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찬미… 味 맛에 반하고, 美 풍경에 취하고

김진영 MD

(90) 충남 당진장

[지극히 味적인 시장]메밀찬미… 味 맛에 반하고, 美 풍경에 취하고

충남 당진, 명절 대목장을 보러 갔다. 명절 지나고 보름 정도는 장이 잘 서지 않는다. 장이 서더라도 몇 사람만 겨우 소일거리 하러 나오는 수준이다. 명절 전 갈 수 있는 장날을 따졌다. 칼럼의 마감과 취재 여건이 맞지 않았다. 당진 오일장(이하 당진장)은 5와 0이 든 날에 장이 선다. 내가 간 날은 8, 9일. 추석날이 장서는 날이었다. 오일장 날짜와 맞지 않더라도 시장은 사람으로 북적거릴 것으로 생각했고 실제로 대목 맞은 시장 모습이었다. 시장 다닌 4년차의 짬밥은 ‘역시나’였다.

오랜만에 가는 당진, 그사이 수도 없이 스쳐 지났다. 당진만 오롯이 보고 가는 것은 실제로 십 년 만인 듯. 낚시를 좋아하기에 붕어를 낚든 루어 낚시를 하든 시즌이 시작되면 봄부터 초겨울까지 뻔질나게 당진을 드나들었다. 한보철강에서 현대제철로 바뀌었어도 석문방조제는 여전히 있었다. 방조제는 루어 낚시 최고의 연습장이었다. 바다 쪽 방조제는 두 계단 다음부터 바다였다. 물이 빠지기 시작해 두 번째 계단이 드러날 때가 고기 잡기 딱 좋을 때였다. 가을이면 방조제 수문 근처에서 어른 팔뚝만 한 삼치도 잡았다. 당진 시장에 가는 길은 일부러 송악 나들목에서 나왔다. 제철소를 지나 성구미포구에서 시작해 도비도까지 갔다. 석문방조제는 일정 거리마다 숫자가 적혀 있다. 숫자를 지나니 추억은 더 또렷해졌다.

[지극히 味적인 시장]메밀찬미… 味 맛에 반하고, 美 풍경에 취하고

추석 대목 맞춰 찾았더니 북적이는 당진장…주린 속 채우기엔 시장표 먹거리 칼국수·만두·찐빵이 제격
풍경이 남다른 평양냉면 가게…메밀꽃밭을 보며 메밀면을 먹으니 입에도 눈에도 메밀 여운이 그득
닭계장을 찜했다 우연히 맛본 한정판 뼛국…삼삼한 국물에 푹 익은 고기, 갓 퍼낸 밥까지 참 맛있었던 식사

당진장은 당진 상설시장 주변에서 열린다. 당진 시장은 대기업과 재래시장의 상생 시장으로도 유명하다. 대기업의 슈퍼마켓이 2층에 들어섰다. 카페와 문화센터가 입점했고 1층은 어시장으로 구성됐다. 이후로 몇 개의 지역 시장에 이런 상생 모델이 들어섰다. 중심에 상설시장이 있고 좌우로 장이 들어선 모양이다. 당진장이 정상적으로 열리는 것에 비해 규모는 15% 정도 적다. 봄철에 잠깐 들러 오일장을 구경했었다. 아마도 당진장 외에 추석 대목장이 서는 곳으로 장꾼들이 가서 그럴 듯싶다. 추석 대목에 가장 바쁜 곳은 떡집. 시장통에 있는 떡집은 불난 호떡집처럼 바빴다. 증편 나온 것을 선풍기에 식히고 있었다. 두 사람이 빠른 손길로 찜기와 떡을 분리하는 것을 보고는 지났다. 다시 돌아와 보니 이제는 커다란 송편이다. 떡집 안도 아까보다 사람이 많다. 명절 냄새 물씬 풍기는 곳은 역시나 떡집이었다.

