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출신 전통의 강호, 입에서 춤춘다 ‘쌈밥~’

김진영

(89) 전북 김제 콩쥐팥쥐

한 접시 가득 로컬푸드, 군침 도는 맛 전쟁

로컬푸드가 발달한 김제시의 한 로컬푸드식당은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를 이용해 뷔페식으로 음식을 낸다. 상추가 이리 달았나? 상추쌈만 먹어도 눈이 번쩍 띈다.

로컬푸드가 발달한 김제시의 한 로컬푸드식당은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를 이용해 뷔페식으로 음식을 낸다. 상추가 이리 달았나? 상추쌈만 먹어도 눈이 번쩍 띈다.

김제는 오랫동안 이런저런 일로 자주 다니던 곳. 멀게는 20년 전, 가깝게는 올해 모내기 직전에 두어 번 다녀왔다. 벼를 오랫동안 재배한 김제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해온 양 중심의 쌀 수매 방식을 ‘맛’ 중심으로 바꾸는 실험이다. 경기도 양평에서 적은 양으로 실험했다가 양을 늘려 100t 규모로 재배하고 있다. 모내기할 때 모를 가장 적게 심다보니 벼가 무르익기 직전에 논이 비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우려는 나타나지 않고 벼 뿌리에서 분할도 잘 이뤄져 논이 벼로 가득 찼다고 한다. 이렇게 재배하면 벼 줄기 하나하나가 힘을 받을 수 있어 병충해도 잘 견디고 쌀 맛도 좋아진다. ‘최소 투여, 최대 수확’의 경제 논리를 ‘최소 투여, 최대 맛’으로 바꾸는 일이다. 김제 청하면과 진봉면의 생산자들이 애쓰고 있다.

겸사겸사 이유를 가지고 출발했어도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모든 것이 안 되던 아침이었다. 출발 전날 비가 왔다가 그쳤다. 다음날 김제 날씨를 보니 오전까지는 비다. 이 정도 비라면 장은 선다. 가는 내내 추적추적 비가 내리다가 쏟아지길 반복했다.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갑자기 ‘현타’가 왔다. “아, 내일 장날 아니다!” 장날을 착각하게 만든 것은 두 가지가 원인. 하나는 김제시 원평장(5, 0일장)과 로컬푸드 축제인 콩쥐·팥쥐 문화장터(이하 콩쥐팥쥐)였다. 콩쥐팥쥐가 열리는 날은 토요일인 20일, 원평장과 겹치는 날이다. 김제시 중심에서 열리는 장터는 2, 7일장. 원래 출장 가기로 마음먹었던 영천 오일장(2, 7일장)과 같았다. 마음을 김제로 돌린 이유는 콩쥐팥쥐 때문이다. 로컬푸드를 응원하는 처지에서 문화장터를 놓치기 싫었다. 목적이 빤해지니 경마장의 경주마처럼 앞만 봤다. 장터라는 목적만 보니 날짜는 보이지 않았다. 22일 월요일 김제장을 일요일로 착각했다.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김제시가 안 되면 원평장이라도 보자 생각했지만 쏟아지는 비에 원평장은 서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원평장 가는 길에 콩쥐팥쥐 문화제가 있었다. 원평에서 ‘꽝’치고 돌아오는 길, 콩쥐팥쥐 문화장터를 잠시 둘러봤다.

김제시가 로컬푸드사업 다각화 일환으로 여는 콩쥐·팥쥐 문화장터.

김제시가 로컬푸드사업 다각화 일환으로 여는 콩쥐·팥쥐 문화장터.

