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민 대피로 열겠다더니…러, 약속 깨고 도심 기습 폭격

정원식·김유진 기자

우크라 남부 마리우폴·볼노바하 공격으로 주민들 대피 중단

학교에도 포탄 어린이 사망…전화·식량 끊기며 ‘도시 마비’

유엔난민기구 “난민 수 150만명 넘어”…양국, 곧 3차 협상

<b>러시아군 포성 속 공포에 질린 탈출</b> 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북부 도시 이르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피란길에 러시아군이 포격을 가하자 시민들이 추가 공습에 대비하기 위해 몸을 낮춘 채 황급히 길을 빠져나가고 있다. 이르핀 |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군 포성 속 공포에 질린 탈출 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북부 도시 이르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피란길에 러시아군이 포격을 가하자 시민들이 추가 공습에 대비하기 위해 몸을 낮춘 채 황급히 길을 빠져나가고 있다. 이르핀 |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합의한 임시휴전이 실행도 되기 전에 파기됐다. 로이터통신은 5일(현지시간) 임시휴전 합의에 따라 이날 오전부터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과 볼노바하에서 민간인 대피가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대피가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앞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지난 3일 2차 협상에서 두 도시의 민간인 대피를 위한 인도주의 통로 개설과 통로 주변 휴전에 합의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난민 수는 150만명을 넘어섰다.

이리나 베레슈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5일 화상 연설에서 “러시아가 합의를 어기고 오전 11시45분 볼노바하에 포격을 퍼부었다”면서 “마리우폴과 자포리자에서도 교전이 벌어져 대피가 불가능해졌다”고 밝혔다.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 주민 수천명이 이동을 위해 모여 있었으나 포격이 시작돼 대피가 중단됐다고 밝혔다.

이날 마리우폴 도심 곳곳은 폭발로 인한 연기로 가득했다고 BBC는 전했다. 마리우폴 시민 막심은 “미사일 소리가 들리고 우리 아파트는 폭격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로 가득 찼다”고 말했다. AP통신은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이후 일주일 동안 학교 운동장에 떨어진 포탄에 10대 소년이 사망하고 어린아이들이 심하게 다치는 등 절망적인 일들이 마리우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면서 전화가 대부분 끊어지고 식량도 떨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군의 포위 공격을 받고 있는 마리우폴 주민들은 며칠째 물과 전기가 끊긴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다.

민간인 대피는 6일 낮 12시가 돼서야 재개됐다. 앞서 “우크라이나 측이 휴전을 연장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서 포격을 퍼부었던 러시아 측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휴전한다고 밝혔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이를 두고 러시아가 2015년 시리아 내전 당시 벌인 도시 포위·고립 작전, 민간인 살상 등이 우크라이나에서도 재현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며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후 러시아군은 시장, 병원, 학교 등을 가리지 않고 폭격을 퍼부었고,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특히 2016년 시리아 제2도시 알레포에서는 러시아군 지원을 받은 정부군의 포위 작전으로 민간인 수만명이 사망했다.

포린폴리시는 러시아가 시리아에서처럼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하나씩 포위하며 물자 이동 통로를 봉쇄하고 민간인 살상을 저지르면서 협상 초점이 분쟁 종식이 아니라 구호활동가의 이동 보장이나 민간인 대피 통로 확보 등으로 옮겨가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러시아가 체르니히우시 주거지역에 군사시설을 공격하는 데 사용하는 강력한 폭탄을 투하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아체슬라프 차우스 체르니히우 주지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을 올리고 “무게 500㎏짜리 러시아제 FAB-500 폭탄의 불발탄”이라면서 “주로 군사시설을 공격하는 데 사용되는 무기”라고 말했다. 앞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클러스터밤(집속탄)과 진공폭탄을 사용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난달 말 내전으로 인해 여전히 잿더미 상태인 시리아 북서부 비니시의 한 마을에는 우크라이나 지도 모양의 벽화가 등장했다. 푸틴을 꼬집고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연대의 뜻을 담은 그림이었다. 벽화를 그린 청년 아지즈 알아스마르는 알자지라에 “우크라이나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은 러시아의 (시리아) 정책의 연장선이며, 국제사회가 단결하지 않으면 결코 멈추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6일 영상 연설에서 “러시아군이 오데사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면서 “오데사에 대한 미사일 공격은 전쟁범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이 오데사를 점령할 경우 우크라이나의 해상은 전면 차단된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도 이날 보고서에서 러시아군이 키이우, 하르키우, 미콜라이우, 오데사 등에 대한 공격을 24~48시간 이내에 재개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4일 자포리자 원전에 이어 우크라이나에서 두 번째로 큰 남부 미콜라이우주 유즈노우크라인스크 원전이 러시아군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미 의회에 말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6일 다른 나라로 피란을 떠난 우크라이나 난민 수가 150만명을 넘어섰다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빠르게 커지고 있는 난민 위기”라고 우려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3차 협상이 1~2일 뒤에 열릴 것이라면서 “인도주의 통로가 어떻게 가동될지를 평가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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