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불공항에 미군 겨냥 폭탄테러 '수백명 사상'…바이든 "대가 치르게 할 것"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김윤나영 기자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공항 외곽에서 발생한 연쇄 자살폭탄 테러로 부상한 시민들이 26일(현지시간)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침대에 누워 있다.  카불|A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공항 외곽에서 발생한 연쇄 자살폭탄 테러로 부상한 시민들이 26일(현지시간)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침대에 누워 있다. 카불|AP연합뉴스

탈레반이 장악한 후 미국인과 동맹국 국민, 아프간 협력자들의 대피가 진행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공항 바깥에서 26일(현지시간)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이슬람국가(IS)에 의한 자살폭탄 테러가 두 차례 발생했다.

AP통신 등 주요 외신은 이날 오후 6시쯤 카불 공항의 남동쪽 애비 게이트와 그로부터 250m 정도 떨어진 배런 호텔에서 차례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한 남성이 애비 게이트로 다가와 공항 근처 치안을 유지하던 미군에 5m 이내까지 접근해 폭발물이 장착된 조끼를 터트렸다. 곧이어 250m 떨어진 배런 호텔 입구에서도 비슷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애비 게이트는 미국인과 아프간 협력자들이 출국 전 신원 검사를 받는 공항 국제선의 주요 출입구이고, 배런 호텔은 미국인, 영국인, 아프간인 등 대피자들이 공항에 가기 전에 집결하던 장소였다.

자료: 뉴욕타임스

자료: 뉴욕타임스

애비 게이트 테러 현장에서 10m 떨어져 있던 아프간인 바라트는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인파가 몰려 사람들이 서로 밀고 있었는데, 갑자기 폭발이 일어났다”면서 “4~5명의 외국 군인이 폭탄에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땅에 쓰러졌고 외국 군인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며 “사방에 시체가 있었고 사람들이 도망치고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남성은 로이터통신에 “폭발이 일어난 순간 고막이 터져나가고 청력을 잃은 줄 알았다”면서 “토네이도에 비닐봉지가 휩쓸리는 것처럼 시체와 신체 조각들이 공중을 날아다녔다”고 말했다.

■미군 13명 포함 100여명 사망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공격으로 미군 13명을 포함해 100여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미군 13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다쳐 공군기로 후송됐다고 밝혔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 장관은 “테러리스트들은 미군이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려던 바로 그 순간에 목숨을 앗아갔다”고 비판했다. 외신들은 아프간인 최소 90명이 사망하고 최소 143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사망자 중에는 어린이도 있었다. 부상자 60여명은 카불 응급병원으로 이송됐다.

이슬람 극단주의단체 이슬람국가(IS)가 이번 공격의 배후를 자처했다. IS의 아프간지부인 ‘IS-호라산(IS-K)’은 전날 서방 국가들에 테러를 미리 경고했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정부는 미리 자국민에게 공항 대피 명령을 내렸던 차였다. 그러나 미군 관계자는 “그런 구체적인 경고를 해도 공항처럼 엄청난 인파 속에서 폭탄 조끼를 숨긴 자살 폭탄 테러범을 가려내기는 매우 어렵다”고 NYT에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폭탄테러 관련 대국민 연설을 하던 도중 발언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폭탄테러 관련 대국민 연설을 하던 도중 발언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바이든, IS에 공격 지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당신을 추적해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면서 IS에 대한 대응 공격을 지시했다. 다만 오는 31일까지 미국인과 현지 조력자를 대피시키고 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철군)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면서 “테러리스트에 의해 제지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 테러와 관련해 탈레반이 IS-호라산과 공모한 증거는 없다고 설명했다. 탈레반과 IS는 서로 적대 관계다. 탈레반은 아프간 내 집권을 목표로 삼지만, IS는 중동 지역에 이슬람 국가 건설이 목표이고 미국과 타협도 거부한다.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트위터에 “카불 공항에서 발생한 민간인 폭탄 테러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적었다. 탈레반 측은 이번 테러로 소속 대원 최소 28명이 숨졌다고 로이터통신에 밝혔다. 그러나 탈레반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안보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겼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수석대변인은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 인터뷰에서 “불행히도 공항은 탈레반 통제 범위에서 벗어났다”면서 “공항 인접 지역 치안 책임은 미국인들에게 있고 우린 거기 없다”고 말했다. 반면 나토 관계자는 “탈레반이 공항 경비를 강화하기로 했고, 안보는 그들의 책임”이라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세계 지도자들은 테러를 규탄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트위터에 “비겁하고 비인간적인 공격”이라며 “공항에 있는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적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수십년 동안 없었던 야만적인 공격”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영국인의 철수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테러범들의 공격을 단호하게 규탄한다”면서 “미국인과 아프간인 희생자의 유족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도 트위터에 “끔찍한 테러 공격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도 테러에 대해 “강력하게 규탄한다”면서 “이 사건은 아프간 상황이 여전히 복잡하고 엄중함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중동 국가들도 일제히 테러를 비판했다. 이집트 외교부는 “모든 테러리즘과 폭력, 극단주의와 싸우는 데 연대한다”고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부는 “종교적 원칙과 도덕, 인간의 가치와 양립할 수 없는 범죄 행위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터키 외교부도 “악랄한 공격”이라고 규탄했다.

■“공항에 추가 테러 위협 있다”

미군은 카불 공항 근처에 추가 테러 위협이 있다고 밝혔다. 케네스 프랭크 매켄지 미군 중부사령부 사령관은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은 힘든 날”이라면서 “공항에 대한 다른 적극적인 위협이 있다”고 말했다. 카불 공항에는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이후 해외로 대피하려는 수천 명의 아프간인이 모여들어 혼란스러운 상태다. AP통신은 미국인 1000여명과 그보다 더 많은 아프간 협력자들이 여전히 카불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이 대피 시한으로 제시한 오는 31일까지 모든 아프간인 협력자를 대피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간 탈출을 희망하는 미국인을 대피시키겠다는 약속에는 시한이 없다고 했다. 미군이 아프간인 조력자 일부는 두고 떠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관련기사: 탈레반에도 미국에도 ‘뇌관’…아프간의 숨은 위험 세력 ‘I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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