장날을 착각해 원평장 ‘꽝’ 치고
대신 찾아간 콩쥐팥쥐 문화장터
‘갓성비’ 로컬푸드 잎채소 등 싱싱

난산·마전 마을 사이 위치한 식당
지역에서 난 식재료로 차린 뷔페식
상추 한 장도 달달해서 ‘눈이 번쩍’
쌈 싸서 먹다보면 음식 리필은 기본

산지를 다니면서 응원하는 것이 두 가지다. 로컬푸드와 우리밀이다. 우리밀은 식량 자급 문제 때문이다. 쌀을 제외하면 식량 자급률이 3%대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는 쓸 수 있어도 먹을 수는 없다. 외국에서 수입을 제한하면 지금보다 몇 배나 비싼 가격에 사 와야 한다. 일정 이상은 우리가 생산해야 받는 타격이 덜하다. 가능하면 우리밀로 빵을 만들거나 국수를 내는 곳을 찾아가려고 노력한다. 예전에 비해서는 많아졌다. 그런데도 밀 자급률은 0.8%대다. 참고로 일본은 17%대라 한다. 로컬푸드는 탄소 발자국보다는 맛의 관점과 지역 활성 두 가지 때문이다. 전북 완주군에서 성공한 로컬푸드 매장은 전국으로 퍼졌다. 김포나 남양주, 태안군처럼 잘되는 곳이 있기도 하지만 안 되는 곳도 많다. 다녀본 로컬푸드 매장 중 잘되는 곳으로 김제 또한 추가다. 필자가 로컬푸드 매장에 가는 이유는 맛있기 때문이다. 흔히 ‘가성비’를 자주 언급한다. 로컬푸드 매장에 가면 ‘가성비’ 대신 ‘갓성비’를 말한다. 특히 잎채소나 과채류를 맛보면 이해할 수 있다. 두 가지는 수확 시점이 가장 맛있다. 시간이 지나면 가지고 있던 맛을 에너지로 전환한다. 수확했다고 호흡 등의 생리활성이 끝나지는 않는다. 단맛을 내는 포도당과 과당을 에너지로 바꾸기에 오늘 수확한 것과 어제 수확한 것은 맛에 있어서 당연한 차이가 난다. 기대하는 것만큼 얻으면 ‘가성비’가 좋다고 한다. 그 이상이면 ‘갓성비’라 한다. 로컬푸드 매장에서 채소만 사지 않는다. 포장 두부 또한 꼭 산다. 슈퍼에만 가도 있는 두부를 뭐하러 사나 하겠지만, 맛이 다르다. 효율성만 따지는 대기업 두부와 달리 콩 맛이 묵직한 두부를 살 수 있다. 두부의 차이는 구울 때 나타난다. 묵직한 두부는 수분을 품고 있어 기름이 튀지 않는다. 반면에 대기업 두부는 아침나절에 쏟아지던 비처럼 기름이 튄다. 김제시 로컬푸드 중심에는 연미향이 있다. 지역에서 공장을 운영하면서 지역 재료를 사용한다. 떡부터 반찬까지 다양한 생산품이 있다. 로컬푸드의 장점은 언제나 맛난 것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비 때문에, 착각 때문에 장 구경은 못해도 로컬푸드 매장 덕에 장도 보고 구경도 잘했다. 연미향 (063)223-1511

면이 붇는 것을 방지하는 식용 소다를 넣지 않은 대흥각의 짜장면.

면이 붇는 것을 방지하는 식용 소다를 넣지 않은 대흥각의 짜장면.

로컬푸드가 발달한 곳이니 당연히 식당도 있다. 흔히 맛집이라고 하는 곳을 가면 밥을 먹는다는 행위보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릴 자랑거리 촬영 용도가 많다. ‘나는 이거 먹어요, 먹었어요, 부러워하세요’ 정도다. 카운트 올라가는 ‘좋아요’에 비례해 허기가 지거나 기분이 나쁠 때가 있다. 식당에서의 대접이 손님이 아니라 그냥 돈 내는 사람으로 취급받을 때가 많아서다. 맛은 그냥 그런데도 누군가의 맛만 좇는다. 김제에는 로컬푸드 식당이 두 군데 있다. 육개장을 파는 식당은 개인 사정으로 쉬고 있었다. 두 번째 식당에 가기 전, 동김제 로컬푸드 매장에서 장을 봤다. 우리밀과 쌀로 만든 빵이다. 이음 베이커리는 우리밀로 빵을 만들면서 다문화 가족이 중심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맛난 빵 맛도 빵 맛이지만 어울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다. 두 번째 식당은 김제시 백구면에 있는 난산마전. 난산마전이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궁금함은 바로 풀렸다. 백구면에 있는 마을 이름이 난산과 마전이다. 난산과 마전에서 나는 식재료를 이용해 뷔페식으로 낸다. 10여가지 음식이 있다. 전채 요리 호박죽부터 후식인 식혜와 호박죽까지 있을 건 다 있다. 여기 와서 꼭 맛봐야 하는 것이 있다. 상추 쌈이다. 상추만 맛봐도 눈이 번쩍 띈다. 원래 상추가 이리 달았나? 혼잣말도 한다. 텃밭을 해본 이만 알 수 있는 맛이다. 쌈 싸다 보면 리필은 기본으로 하는 곳이다. 맛집은 인기 많은 집, 여기는 맛이 있는 집이다. 난산마전 슬로푸드식당 (063)542-3353

