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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 ‘목숨 가치’ 지키는 대령의 용기
“한 병사의 목숨의 가치는 지구의 무게만큼이나 무겁다.”지난 2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은 ‘제5회 노회찬상’ 특별상을 수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해 7월 호우 피해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해병대 채 상병 사고를 조사하다 항명 등 혐의로 기소돼 현재까지 법적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VIP 격노설’로 촉발된 논란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구명 로비 및 수사 외압에 대한 대통령 개입 의혹으로 확대됐다.지난 3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박 대령에 대한 7차 공판이 열렸다. 정복을 입고 법원으로 향하는 그의 곁에 천주교 수녀들이 함께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한 청년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당해야 했던 고통 앞에서 용기 있게 진실을 증언하며 묵묵히 고통을 감내하는 박정훈 스테파노 대령님과 그 가족, 그리고 채 상병의 유가족을 지지하고 기도로 응원한다”며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다.대통령 격노설에 진위를 묻는 내용이 포함된 이날 공판에는 ... -
재래시장서도 사라졌다…시금치는 어디로 갔을까?
최근 밥상 물가, 특히 채소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 시금치의 소매가는 100g당 3729원으로, 지난달 1740원에 비해 114.31% 상승했다. 7월부터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 가격은 8월 들어 폭등했는데 이는 집중 호우와 지속된 불볕더위로 인해 농작물의 수확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지난 25일 나는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시금치, 배추, 상추, 청양고추 등 가격이 급등한 채소들의 이름을 되뇌며 채소들이 놓인 좌판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시‘금(金)’치라 불릴 정도로 비싸진 시금치는 몇 바퀴를 돌아도 찾기 어려웠다. 도대체 시금치는 어디에 있을까? 한 채소 가게 상인에게 물었다. 그는 “시금치는 없어요. 더위에 다 녹아버렸대요”라고 말했다. 폭염으로 인한 물량 부족과 높은 가격 때문에 팔리지 않아 아예 진열하지 않는다고 했다.황급히 대형마트로 발길을 돌려보았지만, ‘NEW 신상품’ 표... -
이러면 ‘한반도 평화’가 오는가
지난 20일 한·미 연합연습 ‘을지 자유의 방패’(UFS)와 연계해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대테러 종합훈련이 진행됐다. 유동인구가 많은 다중이용시설에서의 테러 대비 태세를 확립하고자 기획된 이 훈련에는 육군 52사단과 수도방위사령부, 송파구, 지역 경찰서·소방서 등이 참여했다.이날 폭발물을 실은 드론 공격으로 올림픽체조경기장에 화재가 일어난 상황이 연출되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10명 남짓한 연기자들이 ‘한반도 평화’ ‘공산 정권 타도’ ‘공산당 OUT’이라고 적힌 팻말을 목에 걸고 경기장에서 구호를 외치며 나왔다. 이들 옆으로 테러로 인한 화재 상황이 이어졌다.바닥에 쓰러진 연기자들 쪽으로 화재 진압을 위한 소화액이 뿌려졌다. 소화기에서 뿜어져 나온 하얀 거품이 누워 있던 출연진 쪽으로 마구마구 흩날렸다. 연기자들은 손수건과 옷소매로 입과 코를 막으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중장년인 연기자들은 의용소방대원들이 구... -
‘10년 참사’ 상징 5색 리본 목걸이
