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요즘도 결핵 환자가 있어요?”…유감이지만, 사실입니다

김응빈 교수

(42) 잊힌 감염병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한국, OECD 국가 중 발생률 1위
영화 ‘기생충’에도 등장하는 팩트
정부, 2008년부터 고강도 관리
매년 3월24일은 ‘결핵예방의날’

1882년 3월24일, 독일의 의사 겸 미생물학자 코흐(Robert Koch)가 한 학술 모임에서 결핵균을 밝혀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프랑스의 파스퇴르와 함께 미생물학의 토대를 놓은 인물이다(‘자연발생설과 미생물 원인설(하): 숙명의 라이벌 경쟁’, 경향신문 2022년 9월30일자 14면 참조). 1982년, ‘국제결핵및폐질병퇴치연맹’은 이날을 ‘세계결핵의날’로 지정했다. 결핵균 규명 100주년을 맞아 코흐 업적을 기념하고 결핵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우리나라는 대한결핵협회 주관으로 1982년부터 2010년까지 매년 3월24일에 자체적으로 기념행사를 해오다가, 2011년부터는 정부 차원에서 ‘결핵예방의날’을 법정 기념일로 지정했다.

결핵은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에 오른 영화 <기생충>(2019)에도 등장한다. 멀쩡한 가사도우미(이정은 분)를 쫓아내려는 계략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운전기사 기택(송강호 분)이 안주인 연교(조여정 분)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연교: 결핵? 아이, 설마?

기택: 활동성 결핵 판정받았다고 전화로 막 얘기를 하는데….

연교: 아니, 요즘도 결핵 환자가 있어요?

기택: 검색해보세요. 한국이 현재 결핵 발생률 1위랍니다. OECD 국가 중에.

유감스럽게도 영화 속 허구가 아니라 엄연한 사실이다. 과거보다 결핵 환자 수가 많이 줄었고 계속 감소하고 있지만, 결핵 발생률과 사망률 모두 OECD 1위라는 불명예를 여전히 벗지 못하고 있다.

결핵균 연대기

1만년 전쯤 인체에 침투한 결핵균
팡이처럼 가는 실 모양으로 자라
숱한 환경 제약 견디고 널리 분포

결핵균은 대략 1만년 전쯤에 인체에 침투한 것으로 보인다. 그 정확한 출처는 알 수 없지만, 가축화된 동물이나 사냥감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핵은 뼈에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고인류 유골과 사료 분석을 통해 비교적 정확하게 발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현재 가장 오래된 결핵 흔적은 기원전 5000년 무렵에 만들어진 이집트 미라 뼈에서 발견되었다.

흔히 의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기록에도 결핵으로 보이는 질병이 있다. 고대 로마 의사 갈레노스는 폐결핵을 염증성과 궤양성, 잠재성 세 가지로 구분했고, 결핵 환자들을 일정한 생활기준을 마련하여 나폴리 근처 언덕에 따로 살게 했다. 이것이 요양원, 새너토리엄(sanatorium)의 시조로 여겨진다.

이처럼 결핵은 수천년 동안 우리와 붙어살며 꾸준히 인류를 괴롭혀왔지만, 대규모 발병은 없었다. 적어도 18세기 이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로 유럽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결핵 환자가 급증했다. 위생 개념이 부족했던 시절, 과밀한 주거환경은 결핵균에게 잔치판이나 다름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결핵균 감염이 발병으로 이어지는, 즉 활동성 결핵이 되는 경우는 10% 정도이다. 건강한 사람은 면역계가 결핵균을 제압한다. 그러나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몸이 약해져 면역기능이 저하되면 그 틈을 타서 결핵균이 나대기 시작한다.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던 그 옛날에 열악한 환경에서 살다 보면 속절없이 감염되어 희생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1865년 마침내 첫 돌파구가 열렸다. 프랑스 군의관 빌맹(Jean-Antoine Villemin)이 결핵 환자의 가래에 노출된 실험동물이 결핵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로써 결핵이 감염병임이 밝혀졌다. 하지만 원인 병원체 규명까지는 17년이나 더 기다려야 했다. 역사적인 그날 코흐 발표의 핵심 내용은 결핵으로 죽은 동물의 폐 조직으로 현미경 관찰 시료를 제작했는데, 기존 방법으로는 결핵균 염색과 배양이 극히 어려워 새로운 염색법과 배지를 개발해 이를 극복했다는 것이었다.

