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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이 망극하옵니다”에 식상? 그 말투로 과거와 현재, 남과 북이 통한다
신라시대 말을 생생하게 듣고 싶다면? 꽤 오래전에 방영된 드라마이지만 <선덕여왕>을 보면 된다. 그렇다면 고려와 조선시대는? 고려시대는 얼마 전에 방영된 <고려거란전쟁>을 보면 되고 조선시대는 지금도 채널을 돌릴 때마다 나오는, 갓 쓴 남자와 머리를 틀어 올린 여자들이 수없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면 된다. 삼국시대의 말이 모두 궁금하다면 영화 <황산벌>을 보면 되고 고구려와 부여의 말이 필요하다면 드라마 <주몽>을 보면 된다. 아주 가까운 시기, 즉 1900년 전후의 말을 듣고 싶으면 <미스터 션샤인>을 추천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신기하다. 2000년 전의 말이나 지금의 말이 다를 바가 없다. 선덕여왕의 말이나 강감찬 장군의 말, 나아가 조선의 끝자락에 미국으로 갔다가 돌아온 미국 해병대 장교의 말이 별로 다르지 않다. 부여에서 태어나 고구려를 세운 주몽도 이들과 비슷한 말을 쓰는 반면에 삼국통일 직전의... -
음표라는 작곡가의 말을 자신의 말로 표현하는…연주는 ‘첨언’이다
관현악단 ‘화담앙상블’ 창단 공연연주자 눈짓 대화, 관객 몸짓 반응공연장 안은 철저한 ‘무언’의 시간악기를 통해 쉼없이 첨언 또 ‘첨언’그것이 먼 ‘방언’ 같은 관객에게음악의 언어는 어렵기만 할 것관람 후 식당에서 이어진 ‘형언’누군가 말했다 “형언 못할 감동”음악은 언어다. 작곡가는 자신의 상상력 속에 있는 이야기를 악보에 옮겨놓고 지휘자와 연주자들은 그것을 이해해 자신의 이야기로 다시 표현한다. 음표는 물론 각종 악상기호로 구체화된 이야기를 알아보고 악기로 표현해내니 그들 사이에서 음악은 언어다. 그러나 음악은 이들만의 특별한 방언일 뿐이다. 소리와 의미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진짜 언어만 아는 이들에게 음악, 특히 기악곡이 주류인 음악은 뜻을 알 수 없는 소리에 불과하다. 가사가 직접 다가오는 ‘대중음악’과 ‘클래식’이 바로 이 지점에서 호불호가 갈린다.‘화담(和談)’과 ‘앙상블(ensemble)’, 앞의 말은 화해하... -
이 땅의 모든 말과 함께하는 제주말의 블루스
제주의 ‘말(語)’은 뭍과 같은 발음 하지만 ‘말(馬)’은 뭍과 다른 ‘몰’‘ᄋᆞ’의 경우 뭍에선 대부분 ‘아’로 제주에서는 ‘오’로 고유한 변화 짐작하기 힘든 단어도 수두룩 큰나덜·금묘일=큰아들·금요일 받침 있는 앞글자의 소리가 복사 알고보면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제주도 배경 인기 드라마의 공로 암호 같은 제주말을 세상에 알리며 고립·단절 넘어 ‘사회성’을 녹여 다르지만 같은 말로 생명력 부여해외여행은 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비행기가 뜨자마자 곧 내릴 준비를 하는 듯 가까운 곳에 있지만 바다 건너에 있으니 뭍의 사람들에게 제주 여행은 해외여행이다. 해외여행은 색다른 풍광과 별난 먹거리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다른 언어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떠난다. 그러나 제주도는 바다 건너에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말을 쓰는 곳이니 마음이 놓인다. 그런데 방심하고 있다가 제주 땅에 ... -
간판 속 한국어 ‘짬뽕’이면 어때, K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가잖아
