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화 체포 문서 ‘미스터리’

유정인 기자

최규하 전 대통령 “12·13 05:10AM 적고 서명”

5공 전사 부록 속 문서엔 ‘12·12’만 적혀 있어

‘사후 승인’ 문제 우려한 편찬자들 조작 가능성

<b>사라진 ‘시각’</b><제5공화국 전사> 부록 1편 390쪽에 실린 ‘수사착수건의’ 문서. 최규하 당시 대통령이 ‘사후승인’했음을 알리며 적어 넣었다는 ‘12.13 05:10AM’은 보이지 않는다.

사라진 ‘시각’<제5공화국 전사> 부록 1편 390쪽에 실린 ‘수사착수건의’ 문서. 최규하 당시 대통령이 ‘사후승인’했음을 알리며 적어 넣었다는 ‘12.13 05:10AM’은 보이지 않는다.

<제5공화국 전사>에는 1979년 12·12 쿠데타 당시 최규하 대통령이 (신군부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을 재가한 문건이 실려 있다. 최 대통령은 당시 재가문서에 서명하며 ‘12·13 05:10AM’이라는 시각을 적어 ‘사후 승인’임을 알린 것으로 전해져왔다. 그런데 <5공 전사>에 실린 문건의 서명란에는 이 같은 시각이 없다. 12·12 쿠데타의 불법성을 확정짓는 핵심 문건에 <5공 전사> 편찬자들이 ‘손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b>쿠데타를 기념하듯…</b><제5공화국 전사> 본문 제3편 앞머리에는 12·12 쿠데타 주역들의 사진이 당시 직책과 함께 실려 있다.

쿠데타를 기념하듯…<제5공화국 전사> 본문 제3편 앞머리에는 12·12 쿠데타 주역들의 사진이 당시 직책과 함께 실려 있다.

<5공 전사>는 부록 1편 390쪽에 최 대통령의 서명이 담긴 ‘수사착수건의’ 문건을 실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12월12일 오후 6시30분을 조금 넘긴 시각, 최 대통령이 머물던 총리 공관(최 대통령은 당시 대통령권한대행으로 총리 공관에 머물렀다)을 찾아가 정 총장 체포의 ‘재가’를 요청하며 내민 서류다.

문건에는 “고 박정희 각하 시해사건에 관련된 것으로 판단되는 육군참모총장 대장 정승화, 3군사령관 중장 이건영 및 특전사령관 정병주를 연행, 수사코저 하오니 재가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다. 그 아래 ‘별첨’으로 “1. 총장언동분석 2. 중장 이건영 및 소장 정병주 관련사항”이라고 썼다. 결재 서명란은 장관과 대통령 등 2개다. 최 대통령은 ‘CHOI’를 흘려쓰는 특유의 필체로 서명했다. 장관란에는 노재현 국방장관이 흘려쓴 ‘현’과 함께 ‘신’이라는 글자가 있다. 대통령기록관에 공개된 당시 다른 서류들의 서명과 대조한 결과, ‘신’은 최 대통령과 함께 있었던 신현확 국무총리의 서명으로 추정된다. 두 서명란에는 모두 ‘12·12’라는 날짜가 적혀 있다. 최 대통령이 적었다는 ‘05:10AM’이라는 시각은 보이지 않는다.

최규하 전 대통령

최규하 전 대통령

최 대통령은 당시 전 사령관의 재가 요청에 ‘노재현 장관과 상의하겠다’며 거절했다. 오후 8시30분쯤 전두환·황영시·유학성·차규헌·백운택·박희도 등 6명이 몰려와 재가를 압박할 때도 다시 거절했다. 그렇게 10시간여를 버티다 노 장관과 함께 다음날 오전 5시를 넘어 서류에 서명했다. 이미 정 총장 연행과 신군부의 군 장악이 마무리된 시간이다. 이는 <5공 전사>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신 총리는 12·12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최 대통령이 “당시 사전 재가 없이 정 총장을 연행한 것은 불법이라 생각했고, 12월13일 새벽 더 큰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재가했지만, 사후 재가라는 점과 국방장관의 결재 등 정식 결재 절차를 거쳤다는 점, 장시간 고민 끝에 어쩔 수 없이 결재했다는 점 등을 서류상 명백히 하기 위해” 서명란에 ‘12·13 05:10AM’을 적었다고 수차례 말했다는 점을 밝혔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애초에 서명 시각이 적히지 않았거나, 신군부가 핵심 서류를 ‘조작’해 실었을 가능성이다. 연구자들은 신군부의 ‘조작’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2007년 군 진상규명위원회에 참여해 문건을 검토한 노영기 조선대 교수는 “당시 명확한 조작 여부를 가려보진 않았으나 조작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대통령 재가도 없이 계엄사령관을 체포했다면 당연히 불법이 돼버리니까 서류에서 시각을 지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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