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전 시험대’ 오른 미국·이란···“가자전쟁 중단 없이 美 공격 효과 없어”

선명수 기자
미국과 영국 연합군이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에 대한 공격을 단행한 3일(현지시간) 키프로스 아크로티리 공군기지에서 영국 공군 소속 타이푼 FRG4가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 미 국방부 제공/AP연합뉴스

미국과 영국 연합군이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에 대한 공격을 단행한 3일(현지시간) 키프로스 아크로티리 공군기지에서 영국 공군 소속 타이푼 FRG4가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 미 국방부 제공/AP연합뉴스

친이란 세력의 무력 도발을 저지하면서 이란과의 전면 대결은 피해야 하는 ‘딜레마’에 놓인 미국은 이틀 연속 친이란 민병대와 예멘 후티 반군을 공격하면서도, 이란을 직접 타격하지 않는 등 수위를 조절했다. 사전에 공격을 충분히 예고하는 등 적이 입을 타격을 축소하기 위해 부심한 흔적도 보인다.

그러나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이번 분쟁의 ‘씨앗’이라 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쟁이 종식되지 않는 한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도 역내 갈등과 긴장이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은 요르단 내 미군 기지에서 폭사한 미군 3명에 대한 보복으로 시리아와 이라크 내 이란혁명수비대와 친이란 민병대 거점 85곳에 대한 공격을 단행했다. 이튿날인 3일엔 영국군과 함께 예멘 내 후티 반군 거점 36곳을 공습했다.

다만 이란과의 전면전을 원하지 않는 미국은 군사 도발의 ‘배후’로 의심하는 이란 영토가 아닌 이라크와 시리아 외곽의 민병대 거점을 겨냥했고, 이란군이 공격 지점에서 철수할 수 있도록 사전에 공격 사실을 충분히 예고한 한 뒤 작전을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이란 역시 외무부 대변인 명의 성명을 내고 미국의 공습을 규탄했으나, 군사적 대응은 거론하지는 않는 등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눈에 띄게 온화한 반응”이라고 평가했다. 이란은 앞서 이라크 이슬람저항군(IRI)의 공격으로 미군이 사망하자 IRI에 자제를 요구했고, IRI 핵심 세력인 카타이브 헤즈볼라는 미군을 상대로 한 군사작전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이란의 확전 억제 의지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본격적인 군사 행동이 친이란 무장세력들의 추가 도발을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당장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은 미·영 연합국의 대대적인 공습에도 홍해에서의 군사 도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 중단’을 공격의 명분으로 삼은 후티는 3일 “우리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가자지구의 대량학살 범죄가 중단되고 그곳 주민들에 대한 포위 공격이 해제될 때까지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작전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가자지구에 대한 전쟁이 중단되지 않는 한 미군의 어떤 공격도 효과가 없을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 CNN의 안보 전문가이자 애리조나주립대학 교수인 피터 베르겐은 “중동지역에서 이란 대리세력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대체로 실패해 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확전을 막으려면 미국은 갈등의 근본 원인인 가자지구 전쟁을 해결하는 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JS)도 “공습보다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 합의를 빨리 성사시키는 것이 지역 긴장감을 진정시키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라고 전했다.

이란 역시 미군의 공습을 규탄하는 성명에서 미국 대신 이스라엘을 중동 분쟁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 지역의 긴장과 위기의 뿌리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가자지구 군사작전 지속, 그리고 미국의 지원 하에 이뤄지는 팔레스타인인 학살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이번 공습이 오히려 친이란 세력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지적도 나온다. 이란 대리세력 거점을 공격하는 것으론 이란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힐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이란의 역내 영향력만 강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베르겐 교수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으로 이라크 정부와 사이가 틀어진 것은 물론 이라크 주둔 미군에 대한 철수 요구가 높아진 것을 거론하며 “이는 이란의 이익에만 부합하는 일”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와 마찬가지로 이란 입장에선 중동지역의 ‘핵심 플레이어’로서 미국을 대체하려는 노력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이 단기적으로는 대리 세력의 무력 도발을 통해 이스라엘의 지원자인 미국에 가자지구 휴전 협상을 압박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중동지역 내 미군을 철수시키는 목표로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란 전문가인 미 해군대학원 아프숀 오스토바르 교수는 “이란에게 현재 전쟁은 단기전보다 장기전”이라며 “중동지역에서 미군을 밀어내고 미 동맹국들을 약화시키기 위해 꾸준한 행보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반군 후티 대원들이 3일(현지시간) 예멘 사나에서 이스라엘 국기가 달린 진지를 공격하는 군사 훈련을 하고 있다. 후티 미디어센터 제공 /EPA연합뉴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반군 후티 대원들이 3일(현지시간) 예멘 사나에서 이스라엘 국기가 달린 진지를 공격하는 군사 훈련을 하고 있다. 후티 미디어센터 제공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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