맨해튼 코리아타운 곳곳서 마주치는 한국어영어 정관사 ‘the’ 비교 표현 ‘더’로 쓰는 등알파벳과 섞인 한글, 말장난인 듯 묘한 조화각양각색 인종·민족 한데 넘치는 미국에선한국 콘텐츠로 ‘언어 관심’ 높이는 것 우선한글 우수성·순수성 고집은 ‘출구’ 아니다“아이 돈 드링크 커피, 아이 테이크 티, 마이 디어 … 아임 언 잉글리시맨 인 뉴욕.”이것은 영어 노래인가, 한글 노래인가? 질문부터 틀렸다. 영어는 언어이고 한글은 글자이니 영어로 만들어진 노래의 가사를 한글로 적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와 문자는 엄연히 다른데 유독 우리가 많이 헷갈린다. 한국어는 우리만 쓰는 고유한 언어이고, 한글은 그 언어를 적기 위해 만들어졌으니 혼동이 될 만도 하다. 이러한 혼란은 해외에 나가면 훨씬 더 커진다. 어쩌다 마주친 한글이 곧 한국어로 받아들여진다. 엉터리 발음과 표기로 된 한국어도, 번역기의 시원찮은 번역으로 만들어진 한국어 문구도 반갑다... -
공뿐 아니라 말들이 부딪치는 공간…청산 대상 된 ‘쫑’ ‘삑사리’는 억울하다
당구의 원산지는 본래 유럽이지만일본 통해 장비·규칙 유입되면서사용하는 용어도 모두 일본어 많아과거 건달·불량배 스포츠로 인식일본풍인 용어도 청산 대상 치부하지만 상당수는 뿌리가 영·불어 일부는 일상생활 전반에서 활용대부분 음운변화 겪으며 국적 상실다양한 용례 통해 이미 ‘국산화’말소리만으로 직관적 의미 전달쫑·삑사리도 금지할 이유가 없다자욱한 담배 연기 사이로 보이는 동네의 건달들, 한쪽 구석의 때에 전 소파에 앉아 짜장면 냄새를 피우는 이들, 몇 시간째의 노름 경기에 오고 가는 때 묻은 돈들, 과거의 풍경은 이랬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이전에는 창덕궁과 덕수궁에 마련된 공간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이를 즐기던 고종과 순종의 모습이 있었다. 여기에 최근 몇 년 사이 국제 규격의 설비를 갖춘 밝고 쾌적한 공간에서 조용히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대한제국 시절에는 ‘옥돌실’이라고 불렸던 당구장의 모습... -
가슴 설렌 ‘약속’ 지금 어디에…옛날식 다방에선 ‘추억’을 판다
학림, 을지다방, 브람스…“쌍화차에 노른자?”를 묻는 레지는 없지만 삼삼오오 세월을 마시고, 어제와 오늘을 얘기하는 이들이 있다 사라져서 더 그리운 곳, 지금 대학로 다방엔 젊은이들이 가득 홀연히 자취를 감춘 다방처럼 차 한 잔 나눌 그 사람도 떠날지 모른다“우리, 언제”라 하지 말고 당장 마주할 곳을 찾자…“오래오래 가게”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았다. 고희를 바라보는 대학로의 ‘학림’, 그리고 곧 나이 사십이 되는 을지로의 ‘을지다방’과 안국동의 ‘브람스’이니 저마다의 자리에서 나처럼 늙은 다방이다. 앉으면 푹 꺼지는 푹신한 ㄱ자 소파, 낡은 LP와 스피커, 한쪽 벽면을 메운 세로글씨의 메뉴를 보면 틀림없는 옛날식 다방이다. 그런데 나름대로 멋을 부리고 실없이 농담을 던지는 마담과 찰지게 껌을 씹으며 “아저씨, 쌍화차에 노른자 동동?”이라 묻는 ‘레지’가 없다. 그래도 걸쭉한 쌍화차와 비엔나커피가 있고 혼자 앉아서 추억을 곱씹거나 쌍쌍이 혹... -
아픈 환자에게 필요한 건…약뿐 아니라 따뜻한 ‘소통의 말’
때로는 ‘환자분’의 가슴앓이에 약보다는 말이 특효약 최고의 전문가인 의사들은 전문지식을 잘 풀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할 능력도 갖추어야 한다 그렇게 약 주고 ‘말’ 줘야 진정한 의미의 종합병원검사와 의사는 싫다.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이기는 하나 죄를 지으면 만나는 이, 병에 걸리면 만나는 이니 좋을 수가 없다. 그래도 검사는 일생 동안 만나지 않는 것이 좋지만 의사는 피하기가 쉽지 않거나 오히려 자주 만나는 것이 좋다. 병원의 분만실에서 생을 시작하고 영안실에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이 많으니 그렇다. 중병에 걸리기 전에 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자주 만날 수 있다면 그것도 축복이다. 그러니 의사는 좋아해야 한다.많은 의사들이 모여 있는 곳, 진단과 치료를 위한 수많은 장비와 시설을 갖춘 곳, 그곳을 우리는 종합병원이라 부른다. 동네 의원에서 ‘큰 병원’을 권하면 무섭지만, 온갖 병을 달고 사... -