결핵균의 정체와 특성

결핵균은 ‘미코박테리움’ 집안(분류학 용어로 ‘속’) 출신이다. 고체배지에서 키우면 종종 곰팡이처럼 가는 실 모양으로 자라기 때문에 곰팡이를 뜻하는 접두사 ‘미코(myco)’가 속명에 붙었다. 미코박테리움 세균은 물리적으로 튼튼하고 화학적으로 복잡한 세포벽 덕분에 다양한 환경 스트레스를 잘 견딜 수 있어 자연환경에 널리 분포한다. 이들은 동물이 지구에 출현하기 수억년 전부터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다 어류와 조류, 포유류 등 동물이 번성하자 일부 미코박테리움 세균이 동물을 새로운 서식지로 선택해 적응하며 공존하기 시작했다. 현재 미코박테리움에 속하는 세균으로는 약 100종이 알려져 있는데,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과 한센병을 일으키는 나균(Mycobacterium leprae)을 제외하고는 인체에 거의 다 비병원성이다.

평소 우리는 분당 15회 남짓 숨을 쉰다. 한 번에 0.5ℓ 정도 공기를 들이마시는데, 여기에는 수많은 미생물이 들어 있다. 온통 미생물 세상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우리가 그런 불청객을 인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면역 덕분이다. 들숨으로 들어오는 미생물은 일단 대식세포의 공격 대상이다. 백혈구의 일종인 대식세포는 침입한 미생물을 포식하여(식균작용) 면역기능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건강한 사람의 대식세포는 침입자를 감지하면 활성화되어 이들을 거의 다 파괴한다. 그런데 대식세포가 침입자 제압에 실패하면 전세가 역전된다. 예컨대, 결핵균은 대식세포 안에서 천천히 증식하면서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기 시작한다.

결핵균과 면역세포 사이에 싸움이 늘어지면서 결핵이라는 병명이 유래한 작은 혹, 곧 ‘결절’이 생기고, 병원체는 그 안에 고립된다. 이후 대식세포가 죽어가면서 결절은 치즈 구멍 같은 ‘병터’로 변한다. 병터란 병원균이 모여 있어 조직에 병적 변화를 일으키는 자리를 말한다. 결핵균은 산소가 있어야만 증식할 수 있어서 산소 공급이 부족한 병터에서는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일종의 휴면 상태, 곧 잠복기다. 여기서 더 진전하지 않으면 병터는 석회화된다. 그러나 결핵균이 버티는 동안 인체 면역기능이 떨어지면 결핵균이 다시 기지개를 켠다.

큰 결절에는 간혹 결핵균이 급증하면서 공간이 팽창해 ‘결핵성 공동’이 생긴다. 병이 이 단계에서 멈추면 병변이 느리게 치유되면서 석회화가 일어난다. 석회화는 X선 검사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만일 병이 계속 진전되면 결국에는 결절이 파괴되어 결핵균이 폐의 기도와 심혈관계 및 림프계로 방출된다. 폐 감염의 확실한 증상인 기침은 비말로 결핵 감염을 전파한다. 병세가 악화하면 조직이 손상되어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기도 하는데, 이게 각혈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티슈에 빨간 핫소스를 묻혀 꾸며낸 게 바로 이것이다.

