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로힝야 난민촌…화재 한 달, 그 후로도 40여차례 불

정유진 기자

군부 피해 국경 넘은 난민들

또다시 화재·학살 트라우마

실종 399명·홈리스 4만여명

병원까지 불타 치료도 못해

또다시 마을에서 피어오르는 불길을 목격하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2017년 미얀마 군부의 학살을 피해 불타는 집을 뒤로하고 방글라데시로 도망쳐 온 로힝야 난민들에게 지난달 22일 난민촌을 덮친 대형 화재는 잊으려 애썼던 학살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무함마드 알람은 방글라데시 남동부 콕스바자르 난민촌에 살고 있는 80만명의 로힝야 난민 중 한 명이다. 마을이 불타는 모습을 본 그는 급히 집으로 달려가 어머니와 여동생을 데리고 빠져나왔다. 챙겨 올 수 있었던 것은 옷 몇 가지가 전부였다. 마치 4년 전 고향을 떠나와야 했던 그때처럼 말이다.

당시 화재로 최소 15명이 목숨을 잃었다. 화재가 진압된 지 한 달이 지난 29일에도 여전히 399명이 실종 상태다. 유엔과 국제 비정부기구(NGO)가 복구 작업을 서두르고 있지만 홈리스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난민도 4만5000여명에 달한다.

“학살의 트라우마에서 겨우 벗어나 조금씩 새로운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는데, 이번 화재가 다시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알람은 지난 25일(현지시간) 유엔뉴스에 이렇게 말했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불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아이들이라고 세이브더칠드런은 전했다. 난민촌 아동인 주나이드(7)는 불을 피해 도망가다가 발바닥에 못이 박혔지만 병원에 가지 못했다. 병원도 불타버렸기 때문이다. 세이브더칠드런 자원봉사자가 그의 상처를 발견하고 나서야 겨우 치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도 주나이드는 발을 절뚝거리며 걷고 있다. “읽고 있던 책이 전부 불타버렸어요. 저는 입을 옷도 없어요. 몽땅 불에 탔거든요.”

세이브더칠드런은 학살 위험에 이어 이번 화마로 또다시 큰 고통을 겪은 아동들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보고 있다. 자원봉사자인 쇼픽은 “교육센터가 소실돼 아이들이 갈 곳을 잃은 상황”이라며 “텐트에서 놀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안심시키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화재의 공포는 끝나지 않았다. 세이브더칠드런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대형 화재 후에도 지난 12일까지 불과 20여일 동안 난민촌에는 크고 작은 불이 무려 45회나 발생했다. 지난달 29일에는 하루 동안 10건의 화재가 보고되기도 했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예년보다 길어진 건기가 화재의 이상 빈도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로힝야 난민들은 야간 순찰대를 조직해 필사적으로 보초를 서고 있다. 압둘라는 “밤에도 불안해서 잠들지 못한다. (언제 불이 날지 모르니)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일을 그만둔 사람들도 있다”고 세이브더칠드런에 말했다.

이들은 혹시라도 다시 불이 날 경우 난민촌 주위를 둘러싼 철조망이 지난달 22일 화재 때처럼 자신들을 불구덩이에 가두는 역할을 하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국제난민단체 레퓨지인터내셔널은 “철조망 때문에 도망치기 어려웠던 탓에 어린이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실종됐다”고 밝혔다. 이에 국제단체들은 방글라데시 정부에 철조망 철거를 촉구했지만 방글라데시 정부는 “철조망 때문에 대피가 어렵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이 같은 요구를 거절했다고 국제평화단체인 OWP가 25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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