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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만 보겠다”더니 무엇을 보고 있었나
기자에겐 포토라인과 데드라인이라는 중요한 두 라인이 있다. 포토라인은 대체로 문제가 있는 취재 현장에 만들어지고 기사 마감을 뜻하는 데드라인을 넘긴 기사는 죽은 기사가 된다. 포토라인 앞에 서는 사람은 대부분 검사 혹은 경찰에게 조사를 받으러 가거나, 조사가 끝나고 나오는 중인 경우가 많다. 기자들은 그 모습을 기록하고 시민에게 알린다. 여기서 두 라인의 최종 목적이 드러난다. 바로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검사로서 포토라인에 누구보다 많은 사람을 세워본 경력이 있는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기자들과의 소통이 국민과의 소통”이라며 출근길 문답을 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소통은 소위 ‘바이든 날리면’이라고 불리는 보도를 문제 삼으며 끝났다.한때 파격적이었던 대통령이 최근에도 연일 파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법원의 체포영장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조사와 재판을 모두 거부하고 있다. 그사이 탄핵과 체포를 찬성하는 이들도, 반대하는 이들이 모두 지쳐간다. ... -
애타게 기다린 가족…마지막 배웅하러 갑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일주일 만인 지난 5일 유가족의 울음과 한숨으로 가득했던 무안국제공항의 아침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다. 희생자들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유가족 대부분이 공항을 떠났기 때문이다. 매일 오전 9시30분 열리던 유가족 브리핑도 이날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유가족들이 빼곡히 앉아있던 브리핑장 의자들도 대부분 비어 있었다. 기다림의 장소였던 공항 대합실이 적막에 휩싸인 모습이 낯설었다.대합실 1층에 설치된 합동분향소에서도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공항 대합실 1, 2층에 마련된 유가족 임시 숙소인 245개의 텐트도 마찬가지였다. 차곡차곡 갠 이불과 물품들만 덩그러니 남았다.참사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해외에서 사 온 기념품과 여행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을 텐데…. 차가운 공항 바닥에 남겨진 도시락과 생수가 유난히 시선을 붙들었다. -
철조망 너머 비행기 잔해들…악몽이 된 크리스마스 여행
기자들은 지난해 12월29일 오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앞을 지키고 있었다. 세 번째로 요구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소환 시간은 아직 몇십 분 남아 있었지만, 그가 나타나리라는 기대는 없었다. 그러던 중 기자들의 스마트폰에서 속보를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무안국제공항에서 여객기가 비상 착륙을 시도하다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곧바로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서울보다는 조금 더 가까운 과천에 있었던 나는 사고 현장으로 출발했다. 취재 차에서 속보를 계속 확인했다. 사망자 수가 점점 늘기 시작했다.착잡한 마음으로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여객기는 형체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비행기 좌석과 여행 가방들. 전신주 위에는 산소 호흡기가 걸려 있었다. 실종자 가족이 활주로 철조망 앞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스마트폰에서 울리는 속보 뉴스의 내용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현실을 더 비통하게 만들었다.“사고기는 패키지여행 등을 주로 다니는 전... -
그곳에,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현장에는 농민과 농민이 아닌 사람이 모두 있었다. 반평생 트랙터를 몰아온, 그래서 트랙터를 몰고 서울까지 온 농민들과 트랙터를 평생 처음 보는 이들이 함께 있었다. 여성들이 있었다. 농민 여성들과 농민이 아닌 여성들이 있었다.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라고 하는 게 가장 알맞겠다.지난 16일 전라·경남에서부터 시작된 ‘세상을 바꾸는 전봉준투쟁단 트랙터 대행진’의 트랙터 30여대와 화물차 50여대가 21일 서울 남태령 고개에서 막혔다. 경찰은 통행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차벽을 세우고 농민들을 에워쌌고, 시민들은 “함께해달라”는 요청을 듣고 밤늦게 남태령으로 왔다. 여의도, 광화문에서 그랬던 것처럼 응원봉을 들고 와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추위 속에서 서로를 밤 새워 지킨 사람들은 해 뜨는 걸 함께 봤다. ‘내란수괴 처벌하라’는 문구를 넣어 손수 뜬 담요를 몸에 둘렀다. 핫팩을 나누고, 온라인으로 지켜보는 시민들이 보내주는 음식을 먹으며 계속 외쳤다. “차 빼라.”... -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가길’…응원봉처럼 마음을 담아서
10대인 사촌 동생이 응원봉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지역에 사는 동생은 탄핵 촉구 집회를 뉴스로만 봤다. “언니는 카메라를 들어야 해서 응원봉은 필요 없어. 그래도 거기 가면 너 같은 친구들이 많아.” 나는 응원봉을 드는 대신 반짝이는 것들을 들고 온 사람들을 찍었다. 누구를 응원하냐고 물어보고, 가끔 그 아이돌 안다고 아는 척을 하기도 했다.지난 14일 서울 여의도에는 세상 모든 반짝이는 것들이 모였다. 아이돌 그룹·야구단·캐릭터의 응원봉, 크리스마스트리, 버섯 모양 조명, 장난감 요술봉…. 사람들은 예쁘고 반짝이는 것들을 꺼내 축제처럼 왔다. 이날만을 위해 준비한 응원봉도 있었다. 다 먹은 아이스크림 빈 통에 건전지로 켜지는 알전구를 넣었다. 손잡이도 있고, 반짝이는 머리 부분도 있으니 어엿했다.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두 번째 표결을 앞두고 국회 앞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반짝이는 것들을 높이 들었다. 건너편 국회에서도 볼 수 있게, 당신들에게 권리를 준 우... -