노란색, 주황색, 보라색, 초록색, 그리고 하늘색. 이 다섯 가지 색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희망의 무지갯빛? 틀린 답은 아니지만, 전혀 다른 것을 상징하는 어떤 ‘리본’들의 색깔이다. 2014년 세월호의 노란색, 2017년 스텔라데이지호의 주황색, 2022년 이태원의 보라색, 2023년 오송의 초록색, 2024년 아리셀의 하늘색. 10년 동안 발생했던 참사들이 각기 다른 색깔의 리본으로 묶인 것이다.아리셀 특별근로감독 결과 발표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이 지난 13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렸다. 참석자들과 유가족들은 지난 참사들을 상징하는 리본과 함께 하늘색 리본을 목걸이에 꿰어 걸고 있었다. 그런데 참사를 상징하는 목걸이의 모습이 예쁘게 보이는 이유는 뭘까? 서로 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저 고리에는 어떤 색상 리본들이 더 추가될까?’ ‘어느 유가족이 저기에서 위안을 얻게 될까?’ ‘슬픈 연대는 왜 멈추지 않고 많아질까?’체감온도가... -
폭염 속 ‘한 끼’를 위한 기다림…열기보다 더 견디기 힘든 ‘허기’
폭염으로 온열 질환자가 잇따르고 있지만, 무더위 속 한 끼 해결을 위한 기다림은 계속되고 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 경보가 발효된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무료 급식소에는 긴 줄이 이어졌다.배식 시작은 오전 11시30분인데 훨씬 이른 시간부터 노인들이 모여들었다. 한 손에 부채를 쥔 노인들은 공원 담벼락이 만든 그늘에서 땡볕을 피한 채 배식을 기다렸다. 부채가 없는 노인들은 종이상자와 신문지를 이용해 더운 바람으로 땀을 식히기도 했다.줄지어 선 어르신들의 모습을 열화상 카메라에 담았다. 달아오른 길바닥은 붉은색을 띠었다. 오랜 시간 배식을 기다린 노인들의 뜨거운 몸도 붉게 보였다. 이날 오전 11시50분쯤 종로구의 기온은 32도까지 올랐다.급식소에는 대형 선풍기가 가동되고 있었다. 이날 무료 급식 메뉴는 쌀밥, 오이냉국, 겉절이, 어묵볶음, 무채 무침이었다. 짧은 식사시간이나마 시원하게 보낸 노인들은 다시 무더위 속으로 발걸음을 ... -
깊고 맛있는 천일염, 짠맛은 빛과 땀과 ‘기다림’이 만든다
바다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혜택 중의 하나가 소금이다. 여러 가지 소금이 있지만 미네랄 함량이 많은 천일염은 인기가 높다. 천일염은 바닷물을 모은 뒤 햇빛과 바람의 작용으로 수분을 증발시켜 만든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햇빛이 강한 여름은 소금 채취에 알맞은 계절이다. 염전 사진을 찍기에도 제격이다.지난 주말 수도권에 남아 있는 염전 한 곳을 찾았다. 경기 화성시 매화리의 공생염전이다. 쨍쨍한 햇볕 덕분에 염전 구석구석 소금이 영글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웬걸, 도착한 염전은 고요하기만 했다. 바둑판처럼 생긴 염전의 경계에 나무 밀대와 노란 수레만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한참 때인데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염부 한 분을 만났다. 새까만 얼굴의 그는 장마철에는 작업하지 않는다고 알려주었다. 애써 모아놓은 소금이 비를 맞으면 녹아버리기 때문이란다. 염부에게는 장마철이 무급휴가인 셈이었다. 휴가를 마다할 사람이 없겠지만 일손을 놓고 있는 그... -
지켜야 할 꼬리표 ‘인의예지신’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못지않게 요즘 세간의 이목을 끄는 것이 이원석 검찰총장의 서류 가방이다. 이 총장의 가방에는 김 여사의 것과는 달리 ‘명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브랜드의 로고가 작게 박혀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어깨끈 고리에 달린 붉은색 꼬리표. 가방 브랜드의 알파벳보다 큰 한자 다섯 개가 적혀 있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평이한 글귀이지만, 이에 관한 추측성 기사가 보도되는 이유는 지금의 분위기가 어처구니없기 때문일까.지난 23일 출근하는 이 총장의 빨간 꼬리표를 보자 비행기에 부착된 꼬리표가 떠올랐다. 비행기 꼬리표에는 한자 대신 영문으로 ‘출발 전에 제거하시오(Remove before Flight)’라고 적혀 있다. 착륙해 있거나 점검을 받은 비행기 동체를 보호하는 덮개를 제거한 후 비행을 시작하라는 표식이다. 비행기 꼬리표와 달리 총장 가방의 꼬리표는 제거되면 안 될 것이다. 우리 사회를 감시하고 벼리는 검찰의 눈은 최고 권력자를 향해서도 초점을 맞추... -
