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은 갔지만…‘파월 독트린’은 유효하다

이윤정 기자

가능한 무력 개입 피하되 불가피할 땐 속전속결 승리 전략

포린폴리시 “미 외교 더 난장판 되기 전 그의 말 기억해야”

파월은 갔지만…‘파월 독트린’은 유효하다

“콜린 파월(사진)은 군인과 외교관 모두에서 최고 이상을 구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별세한 파월 전 국무장관에 대해 이렇게 추모했다. 파월은 흑인 최초로 미국 합참의장과 국무장관에 올라 백인 중심 미국 정가에서 유리천장을 깬 개척자이자 ‘파월 독트린’을 내놓은 군사·국가 전략가였다. 파월 독트린은 가능한 한 무력 개입을 피하되 국가 이익을 위한 개입이 불가피할 경우 압도적인 군사력을 투입, 속전속결로 승리를 결정짓는 전략이다. 1990~1991년 걸프전을 앞두고 당시 장군이었던 파월이 창안한 독트린을 두고 기자들이 ‘파월 독트린’이라 이름 붙이며 유명해졌다.

파월이 이 같은 독트린을 내놓게 된 건 베트남전 참전 경험 때문이다. 그는 뛰어난 군인이자 지휘관으로 숱한 훈장을 받았지만, 베트남전을 통해 전쟁의 불합리성과 허무함을 확신하게 됐다. 파월은 1995년 회고록에서 “국민들이 지지하지 않는‘반쪽 전쟁’을 다시는 수행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파월 독트린은 미 외교안보 정책에서 작동되지 않았다. 2003년 이라크 침공 전 파월은 베트남전의 교훈을 설파했지만 전쟁 경험이 없던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매파 인사들은 전쟁을 밀어붙였다. 파월은 자신이 설정한 독트린에도 불구하고 왜 이라크전을 막지 못했을까. 파월은 2009년 CNN 인터뷰에서 관련 질문을 받자 “전쟁을 막기 위해 논쟁을 이어갔지만 일단 대통령이 결정을 내리면 그것이 내각의 결정이 된다”고 답했다.

북핵 문제를 비롯해 중동·이스라엘 관계 등 주요 외교 사안에서 파월 장관의 역할은 부시 행정부의 극단적 성향을 완화하고 재앙을 막는 데 한정됐다. 워싱턴포스트 기자인 카렌 드영은“파월은 한 국가의 최고 외교관으로서 자신이 이런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게다가 이라크전 당시 인생 최대의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2003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을 제기하는 연설을 했다. 하지만 이듬해 잘못된 증거를 제공받았음을 인정해야 했다. 당시 정부에서 그는 ‘올드맨’ 취급을 받았고 핵심 정보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파월은 “유엔 연설은 나를 늘 따라다닐 것이다. 부고에도 실리게 될 것”이라며 인생 최대 오점으로 유엔 연설을 꼽았다.

포린폴리시는 아프가니스탄 철수 과정에서의 혼란을 언급하며 지금 이 시대 ‘파월의 유산’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이 더 난장판이 되기 전에 파월의 경고를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