 토속신앙이 원조
그 좀비는 사람을 해치지 않아
영화 속 좀비, 물리면 급속 전파
그런 바이러스는 세상에 없어

최근 몇 년 사이 이른바 ‘한국형 좀비(zombie)’를 내세운 영화와 드라마들이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서인도 제도 원주민들이 믿던 토속 신앙 ‘부두교’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좀비는 주술사가 마법과 약물로 움직이게 만든 시체를 일컫는다. 부두교 좀비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이성과 감정이 없는 꼭두각시가 되어 그저 부림을 당할 뿐이다.

보통 영화에서는 멀쩡한 사람이 바이러스 따위에 감염되어 좀비가 된다. 그러고는 목과 사지를 심하게 꺾으며 사람을 물어뜯으러 돌아다닌다. 좀비에게 물리면 몇 분, 길어야 몇 십 분 내에 좀비가 된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하지만 감염 후 이렇게 빠르게 발병하는 바이러스는 발견된 바가 없을뿐더러, 존재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영화적 설정에 까탈스럽게 시비를 걸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영화 속 좀비와 비슷한 증세를 유발할 수 있는 미생물을 알아보면서 흥미롭게 공부를 해보려는 것이다.

■막춤을 추게 하는 미생물

17세기 ‘무도병’ 10대 환자 많아
연쇄상구균 감염 ‘자가면역장애’
중세엔 ‘무도광’ 집단 발병 기록
환각제 성분 세균 때문에 ‘막춤’

좀비의 그칠 줄 모르는 몸동작은 ‘무도병’을 연상시킨다. 이 신경질환에 걸리면 몸이 뜻대로 되지 않고 저절로 심하게 움직여, 마치 막춤을 추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유전자 돌연변이가 아닌 후천적 원인으로 발생하는 무도병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시드넘 무도병(Sydenham’s chorea)’이다.

1686년, 시드넘(Thomas Sydenham 1624~1689)이라는 영국 의사가 특이한 질환 하나를 보고했다. 환자는 거의 모두 10대 아이들이었다. 손을 잠시도 가만히 두지 못했고 절뚝거리며 계속 이상한 몸동작을 했다. 누워서 온몸을 비틀다가 침대에서 떨어지기도 했지만, 일단 잠이 들면 경련은 가라앉았다. 병의 징후는 한 번 나타나면 거의 한 달 동안 지속되었다. 재발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다행히 사망에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시드넘이 질환의 임상적 특성은 정확하게 기록했다. 하지만 그 원인은 정서적 충격과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잘못 짚었다. 19세기 중반에 시드넘 무도병이 급성 류머티즘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특정 연쇄상구균의 감염이 시드넘 무도병의 원인임이 밝혀졌다. 그런데 그 발병 과정이 특이하고도 복잡하다.

문제의 세균이 체내로 침투하면 먼저 편도선염이나 성홍열을 일으킨다. 이에 맞서 면역계는 항체를 동원해 공격을 가한다. 이렇게 2~3주가 지날 즈음, 비록 드물지만, 이 항체들이 애꿎게도 심장이나 관절, 뇌 등을 공격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수의운동에 관여하는 뇌 부위에 염증이 생기면 시드넘 무도병 증세가 나타난다. 발병의 직접 원인이 일종의 ‘자가면역 장애’인 셈이다.

사실 서양 중세 역사서에는 무도병으로 추정되는 기록이 여러 번 나온다. ‘무도광(댄싱 마니아)’이라고 불렸던 이 질환(?)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집단적인 발병 양상을 보였다. 이탈리아 타란토(Taranto) 지방에서는 이런 발작을 거미에게 물렸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이런 이유로 이 지역 전통 춤 이름 ‘타란텔라(tarantella)’가 미국으로 건너가 독거미명 ‘타란툴라(tarantula)’가 되었다.

