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학 저널클럽

명절에 고향 집 가면 유난히 돋는 식욕, 그건 바로 ‘뇌’ 때문이야

최한경 |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뇌·인지과학전공 교수
[신경과학 저널클럽]명절에 고향 집 가면 유난히 돋는 식욕, 그건 바로 ‘뇌’ 때문이야

추석연휴가 끝난 지도 열흘이 지났다. 즐거웠던 시간은 이제 추억으로 남겠지만, 추석의 흔적은 머릿속 기억뿐만 아니라 우리 몸 곳곳에도 남아있다. 배에, 옆구리에, 허벅지며 팔뚝에 신나게 먹었던 음식들이 지방 형태로 자리 잡은 분들이 꽤 계실 것이다. 왜 명절에 고향 집에 가면 평소보다 더 먹게 되는 걸까. 맛있는 음식을 반가운 사람들이 권하면 거절하기 힘든 것도 이유겠지만, 분명히 추석의 고향 집에는 식욕을 절제하던 사슬을 깨부수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지 말지 결정하는 데에는 다양한 요인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지만, 가장 지배적인 역할은 뇌가 한다. 실제로 질환 수준의 이상 식욕을 억제하기 위해 사용되는 약물은 대부분 뇌의 작동에 영향을 준다. 뇌는 음식 섭취를 결정할 때 허기진 정도나 주어진 음식의 맛, 영양 가치 등을 고려하는데, 식사 환경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특정한 환경에서 뇌가 어떻게 과식을 유발하는지 연구한 논문을 소개하고자 한다.

유 푸 싱가포르국립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뇌가 대사작용을 조절하는 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두뇌에는 대사와 식사를 조절하는 여러 가지 뇌 영역과 세포 종류가 있는데, 이 중에서도 연구진은 시상하부의 ‘융기핵’에서 ‘소마토스타틴’이라는 유전자를 발현하는 세포의 기능 분석에 초점을 맞췄다.

연구진은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게재한 논문에서 소마토스타틴을 발현하는 신경세포들이 환경적인 영향으로 인한 과식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이 연구는 생쥐를 통해 이뤄졌는데, 생쥐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초콜릿이나 기름진 음식을 맛있어 한다. 실제로 융기핵의 소마토스타틴 발현 세포들은 생쥐가 초콜릿이나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에만 활성화됐고, 매일 먹는 일반 사료를 섭취했을 때는 별다른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신경세포들을 인위적으로 활성화하면 어떻게 될까. 연구진에 따르면 소마토스타틴 발현 세포들을 활성화하면서 생쥐에게 일반 사료를 주면 마치 기름진 음식이 제공된 것처럼 식사량이 증가했다. 이런 일이 며칠간 반복되면 그 이후에는 융기핵의 신경세포를 활성화하지 않더라도 해당 장소에만 가면 식사량이 증가했다. 마치 고향 집에 가면 자신도 모르게 많이 먹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들 신경세포의 활성화는 특정 장소에서 많이 먹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당 환경에 더 호감을 갖게 했다. 두 개의 똑같은 모양의 방을 두고 생쥐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한 다음, 한쪽 방에 있을 때만 융기핵의 소마토스타틴 신경세포를 자극하면 생쥐는 자극을 받은 방에 더 오래 머물고 싶어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식당, 함께 먹었던 사람들에게 더 호감을 가지는 것이 이런 이유와 맞닿아 있을 수 있겠다. 이처럼 융기핵의 특정 신경세포 자극은 맛있는 음식에서 유래한 좋은 기억들과 연결되고, 이로 인한 식사량 증가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먹은 장소’라는 특정한 조건이 있을 때 과식을 유발하는 뇌 작동 원리를 제시했다. 어떻게 하면 환경적인 요인에 의한 과식을 자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도출을 하지 않았지만, 융기핵의 소마토스타틴 신경세포를 기억하며 고향에 내려갈 때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해둘 수 있을 것이다. 고향 집에 들어서면 우리도 모르게 번쩍거리고 있을 신경회로의 힘을 이길 수 있을지는 다음 설에 따져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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