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후하박 경제, 윤석열 경제가 가는 길

우석훈 경제학자

조선은 역사에서 매우 길게 버텼던 나라다. 일반적인 경제사의 법칙으로는 설명이 어려울 정도로 경제적으로는 특별한 국가였다. 중세라고 부르는 일반적인 국가의 특징이 조선에는 적용되지 않아서, 분석도 잘 되지 않는다.

우석훈 경제학자

우석훈 경제학자

지역의 영주가 농노들을 거느리고, 이들의 연합 정권이 왕조를 만드는 게 일반적인 형태다. 농업 노예, 농노가 존재하는 게 이 시스템의 특징인데, 전형적인 신분제 국가였던 조선에는 노비는 존재했지만, 농노는 존재하지 않았다. 주축 생산 인구들의 신분이 상대적으로 높았고, 안정되어 있었다. 그 힘이 조선을 강하게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전형적인 아래쪽에 후하게 해주는 하후상박 구조다.

그 안정성이 임진왜란 이후 붕괴되면서 양반들의 면세가 시스템에 부담을 강하게 주었다. 돈을 벌어 양반이 되는 사람이 늘었고, 상후하박 경제가 되었다. 결국 망했다.

많은 국가들은 하후상박, 아래쪽에 후하고 위쪽에 박한 상태를 만들고, 유지하려고 한다. 맹자는 “무항산 무항심”이라는 말을 했다. 적당한 소득이 없으면, 화가 난다는 말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자본주의가 강해진 결정적 계기가 된 루스벨트의 뉴딜 역시 하후상박을 만든 전환점이다. 자본주의의 특징은 자본에 가까울수록 돈을 벌기에 유리한 것이라서, 적절한 제도적 개입이 없으면 아래쪽은 힘들고 위쪽은 편안한 상후하박 경제가 된다.

윤석열 정부에서 경제에 대해 한 조치들은 대체적으로 상후하박으로 한국 경제를 악화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자들이 주로 내는 종부세를 경감시켰고, 주로 대기업들에 효과가 집중되는 법인세도 인하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나 어려운 사람들 그리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가는 것들을 털어내기 시작하려는 것 같다. 현장에서는 야금야금 예산이 줄어든다고 사방에서 아우성이다.

황금거위 배 가르는 일이 개혁?

근로장려금(EITC)은 ‘일하는 복지’라는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낼 정도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친 제도다. 저소득층이 일을 하면, 여기에 정부가 일부를 보태 소득을 높여주는 것이다. 그냥 노는 사람들의 속사정을 무시한다고 초기에는 반대도 많았지만, 지금은 효과 좋은 제도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에서는 저소득층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게 해주는 부수적 효과도 있었다. 양극화 완화에는 매우 효과적인 제도지만, 윤석열 경제팀에는 눈 밖에 난 제도가 되었다.

주거복지의 핵심인 공공임대 등 주택 공공성 예산도 삭감 예정인 것 같다. 앞선 보수정권도 이런 적은 없었다.

물론 어처구니없는 것은 한두 개가 아니다. 연구 분야의 카르텔을 없앤다고 하더니, 연구개발 예산을 일괄적으로 대폭 줄이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가장 강력한 산업정책이 연구 예산인데, 법인세 감소 여파가 기업, 특히 젊은 사람들이 주로 하는 벤처 등 연구개발업에 부메랑이 되는 셈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배를 가르는 일을 개혁이라고 하고 있다.

최근에 문제가 된 고용보험은 윤석열 경제가 가는 상후하박 경제로의 구조적 전환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한다. 인간이 만든 제도에는 약점이 있게 마련이다. 시대가 변하면 그걸 보완하고 구멍을 메우는 노력을 하는 게 맞지, 아예 금액을 줄이는 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플랫폼 노동이 늘어나는 등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면서 고용보험의 역할이 더 커져가는 중이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같이 단기 고용이 많은 문화 분야에서 고용보험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점점 더 불완전 고용이 증가할 것이므로, 재원 추가 등 사회적 논의가 많은 제도다. 실업보험의 대상이 되는 것 자체가 이미 경제적 약자라는 의미다. 제도를 개선할 문제를 핑계로 고용보험의 액수를 줄인다는 발상은, 윤석열 경제팀의 사령부가 너무 잘사는 사람들만으로 구성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갖게 만든다.

‘경제 아마추어급’도 아닌 듯

윤석열 정부의 외교 실패 같은 것은 상후하박 경제에 비하면 오히려 사소한 문제다. 그건 다시 되돌릴 기회가 있다. 그러나 서민들이 살기 너무 힘들어지면,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 자체가 망가진다. 실업을 줄이고 고용 안정성을 높여 실업급여를 탈 일이 없는 사회로 가는 게 더 좋은 고용보험 개선책이다.

안 그래도 저출생인데, 출산율 낮추는 지름길로 윤석열 정부가 달려가는 것 같다. 상후하박 경제의 미래는 약자 고통과 청년 고통 그리고 자살률 상승 등 정말로 살기 어려운 사회의 도래다. 노무현 정부가 경제에 아마추어라고 욕먹었는데, 그 비유를 쓰면 현 정부는 아마추어급도 아닌 것 같다. 박근혜 정부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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