광란이라고 할 만큼 여러 사람들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추었다. 마치 무언가가 그들의 몸을 완전히 장악하고 조종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춤의 광풍은 전 유럽으로 불어 나갔다. 시드넘 무도병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게다가 일부 무도광은 손과 발이 타는 듯한 통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여전히 논란이 있지만, 무도광의 유력한 원인으로 ‘맥각’ 중독이 지목되고 있다. 맥각을 보리 맥(麥), 뿔 각(角) 글자 그대로 풀면 ‘보리 이삭에 돋아난 뿔’이라는 뜻이다. 보리와 호밀을 비롯한 볏과식물에 감염하는 곰팡이의 일종인 ‘맥각균’이 알곡이 들어설 자리에서 만든 ‘균핵’이다. 균핵이란, 환경이 열악해지면 곰팡이가 생존을 위해 만드는 단단한 덩어리 모양의 휴면체이다.

맥각에 들어 있는 여러 독 성분은 통증과 함께 지각 장애와 환각 증세를 일으킨다. 실제로 맥각은 강력한 환각제(마약)의 일종인 LSD를 만드는 원료이다. 다행히 요즘에는 도정 과정에서 맥각이 제거된다. 전근대 시대의 무도광들은 의도치 않게 마약에 취해 좀비처럼 움직였을 공산이 크다.

■신경을 타고 이동하는 바이러스

여느 감염병에 비해 광견병은 잠복기가 길다. 감염 후 평균 한두 달이 지나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물린 부위가 머리에 가까울수록, 상처가 심할수록 잠복기가 짧아진다. 초기 증상은 보통 감염병에서 볼 수 있는 발열, 두통, 구토, 피로감 등이다. 이 시기에 물린 데가 저리거나 저절로 움찔거리면 광견병일 가능성이 높다.

광견병 바이러스는 혈액이나 림프계를 따라 이동하지 않는다. 면역계의 감시망을 피해 가려는 술수로 보인다. 감염 초기에 바이러스는 일단 근육에서 증식한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동안 그대로 머무른다. 그다음 운동신경에 침입해 말초신경을 따라 천천히(하루 15~100㎜ 정도) 뇌를 향해 나아간다. 목적지에 도달하면 뇌염을 일으킨다.

감염이 뇌염으로 발전하면, 환자에게 불안기와 안정기가 번갈아 찾아온다. 이때는 얼굴에 바람만 스쳐도 입과 목 주변에 경련이 일곤 한다. 환자 대부분은 물을 보거나 생각만 해도 경련을 일으킨다. 그래서 이 병을 ‘공수병(hydrophobia, 각각 물과 공포를 뜻하는 라틴어 ‘hydro’와 ‘phobia’를 합친 말)’이라고도 부른다. 마지막 단계에는 뇌와 척수신경 손상이 커져 마비가 심해지고, 결국 호흡근육 마비로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광견병은 예방이 최선이다. 반려동물에게는 백신 접종이 필수이고, 사람도 광견병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면 반드시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 만약 동물에게 물리면, 즉시 상처를 비누로 철저히 씻어야 한다. 그리고 그 동물이 광견병에 걸렸다면, 백신과 함께 광견병에 면역을 가진 사람에게서 채취한 사람 광견병 면역글로불린(항체)을 주사한다. 광견병은 잠복기가 길어서, 감염 후 예방접종으로도 면역이 생길 수 있다. 다만 일단 광견병 증상이 나타나면 때가 늦으니 절대로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광견병 바이러스는 개의 뇌를 건드려 공격성을 자극한다. 바이러스에 장악된 개가 닥치는 대로 물 때마다 바이러스는 더 많은 숙주로 퍼져나간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간교한 병원체는 침샘까지 장악해 계속 침을 흘리게 하면서 물을 피하게 한다. 그 때문에 바이러스 입자가 그득한 침이 씻겨 나가지 않는다. 사람도 이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며 심지어 다른 사람을 물기도 한다. 영화 속 좀비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니 병원체가 무작정 숙주를 아프게만 하는 게 아니었다. 전염이 잘 되도록 숙주를 조종하고 있었다!

