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결의 ‘비토’ 미국, 이스라엘에 무기 지원은 ‘패스트트랙’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의회 승인을 건너뛰고 이스라엘에 전차용 포탄 등 무기를 제공하기로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휴전 촉구 결의안에 ‘나홀로’ 거부권을 행사한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에 속도를 내는 것을 놓고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미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DSCA)은 9일(현지시간)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전날 이스라엘에 대한 1억650만 달러 규모의 120mm 전차용 다목적 고폭탄(MPAT) 및 군사 장비 등의 판매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즉각적인 무기 판매가 필요한 긴급 상황이 존재하며, 이는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에 부합한다”면서 무기수출통제법 36조 b항에 따라 의회 검토 요건을 면제했다. DSCA는 그러면서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안보 제공에 전념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이 강력하고 준비된 자기 방어 역량을 개발·유지하는 것은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에 핵심적이다”고 밝혔다.

무기수출통제법은 행정부가 긴급조항을 발동할 경우 의회 승인을 받지 않고도 일종의 ‘패스트트랙’을 밟아 외국 정부에 무기를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미 하원은 이스라엘 정부가 요청한 포탄 1만3000여발 등 무기 판매 건을 심사 중이었다. 익명의 국무부 관계자는 워싱턴포스트(WP)에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도 긴급조항을 발동해 무기를 지원한 바 있다면서 “이스라엘의 긴급한 필요를 고려할 때 블링컨 장관은 이번에도 자신이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의 이런 결정은 전날 미국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 휴전을 촉구하는 안보리 결의안에 대해 상임이사국 중에 유일하게 거부권을 행사한 뒤에 나왔다. 안보리 이사국 15개국 가운데 프랑스와 일본 등 13개국이 찬성했고, 영국은 기권했지만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결의안 채택이 무산됐다. 미국은 결의안이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규탄을 포함하지 않았고 현 상황에서 휴전은 하마스에만 이익이 된다는 점을 거부권 행사의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미국의 단독 거부권 행사를 놓고 인권단체들과 아랍권 국가들은 강력 비판하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미국이 전쟁범죄에 대해 동조할 위험이 있다”고 했고, 국경없는의사회는 “미국이 인류에 반하는 표를 던짐으로써 가자지구 대학살에 연루됐다”고 주장했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 수반은 미국의 결정에 대해 “공격적이며 부도덕하며, 인도주의 원칙과 가치에 대한 노골적인 위반”이라고 반발했다. 카타르,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등 외교장관들은 전날 워싱턴에서 블링컨 장관과 만나 결의안 무산에 실망감을 표시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남부에 대한 공습 수위를 높이고 민간인 참상이 나날이 심각해지면서 미국의 대이스라엘 무기 지원을 둘러싼 비판적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도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무기를 지원받은 외국 국가가 국제법을 준수해 사용하는지를 검증하도록 한 미 정부 규정이 이스라엘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WP는 전했다. 미 고위 당국자는 첩보 접근 한계 등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국제법 이행 여부를 실시간으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인정했다. 지난 한 달 반 동안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공격 시 사용한 폭탄 2만2000발 이상은 미국에서 공급받은 것으로, 미국은 대형 관통 폭탄을 포함해 최소 1만5000발의 폭탄과 5만 발의 155mm 포탄을 이스라엘에 이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열린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청사 밖에서 한 시민이 ‘당신들이 표결할 때도 폭탄이 떨어지고 있다’고 적힌 종이를 들고 서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열린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 청사 밖에서 한 시민이 ‘당신들이 표결할 때도 폭탄이 떨어지고 있다’고 적힌 종이를 들고 서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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