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이 번다’ 속여 어선·공장에 팔아… 하루 16~19시간 ‘노예 노동’

꼬따웅(미얀마) | 박순봉 기자

노동착취 피해자 증언

“길을 걷는데 한 남자가 다가와 ‘태국 당구장에서 일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했어요. 미얀마에는 일자리가 없어 밥을 굶기 일쑤였죠. 14살이었던 동네 동생과 함께 따라갔어요. 어머니께도 말씀드리지 않았죠.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땐 전 몰랐습니다.”

지난달 21일 미얀마 꼬따웅의 한 식당에서 만난 싯나잉(20·가명)은 인신매매의 기억을 힘겹게 끄집어냈다.

탈출해 집에 돌아온 싯나잉은 집 밖 출입을 자제하고 있다. 싯나잉 어머니의 부탁이자 명령이다. 이날 싯나잉은 미얀마 경찰과 동행, 어렵게 기자와 만났다. 인신매매의 실상을 알리고 싶다는 뜻을 어머니가 받아들여 외출을 허락해준 것이다.

[인신매매 시장, 미얀마 꼬따웅·양곤을 가다]‘돈 많이 번다’ 속여 어선·공장에 팔아… 하루 16~19시간 ‘노예 노동’

▲ 일자리 없어 밥 굶기 일쑤… 미얀마 떠나 태국 건너가
“죽인다·불법이주 신고” 협박, 도망 못 가게 총 들고 감시

■ “노예 같은 선원생활, 죽음의 공포”

싯나잉은 지난해 5월 ‘팔렸다’. 미얀마 꼬따웅의 한 거리에서 만난 남자는 싯나잉을 배에 태워 태국 국경을 넘었다. 태국 땅에서 싯나잉은 다른 여자에게 넘겨졌다. 그 여자는 싯나잉과 동네 동생을 방에 가두며 “너희는 어선에서 일해야 한다. 1년에 3만바트(약 98만9400원)를 벌 수 있다”고 말했다. 싯나잉이 “약속한 일과 다르다”고 항의하자 여자는 “너희들은 불법이주자다.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다. 싯나잉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싯나잉은 인신매매범의 제안이 있기 전부터 태국에서의 이주노동을 계획했다. 싯나잉이 미얀마에서 하루에 벌 수 있는 돈은 최대 1500챠트(약 1460원)였다. 싯나잉의 어머니는 과자를 만들어 길거리에서 팔거나, 가정부 일 등을 닥치는 대로 했다. 싯나잉은 “태국으로 떠날 때 ‘어머니를 위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겠다’는 희망만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선에서의 삶은 노예 같았다. 배에는 17명의 미얀마인과 3명의 태국인이 있었다. 태국인들은 모두 총을 들고 미얀마인들을 감시했다. 17명의 미얀마인들은 모두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이었다. 15살 소년도 있었다. 얼음 탱크를 파내고 무거운 물고기가 담긴 그물을 당기는 일을 했다. 일을 거부하면 “죽여버린다”고 협박했다.

싯나잉은 탈출을 시도했다. 2개월 뒤 인도네시아 항구에 배가 정박했을 때를 노렸다. 하지만 싯나잉은 하루도 못돼 다시 붙잡혔다. 인도네시아 식당에서 “도와달라”고 말하는 싯나잉을 식당 사람들이 선주에게 돌려보낸 것이다. 선주가 항구 인근에 인신매매한 선원들의 사진을 미리 보여주고 도망치면 잡아달라고 부탁해둔 터였다.

싯나잉은 자신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 했다. 싯나잉이 배를 탄 지 5개월 만에 싯나잉이 탄 배가 불법어업으로 검거되면서 풀려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싯나잉은 현재는 어머니와 함께 야자기름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싯나잉은 지금도 태국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인신매매범들이 꼭 처벌받았으면 좋겠다. 다른 피해자가 생겨서도 안된다”면서도 “하지만 합법적인 방법으로 다시 태국으로 가고 싶다. 우리는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얀마에서 그는 희망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 “숙모 꾐에, 하루 16~19시간 노동”

미얀마 전통식 밥과 카레를 길거리에서 팔던 사바이(43·사진)는 숙모에게 인신매매를 당했다. 숙모가 “공장에서 일꾼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주는 일을 주선하겠다”고 해 따라갔던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검은 테이프로 창문이 가려진 버스를 탔고 자신도 모르는 새 국경을 넘었다. 버스에서 모르는 태국 사람들이 준 도시락을 먹고 정신을 잃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태국의 한 파인애플공장이었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날부터 사바이는 인신매매로 끌려온 20여명과 함께 일을 했다. 공장 화장실 청소 등 온갖 잡일을 도맡아 했다. 오전 8시부터 새벽 2~5시까지 하루 16~19시간을 일했다. 그러면서도 사바이는 한 푼도 손에 쥐지 못했다. 한 달 3000바트(약 9만9000원) 정도의 돈은 숙모가 가져갔다.

숙모는 가끔씩 공장에 새로운 사람들을 데리고 들렀다. 숙모는 공장주로부터 한 사람당 2000바트(약 6만6000원)를 받았다. 또 이들의 월급을 중간에서 떼갔다. 나중에야 사바이는 자신의 숙모가 인신매매범이라는 것을 알았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9~10살 아이들도 있었다. 공장주는 일을 하는 시간 외에는 도망가지 못하도록 문을 잠갔다. 인신매매를 당해 잡혀온 17세의 남자아이가 공장에서 목을 매 자살하기도 했지만 경찰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사바이는 친척에게 몰래 전화를 걸어 자신이 입고 있던 작업복에 영어로 써 있는 회사명을 읽어줘 구출됐다. 사바이를 인신매매한 숙모는 사바이가 풀려나면서 자취를 감췄다.

“경찰이 구하러 오면 다른 경찰이 인신매매범에게 알려서 숨게 하죠. 저는 다행히 탈출했지만 아직 수많은 사람들이 노예처럼 살고 있어요. 여자, 아이, 그리고 남자들도요.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어요. 그들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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