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DNA ‘싹둑’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바이오 기술에 날개를 달다

김응빈 교수

(41) 세균 면역계와 유전자 가위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바이러스 DNA만 공격 ‘제한효소’
DNA 조각 잇는 효소 ‘리가아제’
표적 유전자 담는 ‘플라스미드’
3가지 발견 힘입어 유전공학 도약

21세기 ‘크리스퍼’ 추가 발견으로
유전자 편집 능력 비약적 발전
세균의 이해와 대응에 크게 기여
일부 유전병 치료에도 큰 도움 줘

바이러스는 세포의 형태를 갖추지 못해 때때로 생명체와 비생명체의 경계에 걸쳐 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언뜻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이런 존재 앞에서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가 한없이 작아지기 일쑤다. 인간과 동식물은 물론이고 세균마저도 이들의 공격을 피할 수 없으니 말이다. 생물학에서는 편의상 바이러스를 비세포성 미생물로 간주하는데, 세균만을 감염하는 바이러스는 별도로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라고 부른다. 박테리오파지란 세균을 뜻하는 영어 ‘박테리아(bacteria)’에 ‘먹어 치우다’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 ‘파지인(phagein)’이 합쳐진 용어로 간단히 ‘파지(phage)’로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바이러스의 공격과 세균의 방어

박테리오파지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1917년 이후로 세계 여러 나라 실험실에서 이 새로운 존재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에 이르러 같은 무리를 이루는 세균 중에는 파지 내성을 지닌 개체가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1960년대 초반, 스위스 미생물학자 아르버(Werner Arber)가 세균을 감염한 파지 DNA가 일정한 패턴으로 잘리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는 바이러스 DNA만을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효소의 존재를 의심하고, 이를 ‘제한효소’라고 불렀다. 세균 DNA는 건드리지 않고 침입한 파지 DNA에만 제한적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를 담은 작명이다.

아르버 연구진은 후속 연구를 통해 대장균에서 제한효소와 ‘메틸화효소’를 각각 정제하는 데에 성공했다. 후자는 세균 DNA 군데군데에 화학적 딱지(메틸기, -CH₃)를 붙여 차별화시키는 효소이다. 비슷한 시기에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는 네이선스(Daniel Nathans)라는 미생물학자가 역시 대장균에서 분리한 여러 제한효소로 원숭이 종양바이러스 DNA를 절단하여 그 구조를 설명했다. 1970년에는 또 다른 미국 미생물학자 스미스(Hamilton Smith)가 제한효소마다 표적 DNA에 작용하는 독특한 부위(염기서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세 미생물학자는 197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파지는 숙주로 삼는 세균의 세포벽에 붙은 뒤 수축하면서 마치 주사를 놓듯 자기 DNA를 세균 세포 속으로 주입한다. 하지만 세균도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세균은 흡사 우리의 면역세포처럼 침입한 바이러스 DNA를 파괴하는 효소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효소들은 자기와 남의 DNA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자신의 것이 아니면 DNA의 염기서열을 인식하여 자른다. 더욱이 때에 따라서는 파지의 특징을 기억하기도 한다.

세균의 면역계

세균은 파지 감염 말고도 ‘수평유전자이동’(‘대장균 이야기(하)’, 경향신문 2020년 8월21일자 14면 참조)을 통해 수시로 외래 DNA와 마주치게 된다. 이따금 파지 감염 자체가 새로운 유전자 획득의 기회를 제공하는 수평유전자이동 수단이 되기도 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무성생식으로 번식하는 세균에게 외래 DNA는 세포 분열 과정에서 일어나는 돌연변이만으로 충당하기에는 부족한 유전적 다양성을 담보해주는 필수 요소이다. 물론 여기에는 외래 DNA를 무작정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는 전제 조건이 따른다. 그것이 파지 DNA라면 곧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이렇게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별 도움이 안 되는 남의 DNA를 가지고 있으면 이를 유지하는 데 아까운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세균도 면역계가 필요한 이유이다.

실제로 세균은 제법 용의주도한 면역계를 가지고 있다. 방금 설명한 제한효소가 그 한 축을 담당한다. 외래 DNA의 특정 부위를 식별하고 절단하여 이를 제거하는 제한효소는 인체의 백혈구와 같은 비특이적 면역이다. 이뿐만 아니라 세균은 특이적 면역 반응도 수행한다. 요즘 여러 대중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진 ‘크리스퍼(CRISPR)’가 그 주인공이다. 크리스퍼는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라는 긴 이름을 이루는 각 영어 단어의 첫 알파벳을 딴 것이다. 전체 명칭을 우리말로 옮기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분포하는 짧은 회문(回文)의 반복’이라는 뜻이다. 회문이란 ‘다시 합창합시다’ ‘PULL UP IF I PULL UP’ 따위처럼 앞으로 읽으나 뒤로 읽으나 같은 문장을 말한다.

크리스퍼의 존재는 1987년에 처음 알려졌다. 당시 세균의 DNA 염기서열을 연구하던 일본 연구진이 독특한 회문 구조를 발견했는데, 그 기능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후 여러 세균의 DNA 염기서열을 낱낱이 읽어내면서 많은 세균에 크리스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1994년에 와서는 파지 DNA 일부가 붙어 있는 크리스퍼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 기능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고, 반복적으로 DNA 회문 구조를 만드는 염기서열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반영하여 ‘크리스퍼’라는 작명만 이루어졌다.

