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세대가 자랐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열 번째 봄이다. 외투가 무겁게 느껴질 만큼 따뜻해진 햇살에 10주기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하지만 10주기라는 상징성이 무색할 만큼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SNS에, 광장에 노란 물결이 넘실거리던 때가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10년이 지나 누군가는 ‘망각’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 말대로 사람들은 잊은 걸까? 아무리 큰 아픔이라도 기억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니, 10년의 세월 앞에서 2014년 4월의 기억 역시 희미해져 버리고 말았을까? 아니,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 거대하고 참혹한 죽음을 목격한 순간, 발붙이고 살아가던 공동체의 침몰 같은 것들은 시간이 지난다고 흐려지는 상처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기억을 거부하고 싶은 상태에 가까운 듯하다.

지난 10년의 여정에는 눈부시게 반짝이던 순간들이 있었고, 그래서 더 크고 아픈 좌절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겨울 찬 바람을 맞으며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거리에 모였었다. 그 힘은 부당하게 쓰인 권력을 회수하고 국가의 존재 의의를 다시 선언할 정도로 위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들이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비롯해 염원하던 과제의 상당수를 해결하지 못했다. 안전한 사회를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토록 막고 싶었던 참사가 반복되었다. 이대로라면 오랜 지침과 무기력이 이어질지도, 기억을 외면하고 혼자서라도 살아남아야겠다는 각자도생의 슬픈 결론이 나버릴지도 모른다.

지난 시간과 똑같은 방식으로 기억하기 어려워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망각으로만 끝나지 않을 수는 있다. 세월호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기억의 힘으로, 다시 망각을 이겨낼 수 있다.

지난 2014년 단원고 2학년 학생들(1997년생)과 같은 시기에 학창 시절을 보낸 세대에게는 작게는 수학여행과 대학 축제가 모두 취소되었던 기억부터, ‘가만이 있으라’는 무책임한 기성세대와 진영논리의 관성에 기댄 정치에 대한 기억까지, 일상과 인생의 방향이 바뀔 만한 공통의 경험이 가득하다. 아픔, 두려움, 분노, 공감의 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똑똑히 지켜본 사람들이 지난 10년 동안 충분히 버티고 성장했다는 사실은 희망의 실마리다.

10년을 잘 매듭짓고 다음 10년을 기약하기 위해 세월호 세대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한계가 분명했던 지난 방식과 사람만으로는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어른들이 좋은 사회를 만들어 줄 테니 응원과 기억만 해달라고 부탁할 것이 아니라, 친구들을 떠나보내며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한 사람들에게 앞으로 10년의 역할과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안전한 사회를 위한 갈망이 일상에 스며든 사람들이 책임지는 공동체라면, 우리는 망각하지 않아도 된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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