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행 밀수 경로였던 우크라
러 침공에 전쟁터···경로 재편
“범죄자와 배신자 엄청난 차이”
양국 마피아 유대 관계도 붕괴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걸쳐 퍼진 거대한 범죄 네트워크의 주요 거점 중 하나였다. 다국적 범죄를 감시하는 국제단체 연합인 다국적조직범죄반대구상(GITOC)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범죄 생태계의 일부”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24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 같은 범죄 세계에 지진과도 같은 충격을 안겼다”면서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국제 밀수 경로가 차단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마피아 조직 사이의 유대 관계가 붕괴했다고 전했다.
2021년 우크라이나는 GITOC의 범죄성 지수 순위에서 193개국 중 34위를 기록했다. 유럽 국가들 중에서는 3위였다.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누적된 부패 문제도 심각하다. 2019년 출범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부가 개혁을 추진했지만 성과가 미약하다. 우크라이나는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22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서 100점 만점에 33점으로 180개국 중 116위에 머물렀다.
전쟁 전 우크라이나는 친러 세력이 점령한 돈바스 지역과 오데사 등 흑해와 접한 남부 항구도시를 통해 아프가니스탄 헤로인과 중남미산 코카인이 유럽으로 흘러가는 주요 밀수 경로였다. 미콜라이우는 아시아와 아프리카행 불법 무기를 선적하는 수출 기지였다. 우크라이나는 2020년 중국을 제치고 유럽에서 유통되는 불법 담배의 최대 수출국이었다. 2020년에는 암페타민 제조장 67곳이 적발되는 등 불법적인 마약 제조도 늘어나는 추세였다.
전쟁이 모든 것을 바꿔놨다. 러시아 군함이 흑해를 봉쇄하면서 흑해 항구를 통한 밀수 경로는 차단됐다. 우크라이나 점령 지역과 돈바스 사이의 경계 지대는 포탄과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전쟁터다. 징집령이 내려지면서 조직범죄단체의 인적 자원이 부족해지고 계엄령과 야간통행금지령으로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다. 국제적 불법 밀수에 매우 불리한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애국적인 동기도 작용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우크라이나 범죄조직 대부분이 러시아 범죄조직과의 협력을 끊었다고 보도했다. 조직범죄 전문가인 영국 정치학자 마크 갈레오티는 “범죄자로 불리는 것과 (조국의) 배신자 취급을 받는 것은 엄청나게 다른 일”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패배할 경우 범죄자에 대한 처우가 가혹해질 수 있다는 계산적인 동기도 숨어 있다. 한 마피아 조직원은 “러시아에 병합되면 수감된 조직원들이 머나먼 러시아 감옥으로 이감될 텐데 러시아 간수들은 잔혹하다”면서 “그래서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위해 일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밀수 경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국제적인 밀수 경로가 재편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헤로인과 암페타민은 이란을 경유하고 있다. 불법 담배는 리투아니아, 중남미 코카인은 에스토니아를 새 경유지로 삼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통한 밀수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으면서 러시아 내에 쌓여 있는 마약은 늘었다. 지난 10일 러시아 당국은 모스크바에서 약 700㎏에 달하는 코카인을 압수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반적으로 전쟁이나 사회적 혼란은 조직범죄의 온상으로 작용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다른 결과를 낳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가 마침내 갱단의 천국이기를 멈출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전했다.