■숙주 조종 끝판왕

톡소포자충(Toxoplasma gondii)은 모든 온혈동물에 감염하는 세포 내 기생충이다. 기생충이라고 하니 회충처럼 꿈틀거리는 벌레 모양을 떠올리기 쉬운데, 톡소포자충은 보통 직경이 채 1㎛도 안 되는 미생물, 원생동물이다. 톡소포자충은 ‘정단복합체포자충’이라는 집안 출신이고 말라리아 병원체와는 친척지간이다. 구성원 모두가 기생체인 이 고약한 가문의 학명 아피콤플렉사(Apicomplexa)는 각각 ‘꼭대기’와 ‘껴안음 또는 휘감음’을 뜻하는 라틴어 ‘아펙스(apex)’와 ‘콤플렉서스(complexus)’가 합쳐진 것이다. 세포 말단에 특수하게 분화된 세포소기관 복합체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톡소포자충의 최종 목적지는 고양잇과(고양이, 호랑이, 사자, 표범, 살쾡이 따위가 속한 육식동물 무리) 동물이고, 나머지 동물은 모두 체류지에 불과하다. 이들은 고양잇과 동물에서만 성충이 되어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는다. 나머지 동물은 유충을 보관하는 탁아시설에 해당한다. 전자와 후자를 생물학 용어로 각각 ‘최종숙주’와 ‘중간숙주’라고 한다.

톡소포자충은 놀라운 숙주 조종 기술을 보여준다. 예컨대, 쥐가 톡소포자충에 감염되면 학습력과 기억력이 떨어져 탁 트인 야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게다가 고양이 오줌 냄새를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그 향기에 끌린다. 이렇게 개념을 상실한 쥐가 ‘날 잡아 잡수’라는 식으로 고양이에게 다가갈수록, 톡소포자충의 목적지 도착 시간은 앞당겨진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톡소포자충에 걸린 설치류가 집고양이보다 호랑이나 표범 같은 야생 고양잇과 동물의 오줌 냄새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내 고개가 끄덕여진다. 톡소포자충에게 집고양이는 가장 최근에 생겨난 최종숙주이기 때문이다.

유전체 분석 결과에 따르면, 현생 고양잇과 동물은 어림잡아 1000만년 전쯤 살았던 공동 조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반려묘는 인류가 신석기 시대로 접어든 이후에 출현했다. 대략 1만년 전 인류가 정착해 농경을 시작하자 들쥐가 꼬여 들었고, 숲에 살던 들고양이는 먹잇감을 쫓아 나왔다.

인간의 입장에서 식량을 축내는 들쥐를 잡아먹는 들고양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와 들고양이의 동거는 이렇게 자연스레 시작되었다. 이런 관계 형성에 따른 득실을 따져보면, 가장 큰 수혜자는 톡소포자충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는데 새로운 최종숙주와 중간숙주가 동시에 생겨났으니 말이다.

감염병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감염 자체보다 감염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공포로 더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심지어 이성을 잃고 공공장소에서 난동을 피우는 경우도 적잖다고 한다. 영화에서처럼 인간을 좀비로 만드는 미생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감염병이 주는 스트레스에 우리의 정신이 잠식당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1947년 발표된 카뮈(Albert Camus, 1913~1960)의 소설 <페스트>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 당시 페스트는 실질적으로 모든 것을 뒤덮어 버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개인의 운명은 더 이상 있을 수 없었고, 페스트라는 집단적인 사건과 모든 사람의 감정만 존재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이별과 유배의 감정으로 거기에는 두려움과 반항심이 내포되어 있었다.” 감염병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전통적 유대감을 파괴하고 우리를 자기밖에 모르는 외톨이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이를 치유하려면 ‘정신적 백신’이 필요하다. 아마도 그건 소통과 배려, 나아가 사랑이 아닐까.

▶김응빈 교수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10)‘좀비 인간’ 만드는 미생물은 없다, ‘광란의 춤’ 유발 세균은 있다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 연구와 교육을 해오면서 미생물의 이야기 미담(微談) 중에 미담(美談)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미생물 변호사’를 자처하며 흥미로운 미생물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한국환경생물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SCI 논문 60여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등이 있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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