시장 한편에 대추가 놓여 있다. 작년에 수확해 말려 놓은 것과 이제 맛이 들기 시작한 파란 대추다. 추석은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때가 아니다. 대추뿐만 아니라 쌀도 마찬가지다. 추석 전에 수확하기 위해 조생종 벼를 개발하고, 사과밭에서는 바닥에 반사판을 깔아 익히고 호르몬제를 사용해 크기를 키우거나 색을 입힌다. 이런 것들이 없던 시절에 추석은 가을 추수 준비를 하는 절기였을 뿐이다. 무엇을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들어서니 과학의 힘을 빌려 작물의 계절을 당겼으나 제철은 당기지 못했다. 추석은 추수를 준비하는 절기일 뿐이다. 시장을 다니다 보니 이상한 문구가 눈에 띄었다. ‘대하’가 곳곳에 보였다. 대하라는 것이 큰 새우를 지칭하는 왕새우와 같은 말이지만 푯말의 의미는 다른 새우를 가리킨다. 대하가 세 번 보이면 왕새우는 한 번 보였다. 대하나 왕새우는 흰다리새우를 돌려 말한 것이다. 가을에 맛이 드는 대하를 이용한 불법 판매다. 제대로 흰다리새우라 표시한 곳은 찾을 수가 없었다. 방송에서도 뭇매를 맞은 지역은 흰다리새우라 지칭하고 있지만, 그 외에 지역은 여전히 대하나 왕새우라 하고 있다. 이는 당진시의 의지 문제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다음날 일이 있어 간 강화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양식장에 내건 플래카드에는 왕새우나 대하뿐이었다. 대하는 그물에 잡혀서는 배 위 그물에서 떼일 때 죽는다. 시장이나 식당 수족관에서 헤엄칠 틈을 내주지 않는다. 가을에 살아 있는 모든 새우는 흰다리새우라 보면 된다. 가을에 맞추어 출하하기에 대하의 이름을 빌리지 않더라도 충분히 맛이 난다. 대하나 왕새우라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새우 중에 대하와 중하가 있다. 대하보다 작은 것을 중하라 생각하기 쉽다. 둘은 전혀 다른 종이다. 중하가 있으면 소하가 있어야 하는데 없다. 중하는 대하만큼 크지도 않거니와 자라지도 않는다. 시장통 아주머니 한 분이 노란색 숙주 대가리에 묻은 녹두 껍질을 손질하고 있었다. 콩나물은 콩으로, 숙주는 녹두로 키운다. 녹두나물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식사로도 손색 없는 시장표 만두와 찐빵.

식사로도 손색 없는 시장표 만두와 찐빵.

시장을 봤으니 잠시 숨을 돌리면서 출출한 속을 채우기에는 군것질만 한 것이 없다. 시장 먹거리에 어묵, 호떡, 족발, 도넛 등이 있다. 만두나 찐빵, 칼국수도 빠지면 섭섭하다. 빠지면 섭섭한 세 가지만 하는 식당이 있다. 칼국수 주문할 때 곁다리 메뉴로 만두나 찐빵을 주문한다. 가뜩이나 좁은 식당 안, 제면기까지 있어 더 좁아 보인다. 주문 오면 면을 뽑고 육수를 더 한다. 칼국수 한 그릇에 5000원으로 시장기에 딱 알맞은 양이다. 거기에 찐빵이나 만두(다섯 개, 2000원)를 더하면 식사로도 손색이 없다. 만두나 찐빵은 반죽한 것을 발효했는지 발효 향이 살짝 난다. 만두소는 당면과 채소가 들어가 있다. 칼국수 파트너로는 손색이 없지만 따로 먹기는 모호하다. 의외의 맛이 찐빵, 쫄깃한 빵 사이에 적당한 팥소가 조화롭다. 만두 사러 가진 않겠지만 찐빵 사러 갈 듯싶다. 귀락당 (041)352-5270

맵지 않고 간이 연해서 좋았던 뼛국.

맵지 않고 간이 연해서 좋았던 뼛국.