결핵 퇴치 운동

1904년 한 덴마크인 아이디어로
‘크리스마스실’ 기금 모금 시작
결핵 퇴치 운동의 상징으로 남아

19세기 후반 결핵균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결핵 전염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기 시작했다. 결핵 예방을 위해서는 공공보건환경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도시 빈민층에서 환자가 대거 발병해 결핵은 ‘빈곤의 병’이라는 인식도 생겨났다. 이런 와중에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한 우체국 직원이 기발하고 따스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연말에 쇄도하는 크리스마스 우편물을 정리하던 우리의 주인공 홀벨(Einar Hollbelle)은 우표와 함께 동전 한 닢짜리 ‘실’을 붙인다면, 사람들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고 상당한 기금을 모아 결핵 예방에 일조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다행히 국왕도 공감하여 지원했고, 마침내 1904년 12월에 ‘크리스마스실’이 발행되었다. 그리고 인지상정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가 결핵 퇴치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이 무렵 프랑스에서는 당시 질병 사망 원인 1위였던 결핵을 국가적 재앙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여 민관이 힘을 합쳐 결핵 퇴치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특히 파스퇴르 연구소는 결핵 백신 개발 연구에 힘을 쏟고 있었다. 의사 겸 세균학자 칼메트(Albert Calmette)와 수의사 게랭(Camille Guerin)은 장장 13년(1908~1921)에 걸쳐 소결핵균을 3주마다 한 번씩 총 231번 새로운 배지로 옮겨 키운(계대 배양) 끝에, 병원성이 없어진 균주를 얻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약독화된 생균은 1921년 첫 임상시험을 거쳐 1928년부터 본격적으로 접종되기 시작했다. BCG의 B는 결핵균이 간균(bacillus) 모양인 데서 유래했고, C와 G는 백신 개발자 두 사람 성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최초 항생제 페니실린은 1918년에 발견되어 우여곡절을 거쳐 1942년부터 대량 생산되었다. 시중에 나온 페니실린은 한때 천벌로 여겼던 매독을 비롯한 많은 감염병 치료에 탁월한 효능을 보여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결핵에는 이렇다 할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 견고한 세포벽 탓에 영양분의 투과 속도마저도 느려 미코박테리움은 그만큼 느리게 자란다. 바로 이런 특성이 결핵균이 페니실린을 무력화시키는 비책으로 작용했다. 페니실린은 세포벽 합성 과정을 방해하기 때문에 왕성하게 성장하는 세균에게만 효과가 있다. 휴지 상태에 있거나 결핵균처럼 아주 느리게 자라는 세균은 페니실린의 공격 대상에서 제외된다.

‘스트렙토마이신’ 등 항생제 발견
병원성 미생물의 종말 기대했지만
‘내성’과의 전쟁은 현재 진행 중

천만다행으로 ‘스트렙토마이신’이라고 부르는 항생제가 발견되어 앞선 페니실린이 치료하지 못했던 감염병에 즉효를 보였다. 이후 다양한 항생제가 연이어 발견되면서, 인류는 결핵균과 같은 병원성 미생물과의 전쟁에서 곧 승리를 거두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미생물은 생각처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불의의 일격을 받았던 그들이 전열을 정비하여 ‘항생제 내성’이라는 방탄 시스템을 갖추고 반격해왔다(‘고슴도치 끌어안기’, 경향신문 2021년 3월19일자 16면 참조).

대한민국 정부는 이미 2008년부터 ‘결핵퇴치 revision 2030’ 정책을 수립하여 추진해오고 있다. 2030년까지 결핵 신규 환자를 연간 100만명당 10명 미만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로 환자 집중 관리와 결핵 사전 차단을 위한 잠복 결핵 감염 진단 및 조기 치료 등 고강도 관리를 시행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에서 전하는 결핵 예방수칙에 따르면, 기침 예절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고, 만약 2주 이상 기침이 지속하고 특별한 이유 없이 몸무게가 줄면 가까운 보건소나 병원에 가서 결핵 검사를 받아야 한다. 2023년 세계결핵의날 구호(Yes! We can end TB!)대로 우리는 해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영화 속 연교처럼 우리 대부분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른다. 크리스마스실의 추억을 소환하는 이유다.

▶김응빈 교수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아니, 요즘도 결핵 환자가 있어요?”…유감이지만, 사실입니다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을 연구하며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지은 책으로 <미생물과의 마이크로 인터뷰> <술, 질병, 전쟁: 미생물이 만든 역사> <온통 미생물 세상입니다>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나는 미생물과 산다> 등이 있다. 또한 유튜브 채널 ‘김응빈의 응생물학’과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파트너 채널 ‘김응빈의 생물 수다’를 운영 중이다. 유튜브 채널 링크: https://www.youtube.com/@kimyesbio/featured. 네이버 채널 링크: https://contents.premium.naver.com/biotalkkim/know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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