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웨이 대통령과 홍범도 총선

우석훈 경제학자

내년 4월에는 총선이 있다. 상원과 하원이 있는 게 아니어서, 지역구든 비례든 한꺼번에 바뀐다. 일본처럼 총리가 수시로 국회를 해산하고 다시 선거를 치르는 것도 아니어서, 한국 총선은 예외 없이 4년마다 한 번씩 주기적으로 진행된다. 일부러 그렇게 설계한 것은 아니지만 5년의 대통령 임기와 4년의 국회의원 임기가 묘하게 교차하면서 때때로 중간평가 역할을 하게 된다. 내년 총선은 중간평가 성격이 더 강할 것으로 보인다.

우석훈 경제학자

우석훈 경제학자

요즘 윤석열 대통령의 ‘마이웨이’ 행보가 두드러진다.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이 전면화한 이념 논쟁을 집권여당이 그렇게 반기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공천을 받아야 하는 여당 의원들이 특별히 입장을 내기는 어렵다. 어쨌든 홍범도라는 역사적 인물의 공산당 가입 문제가 총선을 앞둔 한국 정치권의 1번 의제가 되었다. 홍범도에 대한 평가는 좌우 상관없이 어느 정도는 국민적 공감대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한국을 뒤흔드는 맨 앞의 의제가 될 줄은 몰랐다. 이런 건 그냥 역사학자들의 논쟁거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나서서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고 하는 걸 보니까, 다음 단계는 사상검증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독립운동사에서 좌우합작이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고 배웠는데, 합작보다는 사상적 순수성이 더 중요하다며 이제 교과서도 바꿀 것 같다. 실용주의 노선으로 중국 개방을 이끌었던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고양이가 검은지 하얀지가 뭐가 중요하냐, 쥐만 잘 잡으면 된다. 그런 정신이 중국의 개방과 번영을 이끌었다고 본다. 정치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이념의 순수성이 아니라 효과를 발생시키는 실용 정신이다. 영국을 2차 세계대전에서 구한 처칠도 스탈린과 대화하고 협력도 했다. 경제학자로서 나는 정치적 유불리로만 세상을 보지는 않는다. 경제는 결국 먹고사는 일이다. 이념이 밥 먹여준 적은 역사적으로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념이 밥 먹여준 적 한 번도 없어

이념이 경제를 강하게 해줄까? 보수 정치인으로 유명한 비스마르크는 건강보험을 비롯해 수많은 복지 정책의 기본틀을 만들어냈다. 경제가 힘들어지면 공산 혁명에 대한 대중적 열망이 생길 것으로 판단한 비스마르크는 복지가 체제를 지키기 위한 필수 비용이라며 복지에 반대하는 귀족들을 설득했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 정도로 2류 취급받던 독일이 세계 경제의 큰 축으로 등장하게 된 계기다.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의 요소들을 경제 운용에 도입한 프랑스의 드골도 매우 유연한 인물이었다. 전후 프랑스의 계획경제는 박정희의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모티브가 되었다. 박정희는 독재자였지만, 경제에서는 꽉 막힌 보수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토지공개념을 적극 도입한 노태우 역시 마찬가지다. 그 시기에 한국 경제가 개도국을 벗어날 성과를 올렸다.

자, 윤석열 정부는 과연 역사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지금처럼 경제적 성과가 나오는 게 없어서는 홍범도 흉상을 육사에서 치운 대통령으로 한 줄 남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그것도 행복한 경우다. 지금 같은 출산율 추이가 계속된다면, 결정적으로 출산율이 회복할 수 없을 수준으로 떨어진 시기의 대통령으로 한 줄 더 남을 수도 있다. 그나마 임기 중에 결정적인 경제 위기가 오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그렇다.

내년 총선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어느 쪽이 다수당이 될지 참 예측하기 어렵다. 이념 대통령과 방탄 국회 사이에서의 선택이라니! 누가 이겨도 지금과 같아서는 크게 변하기 어려운 구도다. 그렇다고 홍범도 선거가 되는 것 역시 비극적이긴 마찬가지다. 풀어야 할 경제적 숙제가 많은 시기인데, 이념과 이념이 부딪치는 것은 행복한 결과를 도출할 수 없다. 개인적 바람은 내년 총선이 경제 총선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홍범도가 맞냐 틀리냐, 일본 정부가 맞냐 틀리냐, 이런 얘기보다는 우리가 뭘 할 것인지, 어떻게 위기를 넘길 것인지, 그런 얘기가 첨예하게 맞붙는 선거면 좋겠다.

홍범도 총선 아닌 정책 선거 돼야

세계 최저의 합계출산율, 세계 1위의 자살률, 급증하는 영·유아 사교육…. 누구나 아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들이다.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조금 더 진지하게 총선 국면에서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문제 해결 능력과 함께 대중과의 편안한 소통 능력을 가진 정치인들이 국회에 더 많이 갈 수 있으면, 현실도 조금은 더 나아질 것 같다. 2004년 총선에서 노무현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압승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초선 108명은 ‘108 번뇌’라고 불렸다. 결국 2007년 열린우리당은 사라졌고, 노무현 정권은 붕괴하였다. ‘마이웨이 대통령’을 견제하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고용과 복지 등 현실문제 해결을 정치의 목적으로 삼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 아닐까 싶다. 홍범도 총선이 아니라 정책 선거를 만들어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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