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균 기자
[이용균의 베이스볼 라운지]눕방과 스토브리그

프로야구는 지난 11월18일 한국시리즈 4차전으로 끝났다. 고(故) 토미 라소다 감독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야구가 끝난 날은 슬픈 날이다.

시즌 내내 소란과 소동과 사건이 많았다. 실수와 잘못, 회피와 외면 등이 이리저리 뒤섞였다. 그나마 시즌 막판 야구장에 팬들이 들어오며 작은 희망이 싹텄다. 팬들은 아직 야구를 버리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야구가 끝난 뒤, 조용해졌다. FA 최재훈이 계약했고, 미란다(두산)가 MVP에 올랐고 이의리(KIA)가 신인왕에 뽑혔는데, 야구는 조용했다. KIA 새 단장과 감독이 선임됐는데, 야구는 여전히 조용하다. 메이저리그까지 직장폐쇄에 들어가면서 야구의 공간은 소리가 없는 ‘무향실’에 가까워졌다.

미국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음향연구소인 오필드 연구소의 무향실은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곳이다. 콘크리트와 강철로 벽을 만들고, 유리섬유 흡음재로 안을 감쌌다. 모든 소리는 벽으로 흡수된다. 침묵과 고요 속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을 것 같지만 보통 사람은 그 안에서 45분을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몸의 감각기관이 이상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야구의 존재 이유는 팬들을 뜨겁게 하기 위해서다. 야구팬은 작은 단서로 내년의 기대를 증폭시킬 준비를 마쳤다. 스토브리그의 역할이다.

야구단의 존재 이유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모든 결정에 있어 ‘시끄럽지 않게’ 진행되기를 바란다. 잡음을 없애고, 논란을 막고, 무탈하게 넘어가기를 원한다. 괜히 트집 잡혀서 눈치 볼 일을 만들지 않는 게 제1원칙이다. 결정에 대해 뚜렷한 설명을 내놓지 않는다. FA 시장에 적정가격이란 존재하지 않는데, 너도나도 ‘적정’만 되뇌인다. 야구단은 모기업에서 돈을 타야 하고, 성적을 못 낸다면 시끄럽게라도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야구의 구조적 한계이자 스토브리그가 조용하고, 야구의 공간이 무향실에 가까워지는 이유다.

프로스포츠협회가 발간한 ‘프로스뷰’ 최근호에 데이터 트렌드 전문가 송길영 바이브컴퍼니 부사장의 인터뷰가 실렸다. 송 부사장은 “아이돌도 공백기에 그저 쉬는 게 아니라 ‘눕방(누워서 하는 방송)’ 등을 하면서 팬들과 소통해요”라고 말했다. ‘눕방’의 이유는 “정성을 기울여야 활동하지 않는 기간에도 팬들과의 관계가 유지되니까요”라고 설명했다. “모든 통로를 동원해서 ‘나는 아직 너를 생각하고 있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야 해요”라고 덧붙인다.

야구는 40년 전 탄생할 때 나름 매력적이었던 ‘연고지’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다. 송 부사장은 “MZ세대는 나의 귀속과 애호를 스스로 고르고 싶어해요. 좀 더 세련되고 멋지게 말 거는 브랜드가 훨씬 더 마음에 남게 되죠”라고 말했다.

야구는 거꾸로다. ‘알아서 잘할 테니, 말 좀 걸지 말아 달라’고 침묵으로 외치고 있다. 그나마 리그를 먼저 생각하는 선수가 있다는 건 다행이다. 이정후(키움)는 정규시즌 시상식 때 홈런왕 도전을 선언했다. “분위기가 너무 딱딱해서 웃기려고 그랬다”고 털어놓았다. 시즌 종료 뒤에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오프 시즌 동안 병역특례 봉사 시간을 채우느라 바쁜 틈을 쪼개 퀴즈 토크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 예능에 나선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야 야구를 조금이라도 알릴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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