2007년 덴마크의 한 요구르트 회사 연구진은 특이한 현상 하나에 주목했다. 보통 요구르트를 만드는 젖산균은 파지 감염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부 젖산균이 흡사 파지에 내성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호기심이 발동한 연구진이 이 젖산균의 DNA를 분석했더니 크리스퍼에 해당 젖산균을 공격하는 파지 DNA 일부가 함께 있었다. 마침내 2012년 두 명의 여성 과학자가 크리스퍼의 작동 원리를 규명해내는 데 성공했다. 그 공로로 다우드나(Jennifer Doudna)와 샤르팡티에(Emmanuelle Charpentie)는 2020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세균은 침입한 파지 DNA를 조각내어 그 일부를 크리스퍼 사이에 보관한다. 만약 같은 파지가 다시 들어오면 크리스퍼에 끼워둔 파지 DNA를 그대로 읽어 RNA를 만들어낸다. 이 RNA는 재침입한 파지 DNA와 일치하는 염기서열 부분에 결합하는데, 이때 파지 DNA를 자를 수 있는 유전자 가위 단백질이 함께 가서 붙는다. 범인의 특정 인상착의에 대한 정보를 찾기 쉽게 표시해서 보관해 두었다가, 다시 침입하면 이 정보를 보고 경찰이 출동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겠다.

과학의 응용

미생물학의 토대를 놓은 프랑스 미생물학자 파스퇴르(Louis Pasteur)가 일찍이 19세기 후반에 이르기를, “순수과학이나 응용과학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과학과 과학의 응용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유전공학의 탄생과 발전 과정이 이 거장의 명언을 그대로 증명해준다. 유전공학 기술의 핵심은 원하는 특정 DNA 사본을 대량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DNA를 잘라낼 수 있어야 하는데, 제한효소 작용 원리가 밝혀지자 이내 이를 유전자 가위로 응용했다. 한편 서로 다른 DNA 조각을 이어주는 효소, ‘리가아제(ligase)’는 이미 1960년대에 발견된 상태였다. 미처 몰랐을 뿐, ‘유전자 풀’을 이미 확보하고 있던 셈이었다. 마치 종이 공작을 하듯이 DNA를 다룰 수 있는 가위와 풀은 모두 손에 넣었으니, 이제 필요한 것은 표적 유전자를 담을 운반체, 곧 ‘벡터(vector)’였다.

생물학에서 벡터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말라리아모기처럼 여러 생명체에 병원체를 옮기는 매개체이고, 다른 하나는 DNA 조각을 싣고 다른 세포에 들어가 스스로 복제가 가능한 DNA 분자이다. 후자 개념의 용도로 널리 사용하는 대표적인 벡터로 ‘플라스미드(plasmid)’를 들 수 있다. 플라스미드란 세균과 효모 같은 단세포 미생물에서 염색체와 별도로 존재하면서 독립적으로 복제하는 DNA를 일컫는데, 보통 작은 원형이다. 플라스미드에는 물질대사에 필수적인 유전자보다는 항생제 저항성을 비롯한 특수 기능 유전자가 존재하여 세균이 특정 환경에서 살아가는 데에 도움을 준다. 다양한 플라스미드가 벡터로 사용되고 있는데, 외래 DNA 조각이 삽입된 플라스미드는 ‘재조합 플라스미드’라고 부른다.

바이오 테크놀로지 성장 밑바탕엔
DNA 둘러싼 ‘과학의 응용’ 있어

이상에서 보다시피 유전공학의 바탕을 이루는 유전자재조합 기술은 크게 세 가지 과학 연구 성과(제한효소, 리가아제, 플라스미드)를 조화롭게 응용한 작품이다. 유전자재조합 기술은 1990년대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산업에 적용되면서 바이오테크놀로지 또는 생명공학 기술을 견인했다. 그리고 21세기로 접어들어 첨단 정밀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가 가세하면서 생명공학 기술은 날개를 달았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역시 과학 응용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크리스퍼 작동에서 중요한 것은 DNA 조각의 크기이지 내용이 아니다. 다시 말해 어떤 DNA라도 그 크기만 맞으면 크리스퍼 사이에 들어가 해당 DNA 부위를 정확하게 자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이제 크리스퍼를 이용하면 DNA의 원하는 특정 부위를 정확하게 잘라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편집능력 때문에 크리스퍼 기술은 세균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 다양한 목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이미 일부 유전병 치료에 성공적인 임상 결과를 보이면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난치성 유전 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세상을 바꿀 크리스퍼 혁명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 중심에 세균 면역계가 있다는 사실이 파스퇴르가 남긴 또 다른 명언을 떠오르게 한다. “자연계에서 한없이 작은 것들의 역할이 한없이 크다.”

▶김응빈 교수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원하는 DNA ‘싹둑’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바이오 기술에 날개를 달다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을 연구하며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지은 책으로 <미생물과의 마이크로 인터뷰> <술, 질병, 전쟁: 미생물이 만든 역사> <온통 미생물 세상입니다>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나는 미생물과 산다> 등이 있다. 또한 유튜브 채널 ‘김응빈의 응생물학’과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파트너 채널 ‘김응빈의 생물 수다’를 운영 중이다. 유튜브 채널 링크: https://www.youtube.com/@kimyesbio/featured. 네이버 채널 링크: https://contents.premium.naver.com/biotalkkim/know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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