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최초 원주민 총독 임명...영국 여왕 대리 역할

이윤정 기자
캐나다 최초 원주민 출신 총독으로 6일(현지시간) 임명된 매리 사이먼이 퀘백주 가티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가티노|로이터연합뉴스

캐나다 최초 원주민 출신 총독으로 6일(현지시간) 임명된 매리 사이먼이 퀘백주 가티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가티노|로이터연합뉴스

원주민 언어로 첫 연설 “과거의 잔학 행위 기억할 필요”

캐나다 역사상 최초 원주민 출신 총독이 탄생했다. 과거 가톨릭 기숙학교에 강제 입학한 토착 원주민 자녀들이 학대·학살당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분노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저스틴 트뤼도 총리가 역사의 상처를 치유할 적임자로 원주민 출신 총독을 내세운 것이다.

캐나다 방송 CBC 등에 따르면 트뤼토 총리는 6일(현지시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수십년간 소수민족 이누이트의 권리를 대변해온 매리 사이먼(73)을 제30대 총독으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건국 154년 만에 처음으로 원주민 출신이 총독에 오른 것이다. 캐나다 총독은 공식적인 국가원수인 영국 여왕을 대리하는 인물이다. 상징적 자리로 여겨지지만 의회 개회사·정회 선언, 법안에 대한 왕실 인가, 캐나다 군 최고사령관 등 몇몇 중요한 국가 업무를 수행한다.

트뤼도 총리는 신임 총독 임명에 대해 “캐나다 국민이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교량을 건설하는 것”이라면서 “사이먼은 평생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캐나다가 전진할 길을 개척하는 것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154년이 지난 오늘날 캐나다는 역사적 발걸음을 내딛는다. 더 좋은 사람을 생각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더 강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이먼은 이날 모국어인 이누크티투트어로 취임 연설을 시작했다. 이누크티투트어는 에스키모계 민족이 사용하는 이누이트어의 일종으로, 캐나다에 사는 원주민이 쓰는 언어다. 그는 “영광스럽고 겸손하게 캐나다 최초의 토착 총독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면서 “캐나다에 역사적으로 고무적인 순간이자 화해를 향한 긴 여정의 중요한 진전”이라고 말했다. 사이먼은 “과거의 잔학 행위를 충분히 인식하고, 추모하고,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9~20세기 가톨릭 기숙학교에 강제 입학한 토착 원주민 자녀들의 유해가 수백구가 최근 잇따라 발견되면서 원주민들의 분노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사이먼은 퀘벡 북부 누나빅 지역 강기크수알루주악 지역 원주민 어머니와 모피 교역회사인 허드슨베이의 관리인이었던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8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북극 지역에서 자라 전통적인 원주민 생활 방식으로 살면서도 백인 아버지로부터 비원주민 세계에 대해 배웠다”면서 “이러한 경험들을 토대로 캐나다에서 서로 다른 현실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교가 되겠다”고 말했다.

CBC 방송에서 프로듀서 겸 아나운서로 커리어를 시작한 사이먼은 1975년 퀘벡주 이누이트협회 간사로 일하면서 공직에 몸담기 시작했다. 이후 이누이트 권리를 찾는데 주력해 왔으며 1999년 캐나다 최북단 주인 누나부트 행정구역을 만드는 데도 기여했다. 1994년 캐나다의 초대 극지 담당 대사로 임명됐고, 5년 후 덴마크 주재 캐나다 대사가 되면서 최초의 원주민 대사 기록을 세웠다.

북극에 인접한 8개 나라의 협의기구인 북극이사회에서 캐나다 대표단을 이끌었는데, 당시 미국이 북극이사회에서 원주민 역할을 축소하려 하자 사이먼이 “회담장을 떠나겠다”고 위협하며 원주민의 권리를 지켜내기도 했다. 퀘백 이누이트를 대변하는 마키빅조합의 피타 아마티 대표는 “캐나다와 원주민 사이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면서 “캐나다에서 원주민이 영국 여왕의 대리인이라는 점은 캐나다와 국제사회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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