당진과 예산의 경계점에 김대건 신부를 기리는 솔뫼성지가 있다. 소나무 산이라는 솔뫼답게 성지 주변은 소나무가 가득하다. 사실 여기가 목적지는 아니다. 조금 떨어진 곳의 냉면집이 원래 목적지, 차로 5분 거리다. 지방을 다니며 찾는 음식에 냉면이 있다. 작년 이맘때 경북 봉화에서 맛본 평양냉면이나 한여름 정선에서 맛본 냉면은 가끔 생각난다. 수도권에 사람이 많다 보니 평양냉면을 서울냉면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지역에 가면 서울서 유명한 냉면 못지않은 식당들이 제법 많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광주광역시도 있다. 당진시 또한 냉면 맛난 곳이 있다. 솔뫼성지 갔다가 도착하니 2시41분. 휴식 시간 전 마지막 주문이 40분. 할까? 문 앞에서 서성거리니 일하는 분이 불쌍히 여기셨는지 문을 열어줬다. 그 덕에 맛난 냉면 한 그릇 했다. 서울이든 어디든 냉면집 풍경은 다들 비슷해도 여기는 다르다. 냉면 먹다가 고개를 돌리면 하얀 메밀꽃이 반긴다. 꽃밭의 끝에는 파란 하늘이 있다. 입으로 메밀 향을 음미할 때 눈으로는 꽃이 나를 힐링시켰다. 그렇게 먹다 보면 한 그릇이 뚝딱이다. 메밀면은 먹는 방식이 있다. 메밀면을 씹을 때 천천히 꼭꼭 씹어야 한다. 처음에는 밋밋했던 맛이 점차 구수해진다. 조금 더 씹으면 가지고 있던 향을 조금씩 내준다. 목으로 넘길 때까지 메밀 여운이 남는다. ‘냉면은 면치기’니 하는 말이 있다. 그게 가능하거나 좋은 사람은 그렇게 먹어야 한다. 그게 좋다거나 나쁘다 할 필요가 없다. 나는 냉면 먹을 때면 조금 넣고 조곤조곤 씹는다. 면을 넘기고는 육수를 마신다. 미당면옥 (041)362-1500

대목을 맞은 당진장의 풍경.

대목을 맞은 당진장의 풍경.

당진을 갈 때 한 가지 메뉴는 정해 놓고 있었다. 닭계장은 꼭 먹고 와야지 했다. 루어 낚시하러 다니던 20년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낚시하러 가거나 끝내고 올 때 가끔 갔다. 이번에도 오랜만에 한 그릇 해야지 했다가 다른 것을 먹었다. 하루에 50그릇 한정 뼛국이 닭계장을 대신했다. 메뉴는 두 가지 뼛국과 비지찌개. 들어오는 손님 대부분 뼛국을 주문한다. 11시 조금 넘어서 도착한 식당은 거의 만석. 주문하고 자리에 앉으니 그다음부터는 대기다. 한 사람은 요리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상을 차린다. 보통 이런 집은 미리 밥을 공기에 담아 놓는다. 여기는 달랐다. 집에서 엄마가 막 지은 밥을 퍼주듯 상차림과 동시에 밥을 담았다. 국이 맛없고 있고를 떠나 기본을 지켰다. 나온 국을 보니 보통의 돼지 등뼈. 국물 색이 다른 곳보다 연하다. 맵지 않고 간도 연해 딱 좋다. 싱거우면 소금을 넣을 수 있도록 했다. 소금 넣는 것도 좋지만 같이 나온 양념 새우젓 넣는 것을 추천한다. 새우젓은 새우+소금에 시간이 쌓인 맛을 지닌 조미료다. 감칠맛만 내는 조미료와는 ‘끕’이 다르다. 잘 삶은 등뼈를 발라 먹다 보면 어느새 밥공기가 빈다. 참으로 오랜만에 밥이면 국이며 맛나게 먹었다. 뼈국밥집 (041)355-2939

▶김진영

[지극히 味적인 시장]메밀찬미… 味 맛에 반하고, 美 풍경에 취하고

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만렙의 27년차 그린랩스 팜모닝 소속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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