우리밀로 빵을 만들면서 다문화 가족 중심으로 운영하는 로컬빵집.

우리밀로 빵을 만들면서 다문화 가족 중심으로 운영하는 로컬빵집.

쌀 계약 재배 때문에 김제 내려왔다가 알게 된 집이다. 전국에 수많은 중식당이 있다. 김제 또한 마찬가지다. 짬뽕, 짜장면, 탕수육만 잘하면 되는데 이게 쉽지 않다. 식당에 달린 수많은 후기 중에서 “면이 쫄깃해요”하는 댓글이 많다. 요새 중식당 면은 노란색이 많다. 붇지 말라고 식용 소다(중조, 중탄산나트륨, 식소다 같은 것 말이다)를 넣는다. 면이 붇지도 않지만, 면을 쫄깃한 성질을 주는 글루텐 형성에 깊게 관여한다. 식소다 넣은 면이 쫄깃한 것은 당연하다. 예전에는 쫄깃함을 주기 위해 오랜 반죽과 숙성을 했다. 시간 대신에 간단히 과학으로 해결한 것이 식용 소다다. 짜장면을 주문하면 일단 반감부터 생긴다. 샛노란 면 대신에 하얀 면이 반기기 때문이다. 볶아 나온 짜장을 넣고 비비면 그제야 안심이 된다. 익히 알고 있는 짜장의 맛이 입안 가득 채운다. 짜장이냐 짬뽕이냐 중국집 최대 고민 앞에서 짜장을 선택하는 몇 안 되는 집이다. 물론 개인 취향이다. 오전 11시30분 문을 연다. 줄서기 싫어하는 주변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을 앞당기는 집이다. 대흥각 (063)547-5886

로컬푸드 매장에서 육개장을 먹었다면 소개하거나 먹지도 않았을 집이다. 먹었다면 지금이 아니라 찬 바람이 불 때일 것이다. 여름에 먹는 무밥은 달지 않았다. 재료가 되는 무가 물맛이기 때문이다. 8월의 무는 강원도산이 대부분이다. 해발 800m, 900m 되는 곳에서만 자라기 때문이다. 찬 바람이 불어야 제맛이 나는 게 무. 더위와 잦은 비에 애써 키워도 무의 맛은 물의 맛이다. 가득 채 썬 무를 씹어도 나는 것은 맹한 맛. 갓 지은 밥에 기댈 수 있는 것은 양념간장이 유일했다. 그나마 위안은 같이 나온 찬이 맛있다는 것이다. 역시 여름은 맛이 없는 계절이다. 가을걷이 이후 김제에 간다면 다시 한번 먹어 보고 싶은 메뉴다. 텃밭 (063)545-3040

8월 말을 넘어 9월이다. 공기 중에 가득 머물고 있던 수분이 날아가면서 하늘이 가벼워진다. 어제보다 조금 더 높아진 하늘을 만나는 가을이다. 9월은 여름과 가을의 경계지점.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추석은 아니다. 음력으로 8월15일 추석은 익을 준비를 할 때이지 수확할 때는 아니다. 과학으로 일부 조생종은 나오지만 말이다. 지평선으로 지는 해가 짧아졌다. 가을이 보이는 곳까지 왔다.

▶김진영

[지극히 味적인 시장]텃밭 출신 전통의 강호, 입에서 춤춘다 ‘쌈밥~’

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만렙의 27년차 그린랩스 팜모닝 소속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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