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키트 동나고 응급전화 폭주…‘위드 코로나’ 중국 대혼란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12월 중앙경제공작회의도 무기한 연기

중국 베이징의 한 약국 앞에 지난 12일 저녁 약을 사려는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AFP연합뉴스

중국 베이징의 한 약국 앞에 지난 12일 저녁 약을 사려는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AFP연합뉴스

중국 당국이 일시에 방역을 완화해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혼란과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의심되는 발열 환자가 급증하고 신속 항원검사 키트와 의약품이 품귀 현상을 빚고 있지만 일상적으로 이뤄지던 핵산(PCR) 검사가 중단돼 감염 확산 규모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실 반영 못 하는 통계…발열 환자 급증, 베이징은 이미 최고조기 진입 분석도

13일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가 집계한 전날 중국 본토 내 코로나19 일일 신규 감염자 수는 모두 7298명(무증상 감염에서 확진으로 전환된 사례 제외)이다. 중국에서는 지난달 27일 일일 감염자 수가 3만8808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전날 감염자 수는 일주일 전 2만7174명과 비교해도 3분의 1이 안 되는 수준이다.

하지만 현재 중국 당국의 공식 감염자 수 집계는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중국 전역에서 일상적이고 광범위하게 실시되던 PCR 검사가 중단되면서 상당수가 신속 항원검사 키트를 이용해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자가 진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감염 확산 추이는 늘어나는 발열 환자나 신속 항원검사 키트와 의약품 품귀 현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베이징시 방역 당국은 전날 브리핑에서 지난 11일 하루 각급 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받은 발열 환자가 2만2000명으로 일주일 전보다 16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 일주일 동안 2급 이상 병원에서 보고된 독감 유사 증상 환자가 1만9000명으로 전주에 비해 6.2배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코로나19 감염자이거나 감염 의심자일 수 있다.

관영 매체도 당국의 방역 완화로 대량 핵산 검사가 중단되고 감염자의 자가 격리가 허용된 후 베이징뿐 아니라 상하이와 광저우(廣州) 같은 대도시에서 감염 사례가 증가하기 시작했다며 이례적으로 당국의 통계가 현실에 맞지 않음을 인정했다.

수도 베이징에서는 이미 감염 확산세가 최고조기에 진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관변 논객으로 잘 알려진 후시진(胡錫進) 전 환구시보 총편집인은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현재 데이터와 정보가 다소 혼란스럽지만 모든 베이징 사람들은 주위에 많은 친지와 친구들이 감염돼 있고 감염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다는 것을 느낀다”며 “베이징은 이미 감염 최고조기이자 가장 심각한 상황에 진입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은 베이징에 코로나19 감염자가 폭증하자 다음해 중국의 경제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중앙경제공작회의를 연기했으며 언제 열릴지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보도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해 중국 최고위 정책 결정자들과 지방정부 고위 관료, 국영기업 대표 등 수백명이 참석하는 중앙경제공작회의는 매년 12월 열린다.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는 내년도 경제 성장률 목표도 논의한다. 중국은 올해 경제 성장률 목표를 약 5.5%로 제시했으나 두 달간의 상하이 봉쇄 등으로 상반기에 이미 달성이 어려운 것으로 분석됐다.

베이징 외의 다른 지역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한 교민은 “중국 전역에 있는 가맹점에 코로나 관련 상황을 점검해 봤는데 대부분 베이징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허베이(河北)성 바오딩(保定)시에 사는 한 주민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방역 완화 이후 많은 주민들이 급증하는 감염자를 목격했지만 그 수치는 공식 집계에 반영되지 않는다”며 “많은 동료와 친척들이 감염됐고 적어도 가구 당 1명씩은 감염자가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시민들 진단키트·약 없어 이웃에 도움 요청…춘제 전후 농촌지역 확산 등 관건

방역 완화 이후 급격한 감염 확산은 방역 현장과 시민들의 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국은 무증상이나 경증인 경우 자가 진단과 치료를 권하고 있지만 갑작스런 발열과 의심 증상에 놀란 시민들은 병원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다. 베이징시는 정부의 방역 완화 직후인 지난 9일 하루 120 응급전화에 평소보다 6배 많은 3만1000여건의 전화가 걸려와 혼란을 빚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불안한 시민들이 사재기에 나서면서 감염 여부를 자가 진단할 수 있는 신속 항원검사 키트나 의약품을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의약품 등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시민들은 주민 단체 대화방 등을 통해 이웃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실정이다. 베이징 차오양(朝陽)구의 한 주민은 “일주일 전 주문한 항원검사 키트는 아직도 배송이 안 되고 약국이나 온라인에서 필요한 약도 제대로 구할 수 없다”며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는데 검사 키트와 약이 없어 이웃 주민의 도움을 받아 겨우 위기를 넘겼다”고 말했다. 베이징시도 전날 “코로나19의 빠른 확산으로 의료서비스와 약품 공급이 단기간에 비교적 큰 압박을 받고 있다”고 인정하면서 주민들에게 필요에 따라서만 약을 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의약품 제조업체 및 약국과 협조해 신속한 공급망을 확보하고 신속 항원검사 키트 2500만개를 시중에 방출했다고 밝혔다. 또 중국 정부는 의료기관에 환자가 몰려들어 발생하는 혼란을 줄이기 위해 각 의료기관에 비대면 진료와 제3자 위탁을 통한 약품 배송을 권장했다.

중국에서는 지금과 같은 감염 확산 추세가 당분간 이어지면서 다음달 춘제(春節·설)를 전후한 시기에 방역 상황이 최대 고비를 맞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국적으로 인구 이동이 많아지는 데다 의료기반이 취약하고 노인들이 많은 농촌 지역에서까지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하오(吳昊) 수도의대 교수는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대도시는 더 나은 의료 시스템과 위생 조건을 갖추고 있어 감염자 급증에 대처할 능력이 있지만 대부분 주민이 노인이고 의료 장비가 열악한 농촌은 코로나19 확산에 취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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