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청정지역’ 티위 제도 원주민·활동가들 “바로사 가스전 건설 멈춰라”

강한들 기자

“거북의 섬 생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가스전 동의한 적 없어”

호주 북쪽 티모르해 지역에 위치한 티위 제도 원주민인 마리 문카라(왼쪽 사진)와 해양생태학자이자 호주 노던 준주 환경센터(ECNT) 에너지 캠페이너인 제이슨 파울러. ECNT 제공

호주 북쪽 티모르해 지역에 위치한 티위 제도 원주민인 마리 문카라(왼쪽 사진)와 해양생태학자이자 호주 노던 준주 환경센터(ECNT) 에너지 캠페이너인 제이슨 파울러. ECNT 제공

호주 업체, 주민 설득 작업 없이 강행…SK E&S는 작년 투자 결정
주민 마리 문카라 “환경 파괴 땐 우리도 신체적·영적으로 죽어”

‘거북의 섬’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호주 노던 준주 북쪽 티모르해 지역에 있는 티위 제도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올리브 바다거북, 푸른바다거북, 납작등바다거북 등 수많은 거북은 섬 근처 바다에서 먹이를 구하고, 해변에서 알을 낳으며 대를 이어간다. 티위 제도에는 세 개의 큰 마을이 있다. 마을은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로 연결돼 있다. 서방 세계의 영향은 제한적이다. 여전히 그들의 제1 언어는 티위어이고, 영어는 제2 언어다. 섬 주민들은 이런 섬을 “자연 그대로의 황야(pristine wilderness)”라고 불렀다.

티위 제도는 호주 에너지 기업 산토스와 SK E&S가 추진 중인 바로사 가스전 사업 부지와 불과 100㎞ 떨어져 있다. 가스 파이프라인은 섬과 단 5~6㎞ 떨어져 지나도록 설계됐다. 이 섬의 주민들은 바로사 가스전 사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경향신문은 지난 18일 호주 환경단체인 노던 준주 환경센터(ECNT)를 통해 티위 제도에 살고 있는 주민 마리 문카라와 ECNT 에너지 캠페이너 제이슨 파울러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이들은 산토스와 SK E&S가 이 대형 가스전 프로젝트에 대해 주민들과 협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산토스는 2004년 주민과의 협의 작업을 시작했다. 18년이 지났다. SK E&S가 투자를 결정한 건 지난해 3월이다. 통상, 가스전과 같은 대형 사업이 진행될 때는 주민들에게 충분한 사전 고지와 협의 절차가 필요하다. 하지만 파울러 캠페이너는 “2004년에 협의가 시작된 이래로 티위 제도 주민에 대한 설득 작업은 없었다”며 “환경영향평가 등 당국의 허가 절차 과정이 총 세 차례 있었고, 각 절차마다 통화 단 한 번과, e메일 하나만을 티위 의회에 보냈을 뿐”이라고 했다.

티위 제도의 주민 역시 “이 섬에서 협의 절차를 겪은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티위 제도 배서스트 섬 남서쪽에 사는 문카라는 “이 사업에 대해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무도 우리를 만나고 이야기한 적 없다”며 “우리가 이렇게 취급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치민다”고 말했다.

그는 가스전 사업으로 인해 섬 주변 환경이 오염되는 것을 가장 걱정한다. 가스전이 생기게 되면 섬과 가까운 바다에 항상 배나 헬리콥터 등이 다니게 된다. 그간 해저에 파이프라인을 설치하는 등 과정에서 산호 파괴, 거북 서식지 훼손 등 생물 다양성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어왔다. 문카라는 “섬은 자연 상태 그대로고, 우리는 이대로 섬을 지켜나가고 싶다”며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우리의 자원을 가지고 거대한 이익을 남기려 하는 백인에게 착취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게 섬에 있는 생물들은 ‘함께 사는’ 대상이었다. 어장 손실 등으로 인해 생길 ‘주민 피해’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문카라는 “먼저 바다 생물 주민부터 살펴보자”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들의 삶터, 이동 경로, 먹이터, 산란터 모두 파이프라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해양 생물이 영향을 받으면 인간 주민인 우리도 당연히 영향을 받고 영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죽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사 가스전은 다른 가스전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티위 제도 주민들은 온실가스 배출 책임은 매우 적지만, 이미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기후위기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문카라는 “우리는 아직 해수면 상승 이전에, 해안가에 있던 것들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해안에는 묘지가 있었다”며 “지금은 (묘지가) 물 아래에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죽고 나면 영혼이 그곳으로 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이미 ‘투사’가 됐다. 문카라는 “이 문제는 단순히 티위 제도, 한국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가스전 프로젝트에 사고라도 생긴다면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이라는 우리의 결심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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