거센 물살에 휩쓸린 청춘 벌써 1년, 책임도 쓸려갔나
‘이 강물에 구명조끼도 없이 들여보냈다고?’‘채 상병 사망사건’ 1주기를 앞둔 지난 15일 사고 지역 인근 보문교에 도착해 든 생각이었다. 보문교 길이는 200m로 강폭이 넓고 수심도 깊어 보였다. 이날도 장맛비가 내린 후였지만 사고 당시만큼 강물이 불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곳곳에 물살이 도는 회오리 현상이 목격되었다. 강바닥과 수변은 모래펄이었다. 한 발만 잘못 내디뎌도 발이 푹푹 빠졌다. 보트 없이 맨몸으로 들어가서 수색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장소였다.채 상병은 지난해 7월19일 경북 예천군 보문면 미호리 보문교 남단 100m 지점에서 집중호우로 인한 민간인 실종자를 수색하던 도중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이후 실종 지점에서 5.8㎞ 떨어진 지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 후 1년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채 상병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검법은 국회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번번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병대... -
“뜨겁다는 말도 못하고 이렇게…아이고 내 새끼, 이렇게는 못 보내”
“아버님, 여기 어딘지, 무슨 일로 와 있는지 아시겠어요?” 화성시청 공무원의 말에 혼절한 듯 엎드려 울던 남성은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발생 열흘 만인 지난 4일 화성시청 추모 분향소에는 희생자들의 영정과 위패가 안치됐다. 유가족들은 위패와 영정을 끌어안은 채 분향소로 들어섰다. 한 명 한 명 영정이 제단 위에 놓일 때마다, 유가족들 사이에서 새어 나오던 울음은 점점 더 커졌다. “아이고 내 새끼….” “뜨겁다는 말도 못하고 이렇게… 못 보낸다, 살려내!” 일부 유가족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비명 같은 울음을 토해냈다. 고 최은미선씨의 아버지 최병학씨도 그중 하나였다. 딸을 잃은 그는 온몸으로 오열했다. 영정 안치와 헌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바닥에 엎드려 신음하고 몸부림쳤다. 주변 사람들이 부축해 간신히 몸을 일으킨 그는 딸의 영정을 붙든 손을 쉽사리 놓지 못했다. -
불길과, 편견과 맞서 싸웠다···퇴임 소방관의 ‘빛나는 명찰’
“40년1개월의 공직생활 동안 대통령이 9번 바뀌었습니다.”지난달 30일 여성 소방관 1기이자 전북소방청 최초 여성 지휘팀장인 정은애씨가 자신의 퇴임 축하 파티에서 담담히 말했다. 서울 이태원의 한 레즈비언바에서 열린 이날 파티에는 소방관·친구 등 40여명이 참석해 정씨를 축하했다. 트랜스젠더 아들 한결씨도 어머니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정씨는 화염을 넘나들며 생명을 구해낸 영웅이자 성소수자로 살고 있는 아들의 삶을 받쳐준 든든한 조력자로 살아왔다. 그는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문제로 분투했고 동료들의 죽음에 목소리를 내왔다. 또한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나비’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퀴어 당사자들과 ‘앨라이(성소수자와 연대하는 사람)’는 정씨를 ‘모두의 어머니’라고 불렀다.“‘성소수자 친화적’이고 ‘소방관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이해하는 상담사 및 인권교육가가 되는 것이 다음 목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