퀴즈 맞혀도 좋아할 일 아니군요…우린 ‘틀린 정책’에 살아야 하니
날씨가 쌀쌀해지면 자연스레 생각나는 간식들이 있다. 두꺼운 옷차림으로도 막을 수 없는 북극 추위를 이겨내게 하는 붕어빵, 군고구마, 어묵과 국물…. 한때에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먹거리들은 내심 겨울을 기대하게 한다. 지난달 29일 나무 위에 흰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 서울 중구 덕수궁 돌담길에 시민들의 언 손을 녹일 음식을 실은 간식 트럭이 찾아왔다.“문제 풀고 따뜻한 커피와 어묵 받아 가세요.” “혹시 제가 입고 있는 옷을 보면 무슨 직업이 떠오르나요?” “이제 슬슬 난방비가 걱정되시죠. 에너지 공공성 강화를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바삐 움직이는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다.이날 노조는 ‘윤석열이 틀렸다 노동자 시민이 옳다! 윤석열 정부 실정 거리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는 건강보험, 공공의료, 국민연금, 에너지, 사회서비스, 상병수당, 철도·지하철, 비정규직, 특수고용·플랫폼 등... -
“개인의 실천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플라스틱 문제, 다 같이 힘을 모아야”
플라스틱은 만드는 데 5초, 분해되는 데 50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플라스틱은 언제 발명됐을까요? 1907년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생산됐던 최초의 플라스틱은 아직 살아 있을 거란 이야기죠.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한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5)가 지난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막해 일주일간 진행됩니다. ‘유엔 국제플라스틱협약’의 마지막 협상으로 177개국이 모여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을 제정하는 것이 목표입니다.협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플라스틱 문제를 뿌리 뽑자고 모인 연대체인 ‘플뿌리연대’ 등 국내외 환경단체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행사장 앞에 집결했습니다. 1123부산 플라스틱 행진, 해변에서 사람들로 ‘END PLASTIC’ 글자 만들기, 세계 시민 6472명의 초상으로 그려진 감시하는 ‘눈’ 깃발 매달기 등 다양한 활동이 펼쳐졌습니다.협상 첫날 열린 플라스틱 생산 감축 촉구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경찰이 진행 방식을 문제 삼으며 이... -
5만원 줘도 배추 10포기…한숨 나오는 김장철
스스로 끼니를 챙기기 시작하면 곧 알게 된다. 요리는 ‘뚝딱’ 되지 않는다. 아주 그럴싸한 일품요리가 아니라 그냥 밥 한 끼 차려 먹는 것뿐인데도 너무 큰 수고가 든다. 재료는 재료대로, 양념은 양념대로 얼마나 많은 것이 필요한지 매번 놀란다. 국간장과 양조간장이 다르고, 대파와 쪽파와 실파가 다르다. 엇비슷한 무언가로 쉽게 대체하겠다는 마음으로는 어느 것도 제대로 완성할 수 없다.배추가 김치가 되는 데 필요한 것도 한둘이 아니다. 쪽파, 당근, 무, 액젓, 고춧가루, 젓갈, 양파, 생강, 마늘…. 배추만 가지고 김치를 담글 수 없고, 그 하나하나의 재료를 다 준비해야 한다니 엄두가 안 난다. 그냥 재료가 아니라 ‘돈을 주고 사야 하는’ 무언가다.정부는 김장철이 되면 배추값 등 김장 물가 안정에 나선다. 하지만 물가정보가 발표한 올해 4인 가족 김장 비용은 전통시장 기준 33만1000원으로 지난해보다 10.13% 뛰어 역대 최고다. 포장김치도 지난여름부터 가격이... -
“너 페미야? 에서 안전한 논의의 장 있어야"
동덕여대 본관 앞이 400여벌의 알록달록한 점퍼들로 뒤덮였다. 지난달 열린 대학 발전계획 수립에 관한 회의에서 남녀공학 전환 논의가 나왔다는 사실이 알려져 학생들이 항의의 의미로 가져다 놓은 것이다.여자는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던 시절은 아득히 먼 과거로 사라졌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2005년에 남성을 앞지른 이후로 단 한 번도 역전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여자들만 다니는 대학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1978년 한성여대(한성대)를 시작으로 1990년대 중반까지 성심여대(가톨릭대), 상명여대(상명대), 부산여대(신라대) 등이 남녀공학 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남녀공학 전환을 시도한 덕성여대, 성신여대는 재학생 반발에 부딪혀 실패했다. 동덕여대 남녀공학 철회 요구 서명에는 지난 11일 기준으로 재학생의 30%가량인 2334명이 참여했다. 왜 학생들은 학교의 공학 전환을 원하지 않을까. 답은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학생들... -
그림 투표용지 만들어 주세요
“그림 투표지 만들어주세요”헌법 제24조는 선거 참정권에 관한 조항이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라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장애인들에게 온전한 참정권 행사는 그림의 떡이다. 지난 4월에 치러진 22대 총선이 대표적이다. 당시 51.7cm에 달했던 비례대표 투표용지는 장애인들에게는 투표 진입장벽이었다.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를 비롯한 5곳의 발달장애인 단체 소속 회원들이 지난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그림 투표용지를 통한 발달장애인들의 참정권 보장을 요구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발달장애인들은 투표지에 후보자를 인식할 그림 정보가 없어 투표에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지체장애인에겐 탁자 높이를 조절해주고 시각장애인에게는 점자나 돋보기를 제공하듯이 발달장애인에게도 그림 투표지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요구했다.이들은 지난 2022년 1월 국가를 상대로 ‘그림 투표용지를 마련해 달라’는 내용의 차별구제 청구 소송을 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