‘오우바’와 ‘친구’ 손잡고…경계를 넘어 ‘꽃길’로 가자
한글로 쓰인 최초의 ‘표준 한국어’ 조선 왕실 출발한 함경도서 유래 중국 내 조선어도 같은 뿌리 공유 간판마다 한자와 함께 박힌 한글 한·중 넘나들며 표현 범위 넓혀 세대 바뀌어도 일상 속 무한 변주‘사과배’처럼 새로운 가능성 열길“손님 여러분, 연길 서역에 곧 도착하게 됩니다. 내리실 분들은 미리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잠결에 들려오는 안내방송에 소스라치듯 잠을 깬다. 이곳은 틀림없는 중국 땅, 그런데 열차의 안내방송이 한국어로 나온단 말인가? 열차에서 내린 후 역사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낯익은 한글 안내문이 보인다. 그렇다. 여기는 옌볜 조선족 자치주의 주도 옌지시다. 중국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 중국 내 56개 소수민족 중 14번째로 인구가 많은 조선족의 중심지다. 이들의 고유한 언어인 조선어가 중국어와 대등한 대접을 받는, 길거리나 시장 어디에서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들리는 땅이다.한·중... -
사람도, 문화도, 말도 어서 타세요…‘세계행’ 열차 출발합니다
상행·하행 구분이 지역 차별 불러…부산행 열차는 부산행일 뿐비둘기호 등 느린 열차 사라지며 서울말의 지역 전파도 빨라져역사 표지판, 언어 약자 배려 부족…통일로 ‘런던행’ 가능해지길“차표 한 장 손에 들고 떠나야 하네. 예정된 시간표대로 떠나야 하네.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1992년에 발표된 송대관의 ‘차표 한 장’, 30년 넘게 세월이 흘렀으니 이 노랫말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2024년 서울역 풍경 속에 차표 한 장을 손에 들고 떠나는 이는 극히 드물어졌다. 창구에서 표를 끊고, 개찰구에서 역무원의 검표를 받고, 열차에 올라 수시로 승무원의 검사를 받고, 도착해서도 차표를 보여줘야 했던 풍경은 이제는 잊힌 지 오래다. ‘상경’과 ‘귀성’이란 말이 흔히 쓰이던 시절에는 ‘상행’과 ‘하행’ 역시 흔히 보이던 글자였는데 지금은 어디에도 없다.길은 오고 가라고 있는 것, 그 길 중에 철도는 반드시 그 길로만 다니라고... -
시끌벅적 팔도 언어 ‘모듬’…‘싯가’ 따라 크고 작은 행복 한 접시
저마다 사연을 지니고 비린내·땀내 섞인 공간과 어우러져 살아 움직이는 이름들 의미 안 맞는 간판부터 ‘스키’ ‘세꼬시’ ‘마스카와’ 같은 정체불명 일본어 유래 단어까지 깐깐한 국어 선생의 눈으로 보면 ‘엉터리투성이’지만…결국 우리 언어를 풍성하게 하는 자산‘소정방(蘇定方)이 왔다(來)’ 해서 소래라고? 단언컨대, 소정방은 이곳에 오지 않았다. 당나라 군대를 이끄는 소정방이 아무리 대단한 인물이더라도 땅 이름은 그리 함부로 짓지 않는다. 소래의 한자 또한 ‘蘇萊’이니 이런 지명 유래는 그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굳이 지명 유래를 찾고자 한다면 ‘소나무 숲 사이를 흐르는 내’를 뜻하는 ‘솔내’에서 찾는 것이 낫겠다.소정방은 소래에 오지 않았지만 서울과 경기 일원의 맛을 찾는 사람들, 그리고 전국은 물론 해외의 각종 바다 산물은 죄다 이곳으로 모인다. 수인선 협궤 열차의 추억을 되살리고자 하는 나이 지긋한 이들, 여기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